“1조 3808억여 원을 지급하라.”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 사이의 세기의 이혼소송에서 나온 2심판결의 핵심이다. 2024년 5월 30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에서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관장의 이혼소송 항소심(사건번호: 서울고등법원 2023르20051) 선고였다. 아직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아있어서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일반인들의 상식으로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금액의 재산분할과 위자료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천문학적인 재산을 나눠 가지게 되는 노소영 관장도 세금을 한푼도 안 낸다는 점이다. 이유인즉 본래 자기 것이라는 의미다. 즉, 부부의 재산은 편의상 일방의 소유권으로 등재했지만 공동재산이고, 이혼을 사유로 각자 명의로 전환했을 뿐 새로운 소득이 아니라는 뜻이다. 우리나라 민사법의 취지와 법이 그렇다면 어쩔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노태우 전 대통령이 상속을 가장 잘한 셈이다. 대통령 재임 중에 청와대 영빈관에서 결혼식을 올린 두 사람이고, 최태원 회장의 선대 회장인 최종현 회장 때부터 그룹의 이익증대에 얼마나 기여 했는지 정확하게 계산하기는 어렵다. 판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김옥숙 여사가 준 어음이 SK그룹이 성장하고 오늘날의 가치를 가지는데 작용했다는 취지이다. 결국 재산을 물려주기보다 재벌 2세와 결혼을 통해 최고의 상속재산을 물려준 셈이다. 그것도 세금 한푼도 안 내고 법적으로 정당하고 완벽하게 자식에게 상상하기 힘든 재산을 챙겨준 것이다. 아마도 노태우 전 대통령도 당시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이건 아니지” 싶을 것이다. 부모덕인지, 불로소득인지, 하느님의 뜻인지, 모르지만 -알고 싶지도 않지만- 그래도 상식으로는 납득하기 힘들다. 부부 일심동체라고 하니 부부일 때야 누가 시비 걸 일도 없다. 그러나 혼인이 파탄 나고 재산을 분할 하는 경우는 다르다. 부부가 백년해로(百年偕老)하고 한 쪽이 사망해도 재산이 많으면 상속세를 물린다. 부부 일심동체라면서 살아서 헤어지면 세금을 안 내고 사별하면 세금을 내야 한다면 공정한가를 생각하게 된다.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적용됨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누가 봐도 불공정하다면 이미 법으로써 존재가치가 상실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부부간 상속·증여세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고 있다.
이 문제는 국세청 국감에서도 등장했다. “부부 간 증여나 상속에 대해서는 최소한 공동재산의 50%까지 정의하거나 세금을 부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기획재정위원회의 기획재정부 국정감사에서 최은석(국민의힘) 의원의 일갈이었다. 진정한 국민의 대표라는 찬사와 박수를 받을 대목이다. 국회의 존재 이유와 국정감사가 왜 필요한지를 보여준 의정활동이다. 최은석 의원의 설명은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부부 간의 상속·증여는 혼인 생활을 유지하며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을 대상으로 명의만 바꾸는 것에 불과한데 그러한 행위에 대해서 증여세 상속세를 부과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지에 대한 의문”이라며 “놀라운 것은 정작 이혼소송으로 인한 재산분할에는 세금이 없다”고 덧붙였다. 상속·증여세의 불합리와 맹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다. 상속·증여세와 균형이 맞게 이혼 시 재산분할에 대한 과세 근거를 마련하든지 아니면 부부간의 상속·증여세를 폐지하라는 주문일 것이다. 증여하면 세금 내고 이혼하면 세금 ‘0원’은 상식적이지 않다. 이혼하면 세금이 ‘없고’ 사별하면 세금 ‘있다’고 한다면 누가 한평생을 함께 살겠는가?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를 감안하면 유교적 사상의 실천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사회를 지탱하는 규범과 도덕의 실종은 안타까움이 있다. 삼강오륜이 무너지고 있다는 한탄이다. 뜬금없이 세금에 무슨 삼강오륜이냐는 핀잔을 받을지도 모른다. 세금 정책의 기저에 삼강오륜의 도덕적 가치가 내재 되어야 건강한 사회의 기초를 다진다는 생각이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사회통념이 재물에 대한 욕심으로만 채워진 자본주의의 병폐를 조금이나마 치료하는 약이 될 수 있음일 것이다. 삼강은 군위신강(君爲臣綱) ·부위자강(父爲子綱) ·부위부강(夫爲婦綱)을 말하며 오륜은 부자유친(父子有親) ·군신유의(君臣有義) ·부부유별(夫婦有別) ·장유유서(長幼有序) ·붕우유신(朋友有信)이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도덕적 관념이 지배하는 사회로 회귀하지 않으면 지금의 결혼 기피 현상은 고쳐지기 어려울 것이다. 결혼을 부의 수단으로 여기거나 이혼을 선(善)으로 포장하는 병폐를 바로잡기도 어렵다. 결혼과 이혼에 대한 바람직한 상식과 사회규범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삼강오륜의 도덕적 사회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이혼 위자료와 상속·증여세를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결혼 페널티라는 관점에서 보면 페널티의 끝판왕”이라는 최은석 의원의 상속·증여세에 대한 총평이다. “부부가 한평생 동고동락하면서 함께 살아가는 관계고, 이렇게 열심히 살아간 사람에게 정당한 대우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한마디로 하면 부부 일심동체라는 말이다. 최근 경제공동체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경제공동체는 일심동체의 하위개념이고 가족의 범주였으나 근자에 와서는 법률적으로 의미가 변하고 있는 듯하다. 경제공동체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면서 장기적으로는 상속·증여세의 개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사회의 변화와 관계없이 부부간의 세금 문제만큼은 ‘일심동체’가 적용되어야 당연하다는 생각이다. 이혼 시 재산분할에 대해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면 “부부간 상속·증여세는 최고의 패널티”라는 최 의원의 주장에 한 표를 줄 수밖에 없다.
다행히 상속·증여세의 경우 학계를 중심으로 유산취득세로의 전환이 본격 논의되고 있다. 차제에 상속·증여세와 이혼에 의한 재산분할을 맞추는 입법이 필요하다. 상속·증여세의 배우자공제와 이혼 시의 재산분할이나 위로금의 과세기준을 동일하게 하는 입법을 서둘러야 한다. 과거 예기치 못했던 변화가 발생하면 법이 뒤따라가는 것이 원칙이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배우자의 경우 이혼 시 재산분할과 마찬가지로 상속재산의 절반까지는 상속공제가 선행되는 것이 균형감각에 맞다는 것이 최 의원의 주장이고 다수 국민의 생각이다. 사실 부부간의 상속·증여세는 폐지해도 결국 2세로 상속될 때 상속세를 내야 함으로써 의미가 없다는 것이 통설이다. 그럼에도 법 개정을 미룬다면 국회가 소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말로만 민생입법을 외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입법 활동을 통해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 정치인들의 첫째 덕목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