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관. 공무원 직제상 고위공무원단의 진입을 준비하는 영광된 자리다. 옛날부터 서기관부터 고위직 공무원으로 분류했다. 따라서 개인적으로나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했다. 직업공무원으로는 최고의 자리인 고위공무원단(3급 이상)의 진입을 준비한다는 의미에서는 공무원사회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자리이기도 하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참여정부에서 직급 통폐합을 위해 2006년에 도입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가급과 나급으로 구분하는 현 제도가 완성됐다. 고위공무원단 ‘가’급은 1급 공무원으로 중앙부처의 차관보, 실장, 외청이나 차관급 처의 차장을 맡는다. 고위공무원단 '나'급은 2급 또는 3급 공무원으로 중앙부처의 국장을 맡는다.

국세청 서기관은 다소 특별하다. 흔히 국세행정의 야전사령관으로 불린다. 일선 국세행정을 진두지휘하기 때문이다. 국세행정의 집행을 통해 납세자와 직접 교감하는 모든 책임과 권한이 주어진다. 국세청장의 세정철학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납세자와 현장에 전파되고 실적으로 구현되느냐는 오로지 야전사령관인 세무서장들의 지도력에 달려있다. 국세청의 업무 지침을 충실히 집행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고민으로 불면의 밤을 보내기 일쑤다. “원도 한도 없이 일에 매진했을 때가 서기관이었다”는 성공담이 가장 많은 자리다. 그만큼 경쟁이 치열한 세무 행정의 핵심 포스트이다.

세무서장은 출신(공채, 특채, 행시 등)및 나이별로 균형 있게 분배되어 신구조화를 보여준다. 올 하반기 서기관 승진자 29명에서도 보듯이 30대 중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다. 다만 세무대학 출신들이 국세청의 주류 인맥으로 자리 잡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행시 출신은 56회가 서기관으로 등극을 시작했고 9급 출신도 승진의 영광을 차지하기도 했다. 가문의 영광을 누리게 된 서기관들은 세무서장의 보직이 주어지면서 본격적인 능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경쟁의 지옥 열차에 탑승한 것이다.

세무서장을 ‘야전 사령관’이니 ‘세무공무원의 꽃’이니 별칭이 붙는 것은 책임과 권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세무서장 발령을 받게 되면 기관의 장으로 누리게 되는 여러 가지 혜택이 있다. 먼저 4급직급에 해당하는 중앙부처 공무원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집무실과 비서 그리고 관용차가 지급된다. 기관장으로 관내 주요 행사에 초청받는다. 따라서 인맥이 다양하게 넓혀지게 되며 타 기관과의 교류 등을 통해 업무추진의 사고가 확대되게 된다. 이러한 장점만큼 책임에 따른 중압감도 만만치 않다. 서내 직원들의 근태와 복무상태를 확인 점검하고 민원이나 외부 사정기관으로부터 직원을 보호해야 하는 부담도 상당한 업무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최근 세무서장의 책임과 역할은 같은데 분위기는 사뭇 달라졌다. 시대의 흐름이자 역사가 만들어지는 사연이다. 대체로 과거에 비해 세무서장의 권위가 추락했다는 하소연이 자주 들린다. 과거에는 세무서장은 권위의 상징이었다. 명령과 상명하복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에는 세무서 직원들의 생사여탈 권을 쥐고 있을 정도였다. 때문에 모든 직원들이 세무서장의 눈치를 살피며 소위 ‘모시기’에 최선을 다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세무서장이 출근하면 간부들이 현관에 도열 했다. 그뿐만 아니라 점심시간이면 서장의 외부 스케줄을 확인하고 대기 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대부분의 업무추진비는 관내 정보기관이나 사정기관을 관리하는 소위‘정보비’로 사용될 정도로 외부 인사들과의 교류가 많았다.

현재는 ‘배려’와 ‘소통’을 기관 운영의 으뜸 덕목으로 꼽는다. 대부분의 서장들은 직원들이 즐겁게 일하는 직장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두고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기에 바쁘다. 대부분의 업무추진비는 직원들의 복리후생에 쓰인다. 각과 별 회식이나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직원들의 고충을 듣고 업무추진에 있어 의견을 청취하는 등의 소통에 쓰임으로써 진정한 업무추진비로 사용되고 있다. “과거에는 서장님을 모시기에 한 치의 빈틈이 없도록 전 직원이 힘을 합쳤다면 지금은 서장이 직원들의 눈치를 살피느라 온통 신경을 집중하고 있다” 세무서장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고 있는가를 대변해 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변화는 국세행정의 큰 물결이고 역사의 흐름일 것이다. 국세행정의 선진화와 의식의 전환이 가져온 사회 문화적 충격일 것이다. ‘제4의 물결’로 표현될 만큼 ‘새로움’으로의 진화로 해석될 것이다. “세무서장이 된다는 것은 관리자로서 직원의 고충과 애로사항을 이해하고 개선하기 위해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거들먹거리지 말고 겸손한 자세로 자신을 낮추고 일선 직원과의 진심 어린 소통을 지금부터 해야 한다”서기관 승진자들의 임명장 수여식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의 당부는 국세행정 변화와 세무서장 역할변화의 일단이 축약되어 있다.

세무서장은 세무행정의 야전사령관으로 중요한 직책만큼 고위공무원단으로의 비상을 준비하는 출발의 의미가 있다. 세무 행정의 최일선에서 직원들과 소통하면서 조직 운영의 묘수를 익히고, 납세자와 직접 대면하면서 나름의 세정철학을 정립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세무서장으로 능력을 발휘하면 지방청이나 본청의 기획 부서를 거치면서 다시 한번 능력을 검증받는다. 고공단에 들어가는 과정이다. 고공단에 이름을 올리면 언제라도 국세청 최고 별의 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9급 공무원부터 출발하는 경우 서기관승진이 대체로 50 중반이 되어야 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에게도 고공단의 문이 열려있다. 특히 강민수 국세청장의 인사 스타일로 보아 능력만 보여준다면 언제라도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감히 단언컨대 승진자의 커리어 최고의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앞으로 더 행복하고 좋은 순간이 계속 올 것이다.” 서기관 승진자들의 임명장 수여식에서 강민수 국세청장의 축사는 국세 공무원들에게 희망의 큰 울림이었다. 특히 늦깎이 서기관 승진자들에게 더 없는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국세행정의 핵심인 세무서장. 첫 야전사령관의 임명장을 받은 미래의 세무서장들에게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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