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인(가상자산). 21세기의 최대 화두 가운데서도 단연 톱이다. 남모르게 감추는 방법의 하나로 연구(채굴)된 코인이 세기의 히트 상품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선두이며 대표 격인 비트코인 1개 값이 9만5000(약 1억4천만원)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코인의 대유행은 우리나라에도 전염병처럼 확산됐다. 누구는 코인으로 一攫千金(일확천금)을 거머쥐었고 어떤 이는 코인 때문에 쪽박을 차기도 했다. 급기야 2000년부터 가상자산에 대한 투기자본에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기 시작했고 2021년부터 가상자산 거래로 인한 소득에도 과세하는 소득세법 개정이 완비되었다. 그러나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아직도 요원하다.
국회에서 두 번에 걸쳐 2년간씩 유예하기로 하여 2025년1월1일부터 과세 될 예정이었다. 이제 한 달 후면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소득이 있으면 세금을 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정부에서 또다시 과세유예를 준비했다. “과세 준비가 덜 되었다”고 한다. 2년만 더 유예하여 2027년부터 과세하자는 주장이다. 현 정부에서는 과세할 의향이 없음이다. 정부와 여당의 이러한 주장에 야당이 합의했다는 소식이다. 서로 정치적 헤게모니 싸움으로 일관하던 국민의 대표들이 이 대목에서는 손뼉이 맞는 이유가 궁금하다. 아마도 권력과 자본(富)이 ‘한 세트’라는 방증일 것이다.
국회에서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과세토록 소득세법을 개정했으나, 2022년 12월 다시 가상자산소득 과세 시행이 2년 유예되었다. 이번에 또다시 유예되면서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는 6년간 시행이 보류되고 이제 시행에 대한 의구심마저 드는 상황이다. 시행이 보류되고 있지만 가상자산의 경우 과세 대상과 세율이 소득세법에 확정됐다. 과세 대상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호에 따른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이다(소득세법 제21조 제1항 제27). 이제 2026년에 소득세법이 어떻게 바뀔지 지켜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기상자산 과세 문제는 一攫千金(일확천금)을 한 사람이 많은데 세금을 안 낸다는 것이다. “돈 있으면 코인 산다”가 유행인 시대다. 코인이 1순위, 부동산이 2순위, 주식이 3순위인 것이 현실인데 코인으로 돈 번 사람만 세금 안 낸다. 이 무슨 황당함인가, 도깨비장난도 아니고 돈이 마구 쏟아지는데, 그 누구도 모르쇠이다. 그렇게 노다지로 쏟아진 돈으로 해외여행이다. 명품 쇼핑이다. 자랑질에 호들갑이 역겨울 정도다.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육체와 올곧은 정신력밖에 없는 사람들은 평생 세금 내기에 바빠서 맘 편히 쉬지도 못한다. 서민들 심사가 고울 리 없다. 여당 지지율이나 대통령 국정 수행 지지율이 잘 말해주고 있다.
코인으로 돈 번 사람들에게 세금 물리겠다고 큰소리치며 법까지 만들었다. 맡겨만 주시면 틀림없이 “본를 보여 주겠노라”고 철석같이 약속했더랬다. “그래도 보수가 양반이지 설마 점잖은 체면에 거짓말하겠어.” 믿었던 것이 화근이었다. 그들이 배신할 줄은 몰랐다. 내 발등 내가 찍었으니 누구를 원망하랴. 코인으로 돈 벌었다는 이유로 잘린 국회의원이 억울하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부끄러워해야 함에도 국민 앞에 당당히 고개 들고 할 말 다하는 뻔뻔함을 보게 되는 것은, 누군가가 그에게 당당함을 주었기 때문이다.
최근 가상자산 통계분석을 보면 전 세계 비트코인 거래량의 18% 정도가 원화 거래라고 전한다.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달러화(54%)에 이어 두 번째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대금은 한국의 주식시장 규모를 넘어서는 수준이다. 11월26일 기준 코스피·코스닥 양대 주식시장의 전체 거래대금은 15조4000억원 이었다. 같은 시간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5개(업비트·빗썸·코빗·코인원·고팍스)의 24시간 거래대금은 121억5000만 달러, 약 17조원 규모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원화 거래만 지원한다. 현행 특금법(특정금융거래정보법)에 따라 실명계좌 발급 확인서를 받은 거래소만 원화 거래를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원화 단일 시장인데도, 국내 거래소는 세계 대형 거래소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국내시장 점유율 1위인 업비트는 지난해 7월 기준 코인베이스, 오케이엑스 등 해외 대형 거래소를 제치고 거래액 기준 세계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상장된 가상자산도, 지원하는 통화도 많은 해외 거래소보다 업비트에 투자금이 더 쏠린 것이다. 그만큼 한국의 가상자산 투자 수요가 많은 것으로 해석된다. 한국은 가상자산 시장에서 기술력을 갖춘 나라로도 꼽힌다. 한마디로 돈이 코인으로 쏠리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란 것이 태생적으로 익명성과 비밀보장을 최대의 장점으로 하고 있다. 거래장부를 기록함에 있어 상호 동의가 없으면 추적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래서 기업들의 비자금이나 범죄자금의 隱匿(은닉)을 염려했던 바다. 실제로 많이 사용되기도 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래서 과세 환경이 쉽지 않은 것은 틀림없다. 코인거래의 특성상 세계적인 거래 환경에 적응토록 되어 있어 추적 또한 방대하고 어려운 면이 존재한다. 그만큼 과세를 위한 준비가 어렵고 기술과 시간이 많이 소요될 것이란 추측도 이해할 만하다. 나아가 자본시장 활성화라는 정책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과세 유예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국세 행정력이다. 지난 4년 동안 국세청은 뭐했나? 가상자산 과세를 위한 어떤 준비를 해왔고, 얼마나 진척이 있었는지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아직 얼마나, 무엇이 부족해서 과세가 어려운지 소상히 설명해야 한다. 국민 중에 아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제대로 된 당국의 설명을 들은 바도 없다. 영원히 과세 안 하는 것 아닌가? 집권 세력들이 과세하기 싫은 것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닌지? “자본시장 활성화를 지원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라는 설명이 왠지 공허하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 있다”는 원칙을 앞세워 유리 지갑 근로자에겐 최저시급까지도 과세하고 있다. 나아가 ‘최저한세’까지 연구 검토되고 있다. 아무리 강남 부자들을 대변하는 보수지만 ‘부자 감세’나 투기자산에 대한 과세에 눈감는 것이 진정한 보수의 가치는 아닐 것이다. 가난한 보수를 거부하면 진보가 득세할 수밖에 없다. 나라의 미래를 위해 불행한 일이다. 각자의 헤게모니를 챙기기에 급급한 지도자들로 인해 나라가 거덜 날 판이다. 진보는 그들대로 보수는 나름대로 자신들만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국부가 걸린 일이다. 그것이 민의라고도 하고 천심이라고도 한다. 국운의 쇠퇴를 걱정하는 통곡이 대한민국을 흔들고 있다.
가상자산에 대한 과세 유예는 너무 슬프다. 이제 ‘민생 팔이’는 팔리지 않는 소설이 될 것이다. 자본시장 활성화와 코인 부자에 대한 과세를 놓고 정책적 실익과 우선순위를 따져봐야 하지만 과세가 좀 더 좋은 정책이란 생각이다. 왜냐하면 주식과 부동산에 대한 과세와 비슷하게 코인에 대해서도 과세하는 것이 權衡(권형)을 유지하는 올바른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법만 만들어 놓고 적용을 계속 연기하는 것은 “죄는 있지만 기소하지 않는다”와 다를 바 없다. 시장 상황에 맞게 법을 개정해야지 법에 시장 상황을 재단해서는 안된다. “준비가 부족하다”는 국민에 대한 欺罔(기망)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나라가 망해도 책임지는 사람은 당연히 없고 공치사만 난무할 판이다. 국세청의 역할이 막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