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세자의 세금신고 자료가 적정한지를 검증하는 제도가 세무조사다. 1966년 3월 국세청이 발족하면서 생긴 조사국 업무의 핵심이다.

국세청이 생긴지 48년, 그동안 숱하게 친절과 혁신, 정도세정, 선진세정 등을 외쳤지만 여전히 그 행정은 걸음마 수준이거나, 납세자를 을(乙)로 보는 형태들이 곳곳에 배어있는 것으로 나타나 안타까울 따름이다.

지난 24일 감사원이 내놓은 ‘부실과세 방지 및 납세자권익보호 실태’라는 보고서는 국세청이 발족한지 50년을 바라보고 있는 그런 국세청의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국세행정의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조사행정마저 당당함을 잃고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첫 번째 지적. 국세청은 각 세무조사팀이 현장에서 세무조사를 벌이다가 납세자가 조사를 기피하거나, 거래처 조사가 필요한 경우 조사기간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또 납세자가 세금탈루혐의 해명을 위해 신청한 경우에도 연장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이 납세자의 신청에 의한 조사기간 연장이 납세자들의 요청이 아닌 조사자들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드러나 조사국의 체면을 구기고 있다.

국세청이 지난 2011년 세무조사기간을 연장한 5287건중 1941건(36.7%)이 탈루혐의 해명을 위한 납세자의 신청에 의해 연장되었다. 그런데 감사원이 국세청을 감사하면서 이들 기업체들에게 다시 설문조사를 해 봤더니 조사자의 연장신청 요구에 의해 납세자가 연장을 신청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감사원은 2011년 세무조사기간이 연장된 5287건중 법인사업자 200곳을 무기명으로 설문한 결과 50개업체가 답변을 했는데, 그중 10개 법인에서 이러한 답변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조사를 나간 조사자들이 기업체의 '옆구리를 찔러' 조사연장 신청을 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세무조사자라는 소위 갑(甲)의 지위를 이용해 납세자를 압박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점에서 엄단해야 할 악습이다.

감사원은 점잖게 납세자의 신청에 의한 조사기간 연장이 세무공무원의 세무조사기간 연장수단으로 편법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하라고 기획재정부장관에게 조용히 통보했다고 한다.

납세자를 우습게 보는 조사행정의 ‘편법’은 이것뿐이 아니었다.

국세청은 세무조사시 다른 과세기간이나 세목에 구체적인 세금탈루 혐의가 있어 세무조사의 범위를 확대하고자 할 경우 납세자권익존중위원회나 조사관서장의 승인을 받도록 납세자 권익보호 장치를 가동하고 있다면서, 전부조사로의 확대는 납세자권익존중위의 승인을, 부분조사는 관서장의 재량으로 확대할 수 있도록 슬쩍 세분화해 놓은 후 대부분 부분조사라는 사유로 세무서장 ‘맘대로’ 조사범위를 확대해온 것으로 나타났다고 감사원은 밝혔다.

납세자 권익보호보다는 업무편의가 더 우선이었던 셈이다.

이와 함께 국세청은 세무조사가 끝나면 세무서의 납세자보호담당관으로 하여금 세무조사 과정상 불만사항이 있었는지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으나 이 또한 ‘눈 가리고 아웅’하는 제도로 전락하고 있었다.

2012년 상반기 모니터링 대상 4493건 중 2200건이 회신되었으나, 그중 불만사항을 제기한 것은 겨우 9건에 불과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우리 국세청의 세무조사 시스템은 완벽하리 만큼 납세자의 불만 없이 ‘거위의 털’을 뽑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는 납세자가 불만을 말 못하도록 재갈을 물리듯 입막음을 한 것이나 다름없는 방법으로 모니터링을 한 결과였다는 게 감사원의 설명이다.

즉 모니터링 대상 납세자들이 모니터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익명으로 실시해야 하는데도 실명 공개를 요구하면서 납세자의 참여가 저조했고, 또 불만을 제기할 경우 다가올 불이익을 염려해 제대로 응답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동안 세금을 성실하게 신고한 것으로 생각해 왔고, 그리고 세법해석이나 사실관계 판단에 관한 사항 등의 차이로 세무조사를 받는 기업의 관계자들과 조사공무원들이 실랑이를 벌일 수 있다. 그러나 이처럼 국가기관이 납세자를 상대로 ‘꼼수’ 부리듯 조사기간을 연장하고, 조사범위를 확대하고, 자신의 치부를 감추려는 듯 모니터링도 제대로 못해서야 어디 한가락 한다는 국세공무원들이 모여 있다고 하는 조사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래도 이번 감사원의 지적은 지난해 요맘때 감사원이 지적한 것 보다 좀 나은 편이다.

지난해에는 성실히 납부한 업체와 세금을 축소 신고한 전력이 있는 업체가 서로 바뀌어 조사대상자가 되는가 하면, 성실도 분석결과 5위업체와 1위 업체가 뒤바뀌는 얼빠진 조사대상 선정사례 등이 적발되어 국세청 조사업무 수준이 겨우 이정도인가라는 비아냥을 듣기도 했다.

내년에도 이런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것이다. 탈세자를 응징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나 편법과 꼼수는 국세청 조사국 체면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