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에 대한 우리의 느낌은 다양하다. 처음이라는 의미로 스타트라인을 떠 올리게 된다. 일등이라는 개념에서는 피니시 라인 또는 결승점을 상상한다. 가장 큰 뜻은 ‘벽을 허문다’는 것이다. 노벨문학상의 환희에 묻혀버린 한 조각에 불과했지만, 우리 사회의 변화를 알리는 대단한 진동이 있었다. 바로 국세청에도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것이다. 전지현 국세청 정보화기획담당관이 4일 자로 부이사관으로 승진했다. 2003년 행시 46회로 국세청 근무를 시작하여 20년 만에 행시 출신 첫 여성 부이사관이라는 명예를 얻게 됐다. 국세청 개청 58년 만의 경사다.
중앙부처 가운데 경제부처가 여성들의 승진이 가장 어렵고, 그 가운데서도 국세청이 독보적이라 할만하다. 개청 35년 만인 2002년에야 첫 여성세무서장이 나와 세간의 관심을 끌 정도로 여성은 고위직으로 임용되기가 힘들었다. 제연희 김천세무서장을 시작으로 그해 이상위 거창세무서장으로 이어지면서 지금은 전국에 13명의 여성 세무서장이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2014년 처음으로 행시 출신의 전애진 중부산 세무서장을 필두로 행시 출신들이 많아지면서 고위직으로의 임용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국세청에서 난공불락으로 보였던 벽이 허물어지고 여성의 고위직 임용이 늘어나는 것은 이제 대세다. 대한민국의 역사이다. 역사의 거대한 흐름은 여성의 지위 향상과 역할의 확대이다. 중세에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남존여비의 사상은 남녀평등이라는 인간 보편의 가치에 밀려 이제 흔적만 남았을 정도다. 지금 대한민국은 여성들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암울했던 과거를 극복하고 남성들의 전유물들을 하나하나 점령해 가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우리 사회 저변에 철옹성처럼 달라붙어서 영원히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던 구시대적 사고는 임자 만난 개가 꼬리를 말 듯이 급속하게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워킹홀릭 여성이 증가하고 우먼파워가 세상을 바꾸는 시대로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이 남성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아무리 남녀평등이 가장 중요한 가치로 인식된다지만 여전히 육아와 가사에 대한 여성들의 부담은 완전히 해소되기 어렵다. 그래서 워킹홀릭 여성들은 대체로 비혼주의자들이 많다. 가사와 육아에 대한 공동의 개념이 점차 확산일로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여성들의 부담이 절대우위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여성의 모성애 등도 남녀가 경쟁이 어려운 한계로 지적되고 있다. 그래서 공무원사회에서 여성의 고위직 진출은 특별한 것이다. 특히 국세청은 업무의 특성상 더욱 특별하고, 한계극복의 사례로 여성들에게 큰 희망을 선물한다고 봐야 한다.
여성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동시에 선물한 ‘첫’에 대한 가장 놀라운 사건은 소설가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꼽을 수 있다. 한국인으로 첫 수상자이며 아시아 여성의 최초 수상의 영예도 차지했다. 노벨문학상(1901년 첫 수상)이 생긴 이래 123년 만의 경사다. 한국인 최초 노벨문학상을 받기까지 수많은 작가들의 도전과 좌절을 123년 동안 먹고 자라 온 한국 문학의 현주소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국세청의 전지현 부이사관도 개청 이래 50년 이상 여성 선배들의 도전과 좌절을 먹고 자란 결과일 것이다. 인간사라는 것이 흘러간 시간이 많았던 만큼 좌절과 고통도 많은 것이 당연지사다. 그것이 진실이기에 어마어마하고 무시무시한 국세청의 변화가 묻혀버린 것이다. 그래서 백년 정도의 세월과 그만큼의 도전과 좌절을 계속하다 또 어떤 驚天動地(경천동지)가 있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지금의 사회변화 추세라면 여기에 편승하여 국세청 우먼파워들의 도전과 좌절이 계속되다 보면, 여성국세청장도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을 계기로 또 하나의 깨달음을 경험하게 된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가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스코틀랜드의 미술가 캐이티 패터슨의 기획으로 2014년 오슬로 근교 숲에 심은 천 그루의 어린나무를 백 년 뒤 베어 작가 백 명의 책을 한정판으로 출간한다는 계획이다. 매년 한 명씩 선정되는 작가의 원고는 제목을 제외한 장르, 분량, 내용이 비밀에 부쳐지며 2114년까지 오슬로 시립도서관에 봉인, 보관된다. ‘미래도서관 프로젝트’의 작가로 위촉된 한강 작가는 이를 ‘백년 동안의 기도’라고 표현했다.
인간에게 백년 후면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결과를 볼 수도 없다. 스피노자가 말했지요.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 내일은 미래다. 백년도 미래다. 인간은 미래를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고 있다. 미래는 희망이죠. ‘고생 끝 행복 시작’의 아름다움으로 포장된다. 그런데 희망이 원대하고 꿈이 클수록 계획도 원대해야 한다는 거죠. 대체로 계획이 완벽하다고 행복도 완벽하지는 않다. 꿈을 꾸다가 그 끝의 행복을 못 보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도 우리는 미래의 행복을 꿈꾸며 오늘을 살아 낸다. 미래는 분명 눈부시게 아름다울 것이다.
그래서 국세청의 여성 공무원들을 응원한다. 아직 100년도 안 됐어요. 좀 더 원대하게 큰 꿈은 백년 정도의 계획은 세워야지요? 개청 백 주년 이전에 여성 수장을 맞이하는 영광을 볼 수도 있다는 희망은 어떨까? 새해 해맞이를 생각해 본다. 동녘 하늘이 설익은 감빛으로 물들면 칠흑 같은 그믐의 어둠도 설금설금 물러난다. 그리고 이글이글 해가 솟아오르는 순간 영원히 세상을 감출듯했던 먹장 어둠도 흔적 없이 사라진다. 국세청 여성 공무원들에게 기회의 문이 활짝 열림이다.
국세청 여성 공무원들의 우먼파워는 이제부터다. 찬란하게 빛날 미래를 그려보자. 금녀의 벽이 허물어진 이상 여성국세청장의 탄생은 필연일 것이다. 여러분의 간절함이 클수록 그날을 앞당길 것이라 믿습니다. 어둠이 길었던 만큼 해가 더욱 찬란할 것입니다. 다시한번 국세청에 여성 부이사관의 탄생을 축하하며 박수를 보낸다. 국세청 우먼파워 파이팅! 여성국세청장이 탄생하는 그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