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
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얼마 전의 비상계엄사태에 온 누리가 암울합니다. 폭설에 하얗게 뒤덮이고 싶은 2024년 세모입니다. 힘드시지요? 안도현 시인의 시를 접하면 세상이 환하게 눈에 덮인 것처럼 편안해집니다. 20여 년 훨씬 전에 발표된 작품이지만 지금 읽어도 “눈발”이 ‘타인’을 상징하는 것처럼 시는, 늘 우리와 함께합니다. 시가 죽지 않는 까닭이지요. 나보다 남을 위하고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삶이었으면 싶습니다. 『공무원연금』誌 2024년 12월호 표제 시로 올라온 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