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웃기는 말이 많기는 하지만 모범납세자 만 한 것이 또 있나 싶다. 불량한 모범납세자라고 말하면 다소 의미가 명확해질 것이다. 모범의 사전적 의미는 ‘본받아 배울 만한 대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범납세자 만큼은 본받아 배우고 싶은지 뜨악하기만 하다. 왜? 객관적이고 확실한 모범의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모범보다는 상대적 개념이 강하다. 누가 더 모범인가 덜 모범인가는 판단할 수 있어도 ‘모범’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의미와 실제의 괴리가 더 놀랍다. 국세청의 모범납세자 표창도 결국 누가 더 모범 한 가를 가려내는 일이겠지만 진정한 의미의 모범납세자인지도 의문이다. 쓸모없는 보여주기식 행정 아닌지 냉철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국세청도 매년 시행하는 모범납세자 표창의 문제점을 인식한 듯 검정에 더욱 신중한 모습이다. 매년 납세자의 날 한 달 전에 미리 후보자를 발표하여 공개검증을 하고 있으나 국민적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국세청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등 난해함으로 인해 개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모범납세자 선정 기준부터가 국민적 공감을 얻기에는 많이 부족하고, 모범납세자에 대한 혜택이 기대 이상이어서 모범납세자로 정부표창을 희망하는 납세자는 많은 기이한 현상이 만들어지고 있다. 국세청에서 모범납세자 선정에 공을 들일수록 모범납세자로 포상을 희망하는 납세자들은 오히려 불량납세자일 가능성이 많은 아이러니가 생기게 된다.

국세청에서 정한 모범납세자 선정의 기준을 보면 ‘허’와‘참!’이 입속에서 맴도는 어이없음에 茫然自失(망연자실) 하게 된다. 법인은 5년 이상 계속 사업자이면서 당해연도 총납부세액이 5000만 원을 넘어야 하고 사회공헌이 있어야 한다. 개인은 5년 이상 계속사업자이면서 당해연도 결정세액이 500만 원을 넘어야 하고 법인과 마찬가지로 사회공헌 실적이 있어야 한다. 이 기준에 못미치는 경우는 모두 불량납세자라는 취지는 아닐 것이다. 간단한 예로 1000만원벌어서 500만원 세금 내면 모범납세자가 될 수 있어도 500만 원 벌어 400만 원 세금 내면 아예 모범납세자 근처에도 못 간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누가 더 모범이고 누가 불량인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법인의 경우도 주주들에 배당을 많이 하고 법인세를 적게 낸 경우도 배당소득에 대한 과세액의 총액을 비교하면 어느쪽이 모범인지 판단하기가 애매하다. 차라리 각 세무서 별로 세금을 가장 많이 낸 최고액 납세자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할지도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모범납세자가 되고자 노력하는 납세자는 오히려 표창이 거북하고 마뜩치 않아 할 수도 있다. 쓸데없이 관청의 들러리를 선다는 심사 뒤틀리는 일일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이야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세무서 간부들과 교분을 틀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세무조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혜택 즉 잿밥에 관심이 많은 납세자라면 숨은 꿍꿍이를 감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모범납세자에게 주어지는 세무조사 유예 등 혜택이 절실한 납세자라면 이미 모범납세자일 수 없고, 불량한 의도를 가진 납세자를 선정해서 표창하면 국세청도 가치가 점차 왜소해질 것이다.

모범납세자의 선정과 표창에 부정적 시각은 오래된 골동품과 같다. 이미 모범납세자에 대한 표창이 관폐라는 지적이 제기된 지 오래됐다. 모범 한 지도 의문인 모범납세자를 선정하여 과도한 혜택을 주는 것도 구시대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혜택이 많을수록 잿밥에 눈먼 납세자가 생기게 마련이다. 다소 철학적이지만 인간의 욕심을 이해한다면 특별한 혜택은 없애는 것이 옳다. 아무런 혜택이 주어지지 않아도 모범납세자로 선정되는 사실 자체가 명예가 되어야 하고, 언제 어디서나 뜻 뜻한 자랑이 되는 것이 모범납세자의 참모습일 것이다. 선정 자체가 명예가 되는 진정한 모범납세자제도가 정착되기를 소원할 뿐이다.

모범납세자는 정부포상으로 산업훈장, 산업포장, 대통령 표창, 국무총리 표창이 있고 표창에는 기획재정부장관 표창, 국세청장 표창, 지방국세청장 표창, 세무서장 표창이 있다. 그리고 이들에게는 각종 우대 혜택이 주어진다. 가장 혜택이 큰 세정 우대는 세무조사 유예, 순환 조사 대상 법인의 조사 시기 선택, 납세담보 제공 면제, 인천공항 ‘모범납세자 전용 비즈니스센터’ 이용, 모범납세자 증명 발급 및 민원 증명에 수상이력 표기 등의 다양한 혜택이 주어진다. 이밖에도 철도운임 할인, 공영주차장 무료이용, 대출 및 보증 등 금융 우대 등 사업이나 실생활에 필요한 많은 편의가 주어진다.

국세청이 아무리 선정에 행정력을 총동원해도 완벽하기 어렵고 각종 우대 혜택을 노리는 불량 모범납세자는 없을 수가 없다. 인간의 욕심이 존재하는 한 진정한 의미의 모범납세자를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 결국 납세자를 섬긴다는 국세행정의 가치를 위해 만들어진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 가치가 확인되지 않은 허상을 쫓아서 행정력을 낭비하는 결과로 남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국세청의 모범납세자 선정과 표창의 폐지를 건의해 본다. 모범납세자 제도가 세정선진화의 걸림돌이 된다면 미래를 위해서도 시급히 사라져야 할 과제일 것이다.

국세청도 모범납세자 우대 혜택 조정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 중이라는 소식은 그나마 다행이다. 내년 1월 ‘모범 납세자 관리규정’ 훈령 개정을 통해 최종안을 공개할 계획이라니 국세청도 모범납세자 제도의 폐해를 알고 있음이다. 그렇다면 차제에 한발만 더 나가자. 개선이 답인지 폐지가 답인지 밀도 있게 고민해 보기를 권한다. 성찰의 핵심을 찾기 바랄 뿐이다. 국세청이 납세자를 섬긴다는 어감도 유쾌하지 않지만, 섬김의 방법도 잘못된 책상물림 아닌지 되짚어 볼 일이다. ‘공평과세 구현’이라는 국세청의 가치와 ‘성숙한 납세문화창달’이라는 거대한 담론에 응답하기 위해서라도 내년에는 모범납세자 제도에 ‘메멘토 모리’를 선물했으면 한다. 모범납세자 제도여! 대한민국의 국세행정 발전을 위해, 국세청과 납세자의 찬란함을 찬양하는 영광위에 영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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