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남희 시인
박남희 시인

아침이슬은

캄캄한 밤을 지새운 뒷것이 밀어 올린 새벽의

영롱한 눈동자다
 

무수한 앞것들을 남겨놓고 뒷것이 갔다
 

앞것들보다 늘 한 발짝 뒤에 서서

캄캄한 시대를 노래했던 아침이슬이 스러졌다
 

아침이슬은 잠시 스러져도

긴 밤 풀잎 위에 맺혀있던 눈물들을 다시 그러모아

신새벽에 영롱하게 빛난다
 

작은 연못에서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며

뒷것의 노래가 은은하게 번져온다
 

이 땅의 부끄러운 앞것들을 향하여

장엄하게 울려 퍼지던 노래

그 노래는 거친 광야까지 퍼져나가

부끄러운 앞것들을 자랑스런 뒷것으로 바꿔놓았다
 

뒷것의 푸른 풀잎이 밀어올린 아침이슬의 힘이다
 

캄캄한 밤을 영원한 신새벽으로 만드는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는 풀잎은 늘 푸르다
 

이제 아름다운 뒷것은 가고 부끄러운 앞것들만 남았다

뒷것이 없는 앞것은 앞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뒷것, 아침이슬은 그래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그분(김민기, 1951∼2024)은 가셨지마는 1970년대 초 교정에서 친구들과 통키타로 반주하며 목메어 부르던 “아침이슬”이 오늘따라 더욱 영롱합니다.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란 행간이 날이면 날마다 더욱 빛나고요. “뒷것이 없는 앞것은 앞것이 아니다.”에서 호흡을 멈추는 찰나, 잊혔던 옛것이 내 앞에 엊그제처럼 섭니다.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던 태양이 사실은 우리의 청춘이었습니다. 그때의 저항을 되돌아보니 지극히 아름다운 순간이었습니다. 이슬처럼 가벼운 인생은 세상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이 땅의 부끄러운 앞것들을 향하여” 변함없이 맺힐 뿐입니다. 이토록 시란, 작금의 현실에 빗대어 여러 가지를 상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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