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는 언제나 지각한다”는 말이 있다. 사회적 비난의 대상이 활개를 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늦어지는 것을 빗댄 자조적 하소연이다. 요즘 정치권의 혼탁으로 자주 등장하는 금언도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말이다. 기본적으로 정의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사고는 사회가 복잡다기화하면서 법이나 규범이 신속하게 뒤따르지 못하는 현상에서 비롯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의미와 동행자쯤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적기와 적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를 경계하는 성현들의 가르침이 ‘晩時之歎(만시지탄)’이요 ‘過猶不及(과유불급)’이다. 만시지탄은 시기를 놓침이고 과유불급은 적정을 벗어난 것이다.

다소 만시지탄인 감이 없지 않으나 국세청이 초고가 아파트나 호화 단독주택 등 주거용 고가부동산에 대해서도 ‘감정평가’를 확대하겠다고 나선 것은 일단 칭찬할 만하다. 비교 대상 물건이 거의 없어 시가를 찾기 어려운 초고가 아파트와 호화 단독주택도 감정평가 대상으로 추가한다는 것은 실제 가치에 맞게 상속․증여세를 부담토록 한다는 의미다. 응능부담의 형평성이라는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줘야 한다. 국세청은 최근 주거용 부동산의 거래 가격이 높아지고 있는 추이에 주목하고 있다. 일부 초고가 아파트와 호화 단독주택의 공시가격이 매매가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사례를 확인한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듯하여 많은 국민의 박수를 받을 것이다.

다만 국세청은 지난 수년간 세수 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세제가 부자 감세라는 힐난에도 침묵으로 일관 했다. 이런 대책을 진작에 내놓았더라면 부자 감세라는 야당의 공격에 항변할 건더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가격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가 이제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설명도 이해된다. 다만 과거 부동산 가격을 잡는다는 취지에서 도입한 임대차 3법이 부동산시장의 왜곡을 가져왔던 기억 때문에, 국세청이 부동산 정책 개입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그만큼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간 업무다. 중요한 것은 초호화 자산가 몇 명의 반발도 있을 수 있으나 국민 다수의 지지를 능가할 수는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상속과 증여는 엄밀하게 따지면 ‘불로소득’이다. 세율을 대폭 인상하여 부가 세습되는 현상을 차단해야 하는 이유가 차고 넘친다. 상속·증여세의 세율을 인상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선 법 테두리 내에서라도 엄정 과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응능부담의 원칙’ 그들은 세금을 더 부담해도 여전히 부자다. 특히 세금을 적게 내는 것은 자랑거리가 아니다.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다.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자랑거리이고 존경받을 일이다. 부자들에게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는 훌륭한 일을 국세청이 하고 있는 것이다.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세금을 많이 낸 자랑거리를 만들어 주고, 우리 사회에서 존경받는 인물로 만들어 주는 것이다.

국세청이 이번에 초고가 주거용 부동산에 대해서 평가를 하기로 한 것은 ‘꼬마빌딩’에 대한 사례에서 탄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국세청은 우선 2020년부터 개별 기준시가가 공시되지 않는 중·소규모의 상가 사무실 등 꼬마빌딩 감정평가 사업을 시행했다. 그리고 4년 동안 156억 원의 예산으로 기준시가로 신고한 꼬마빌딩 727건을 감정평가해, 신고가액 4조 5000억 원보다 71% 높은 7조 7000억 원으로 과세했다. 아울러 꼬마빌딩을 상속·증여하면서 납세자가 스스로 감정평가해 신고하는 비율이 큰 폭으로 증가하는 등 꼬마빌딩에 대해서는 시가에 근접해 과세하는 비율이 늘어났다.

국세청이 용기를 얻게 되는 중요한 계기였다.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격 동향을 추적 감시해 온 국세청이지만 선 듯 감정평가에 나서기는 어려운 상황이었으나 ‘꼬마빌딩’에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볼 것이다. “상속·증여재산은 매매가·감정가 등 시가로 평가하는 것이 원칙이며, 예외적으로 시가를 산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기준시가 등 보충적 평가 방법을 이용한다.” 국세청이 감정평가를 통해 시가를 산정할 수 있는 상속·증여세법의 근거 규정이다. 초고가 아파트 및 호화 단독주택 등은 비교 대상 물건이 거의 없어 시가를 찾기 어렵다는 점에서 꼬마빌딩과 그 성격이 유사하다.

국세청이 이번에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확대의 주요 내용을 담아서 예고한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 규정 개정안’은 내년부터는 신고가액이 추정 시가보다 5억 원 이상 낮거나 차액의 비율이 10% 이상이면 감정평가하도록 범위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신고가액이 국세청이 산정한 추정 시가보다 10억 원 이상 낮거나, 차액의 비율이 10% 이상인 경우 감정평가 대상으로 선정하고 있다. 국세청은 앞으로 감정평가 범위를 확대하기 위해 선정 기준도 낮출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범위 확대로 인해 해당 납세자들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하는 모습도 돋보인다. 납세자 스스로 감정가액으로 신고하면, 감정평가 수수료 비용을 최대 500만 원까지 공제해 주고, 추가적인 부동산 평가 절차 없이 조기에 상속·증여세를 결정해 주기로 했다. 특히 신고 안내 단계부터 감정평가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감정평가 대상으로 선정되면 감정평가 방법 및 절차를 담은 개별 안내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나아가 감정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평가심의위원회(내부 3명, 외부 4명)에서 감정평가액을 한 번 더 검증하는 등 감정평가의 신뢰성을 높여 나가기로 했다.

국세청의 부동산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감정평가 업무는 현 세법의 범위 안에서 세수 일실을 막기 위한 대책일 것이다. 매년 사용해야 할 예산은 팽창되고 있는데, 세법은 오히려 세수가 감소할 요인들로 가득하고, 세계적 경기 흐름을 잘못 판단한 -오류인지 의도적인지는 알기 어려움-세수 전망은 번번이 빗나간다. 이것이 국세청의 고민이다. 거대 야당의 부자 감세로 인한 세수 부족에 대한 질타가 곤혹스럽다. 국세행정으로 세수를 조달할 방법을 다각도로 찾을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짊어져야 할 운명과도 같다. 시중에 “부동산 정책은 잘해야 본전이고 조금만 잘못되면 정권이 바뀐다”고 한다. 누구나 아는 현실적 고민이고 난관이다.

사실 지난 정부에서 “기준시가를 시가에 근접시키겠다”는 시도를 했다가 정권을 내놓은 학습효과가 있다. 당시는 의도와 목적은 정당했으나 설계단계에서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지고 종합부동산세라는 폭탄을 투하했다가 ‘역성혁명’을 당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이러한 분석은 기준시가의 후퇴와 종합부동산세 과세 대상 축소 등 보완이 불가피했다. 그 결과 시가와 기준시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고 상속·증여세의 과세 왜곡이 일어날 지경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국세청의 주거용 부동산에 대한 감정평가 대상 확대는 시급한 과제이고 적절한 대응이다. 세법이 가져온 세수 부족을 국세 행정력으로 조금이나마 메꾸어 간다는 인상이다.

여기에 정국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혼돈이고 경기는 바닥을 기고 있다. 그러나 국고가 바닥나고 나라가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 마당에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한다. 국세청장에게서 ‘누군가 해야 한다면 내가 하라라’는 기계와 용기를 읽는다. 정국의 변화와 흐름에 초연하게 자신의 임무를 묵묵히 수행하고 있는 국세공무원들의 충성심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국민이 ‘참 잘했어요’ 칭찬을 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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