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수 시인
박병수 시인

태양을 등진 팔다리는 몇 생을 걸어왔는지 강물을 바라보는 시간을 좋아해서 슬픔이 철없이 따라다닌다
 

지난날을 이어붙인다고 말할 수야 없을 테지만 강물은 저만큼 떨어져 걷는 목관 무늬 얼굴을 하고 있다


신이 괴로워할 대부분의 기억 가운데 사람이나 장소 따위가 물에 떠다녀 기억 저편에서 날아온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놀란 듯 잠깐씩 떨다가 날아가고


그리움을 죽여버린,

큰 형장의 숲이라고 이름 붙인 검은 물웅덩이가 생각난 때가 바로 지금쯤이었다


물에 뜬 얼굴들을 손가락으로 찌르면 물결은 죽은 짐승 가죽처럼 가까이 있던 슬픔을 저 멀리 떠나보내는 소리를 가진 강의 결심일 수도 있다


내가 백발이 되기 전의 얘기지만 누군가가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물 위에 올려놓으면 물소리는 물속으로 자러 들어가고


소원은 있었을까? 젖은 얼굴인데,


강물은 또다시 노여움을 가장한 아빠만 셋이라서 얕은 곳을 찾으려고 더 멀리 가는 거구나.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이 시를 접하며 ‘강물의 입술로 말을 하고 강물의 수저로 밥을 먹으며 강물의 문자로 편지를 쓰더라. 강물의 악보로 피아노를 치고 강물의 버스를 타고 강물의 미소로 가물거리더라.’라는, 오래전에 발표한 필자의 시 《저문다는 것에 대하여》가 생각났습니다. 강물만의 노래를 불러 보았으나 강물 저변엔 늘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담긴 “슬픔”이 늘 깔려있었습니다. 어쩌면 강물이란 삶도 아픔을 간직한 “큰 형장”일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아빠만 셋”인 “생”의 이면엔 “검은 물웅덩이”가 고였을 것입니다. ‘비극(悲劇)’이야말로 시의 출발점이라는 걸 새삼 떠올리며 오늘은 유별나게 강변을 거닐어 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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