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소송 관리 체계를 확 바꾸는 모양이다. 형법의 잣대로 보면 “공소 유지를 강화하겠다”로 들린다. 올해부터는 관리대상 사건을 재정비해 중요소송에 대한 관리체계를 일원화하고 국제조세 소송의 경우 조사국과 연계해 공동으로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등 대응협의체를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2020년도 이후 국세청 불복 청구 건수가 연간 1만3000건 이상으로 상승하고 있다.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3년 행정소송 처리 대상 건수는 4천602건이며, 이 중에서도 100억원 이상의 초고액 소송은 253건(5.5%)이었다. 100억 이상 소송 중에서도 38건이 처리됐으며, 국가승소는 10건으로 승소율은 전체의 26%에 불과했다. 이것만 봐도 국세청의 입장이 이해된다. 불복은 많아지고 승소율은 바닥이면 국가 징세권의 위신이 땅에 떨어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국세청장 입장에서는 무엇인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같은 조세불복의 건수나 승소율만 보아도 국세청이 아주 특별하고 단호한 대책을 마련해야 함은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관련 국세청은 이미 조세전문변호사에 대한 자문을 강화 한바 있고 심사 관련 업무 직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다양한 조치를 단행해 왔다. 이러한 혁신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조세불복에 대한 업무 개선이 기대 이하인 것은 애시당초 주춧돌이 잘못 놓여 진 것이리라. 과세 공무원을 절대적으로 신뢰한 것과 납세자를 탈세자로 보는 혐오가 저변에 깔려있음이다. 국세공무원이 신은 아니다. 잘못 과세할 수도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은 신중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마구잡이식 과세가 없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일단 세무조사가 시작되면 뭔가 탈세 혐의를 잡고 조사하는 만큼 시선이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증거를 찾기 위한 수사와 다를 것이 없다. 정기조사도 예외는 아니다. 뭔가 꼬투리를 잡아야 하고 탈세 혐의를 씌울만한 것을 찾아내지 못하면 무능하거나 어떤 오해를 받을까 두려워한다.

법이 사회의 모든 현상을 정할 수는 없는 한계가 분명히 있다. 조세법의 경우는 다른 법에 비해 유독 ‘사실 판단’이 중요한 경우가 많은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사실 판단은 납세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회복 불가능한 손해를 가져다준다. 그럼에도 징세권이란 남용하기 쉬운 권한으로 납세자의 손해 회복에는 관심이 없다. 먼저 징세권은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조사담당 공무원이 납세자가 동의하지 않는 추징을 결심할 때는 불복에 대비한 면밀한 법 해석을 먼저 하여 사실 판단과 법 규정의 취지와 입법 배경 등에 대한 대비가 선행되어야 한다. 이 과정에 애매한 경우 즉, 명확성이 떨어지고 耳懸鈴鼻懸鈴(이현령비현령)으로 치부될 소지가 있는 때는 ‘납세자에 유리하게’를 적용하고 이를 세법해석의 대원칙으로 확립해야 한다. 다음으로 징세권을 남용하여 납세자의 불복과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 국가패소에 대해서는 징세 담당 공무원에 대한 엄중한 문책이 내규로 자리 잡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선 조세불복 건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들 것이다. 그 다음은 조세소송에서 국가승소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부수적으로 국세청의 징세권에 대한 확실한 권위가 세워질 것이며, 납세자에게는 성실납세만이 절세의 첩경임을 심어주게 될 것이다.

그래서 국가의 징세권이 절대적이긴 하지만 이에 대항하는 ‘납세자 권리’가 더 가치 있게 존중되어야 마땅하다. 지금의 국세행정은 정확히 말하면 머슴이 주인을 가르치는 격이다. 국세공무원의 주인은 통치권자나 권력자가 아닌 납세자다. 민주적인 절차와 적법성이 그래서 중요한 가치로 평가받는 것이다. 국세청이 무차별적 과세에 법적 대응력을 강화한다면 ‘납세자의 권리’는 어디를 헤매야 하는가? 형사법에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금과옥조처럼 받들어지고 있다. 세법에서도 마찬가지다. 성실성의 원칙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법의 판결이나 당사자의 인정으로 구체적인 탈세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성실한 납세자로 간주해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세행정이 선진화되고 과세가 정밀해질수록 조세 불복은 줄어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불복이 늘어남은 상식의 실종이다. 이는 아직도 ‘무리한 과세가 자행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한때 성행했고 국세청 오욕의 역사인 정치적 목적에 의한 하명조사가 없어졌다고 하지만 그 잔재와 관습이 남아있음이다. 제도개선을 하고 있지만 오래된 관습이 하루아침에 말끔히 정비되기는 쉽지 않음이리라. 그 개혁이라는 조치들도 국세공무원의 권익을 납세자 앞에 두고 행해진다면 올바른 개혁은 아닐 것이다. 국세공무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답이 나와 있다. 세무조사를 하게 되면 가능한 모든 것을 과세해 놓고 본다. 그것이 신상에 이롭기 때문이다. 공연히 무능으로 찍히거나 쓸데없는 오해의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다음 소송을 통해 법의 구제를 받는 것은 납세자 몫이다. 조세불복 소송에서 국가패소 시 과세담당 공무원의 문책이 추상같아야 하는 이유다. 자신의 행위로 납세자를 불편하게 만든 죄, 국가예산을 낭비한 죄, 국세 행정력을 낭비한 죄, 성실납세 분위기를 해친 죄 등의 죄목이 모두 신설돼야 국세공무원들의 마구잡이식 과세가 사라지리라.

결론은 명확하다. ‘애매하면 납세자 유리하게 해석’하면 된다. 무리한 추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더욱 강력해져야 하는 이유다. 과세의 공정성과 정당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따라서 과세실적보다 납세자 권리가 우선 되어야 한다. 납세자를 성실납세자로 예우하고 모범납세자로 받들어 모시면서 징세권을 행사한다면 조세불복은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다. 형사소송법상 무죄추정의 원칙과도 부합되는 세상의 원칙일 것이다. 일부 악의적이고 선의의 보호 규정을 악용하는 사례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법 적용의 대원칙을 버리는 것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처럼 무리함의 극치일 뿐이다.

납세자의 조세불복을 대하는 자세부터 교정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불가능한 공염불이다. 모래성 같은 誇示(과시) 행정으로 무가치한 것이다. 탈세를 목적으로 법의 허술함을 악용하는 열 명의 탈세범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선량한 납세자 한 명을 보호하는 것이 더 큰 가치라는 인식의 전환 없이는 국세청의 소송 대응 전략도 무의미하다. 진정 납세자를 받드는 국세행정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애매하면 납세자가 유리하게’가 세법해석과 국세행정의 근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其行己也恭 其事上也敬 其養民也惠 其使民也義(기행기야공 기사상야경 기양민야혜 기사민야의) 공자님 말씀이다. 처신은 공손하고, 윗사람에게는 공경스러우며, 백성에게는 은혜롭고, 사람을 부릴 때는 의리에 맞게한다.” 납세자를 대하는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 국세 공무원들에게 한번 권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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