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옥주 시인
배옥주 시인

산의 문을 열고 흘러갑니다

열려도 닫혀 있고

닫혀도 열려 있는 의뭉스러움

오름을 내려온 조랑말의 저녁도

한 호흡씩 들어가고

한 호흡씩 나가야 합니다.

방목은 풀어놓는 게 아니라 드나드는 것

흙바람도 자모음을 섞으며

모로 누웠다 모로 일어납니다

바람은 쉽게 겹쳐지지 않습니다

새끼 곁을 떠나지 않는

어미의 선한 꼬리질이

한 계절로 들어갔다 한 계절로 나갑니다

구름이 능선의 고삐를 풀어줍니다

산 한 마리, 산복도로에 이끌려 갑니다

갈기를 눕힌 순결한 산맥이

리을리을 흘러갑니다

리을리을

평지로 흘러갑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있는 것도 없고 없는 것도 없는, 흐르는 마음이 그저 “흘러갑니다.” “리을리을”, “산 한 마리”도 “산맥”이 되어 흐릅니다. 자음과 모음이 어우러져 하나의 언어로 나부끼듯이 산과 산이 그려낸 리을리을, 물 흐르듯 살라 합니다. 거기엔 비록 약육강식의 세계가 존재할지라도 오롯이 사랑과 평화 그리고 화해와 용서만이 리을리을, 펼쳐집니다. 시는 이처럼 산과 산의 정수리를 ‘리을 자(字)’로 본, 참신한 발견이 아닌가 싶습니다. 시인의 최근 시집 『리을리을』(2024,서정시학)엔 발바닥이 아픈 시들이 리드미컬하게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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