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17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상속세제의 유산취득세 전환을 두고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경실련은 이날 성명을 내고 “최근 정치권에서 재정상황에 대한 충분한 논의 없이 오로지 정치적 판단하에 상속세 감세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에서, 수년간의 대규모 부자감세로 재정파탄을 초래한 정부마저 그 마무리 작업이라 할 수 있는 상속세 개편에 참전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번 기재부의 상속세제 개편 추진 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공론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지 의문이며, 무엇보다도 현행 유산세형 상속세의 유산취득세형으로의 전환으로 인해 부의 양극화와 불평등 심화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우려가 크다”면서 “구체적으로 기재부는 유산취득세형으로의 전환과 더불어 배우자공제와 자녀공제 등 인적공제 한도액을 인상하고 가업상속공제 등 물적공제 한도액은 현행대로 상속인에게 적용할 계획이라고 한다”고 설명했다.
경실련은 “유산세형 상속세는 피상속인의 유산가액 총액을 기준으로 누진세율을 적용한다. 이와 같은 유산세형 상속세는 피상속인이 생애를 통해 형성한 재산 중 세원포착의 어려움 등으로 과세가 누락된 부분 및 각종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등 조세지출을 통해 혜택을 받은 부분에 대한 정산이 이루어진다는 측면에서 이론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지지를 받는 방식이다. 즉 피상속인이 생애기간 중 형성한 재산은 오로지 본인의 노력으로만 얻어진 것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정산의 개념으로 유산세형 상속세가 시행되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반면 유산취득세형 상속세는 피상속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상속인의 유산가액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방식”이라며 “이는 피상속인이 전 생애를 통해 형성한 재산이 각 상속인의 상속지분에 따라 상속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상속재산총액은 동일하지만 각각의 상속인이 부담해야 할 상속세액은 현저하게 감소하게 된다. 따라서 유산취득세형 상속세를 시행하는 경우 피상속인의 과세누락이나 조세지출을 통해 형성한 재산에 대한 정산은 불가능해진다. 오히려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의 재산을 승계받는 과정에서 응당 부담해야 할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것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가업상속공제제도는 선대로부터 계승되어 온 전통기술과 경영노하우를 전수하고 중소기업의 지속가능성 및 근로자 고용유지라는 정책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제한적 범위 내에서 상속세 부담을 완화하는 제도이나, 지난 수 년 간 가업상속공제 적용 대상의 확대와 사후관리 완화 및 공제한도액 인상이 이어지면서 현행 가업상속세제는 ‘가업상속’을 빌미로 자산가의 상속세 면탈과 부의 세습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지 오래”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정치인과 기재부는 여전히 ‘경영권 안정’ 등을 이유로 가업상속공제의 확대만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경실련은 “최근 지속된 자산 가격 상승으로 인하여 상속세 납부 등에 어려움을 겪는 서민이나 중산층이 있을 수는 있으나, 국세청의 상속세 관련 통계에 따르면 이 또한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보인다”며 “국세통계에 따르면 `23년 총 사망자(피상속인) 수는 35만2511명이었는데 상속세를 신고한 피상속인은 1만9944명(당해 연도에 실제로 상속세가 부과된 경우는 전체 사망자 중 5.7%)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상속재산가액 총액이 51조8563억원 정도인데 반해 상속세 총결정세액은 12조2914억원 수준에 불과하여 명목세율에 비해 실효세율은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 `24년 국세통계 중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상속재산가액 30억원 초과 50억원 이하 구간에 속하는 피상속인은 1928명, 50억원 초과 100억원 이하 구간에 850명, 100억원 초과 500억 이하 구간에 402명, 500억 초과 구간 상속세 피상속인은 37명에 불과하다는 점이라고도 강조했다.
경실련은 “이러한 과거의 통계수치는 우리나라 정치권과 기재부의 상속세 개편 논의가 일반 서민이나 중산층과는 큰 괴리를 보이고 있을 뿐 아니라, 유산취득세형으로 상속세를 개편하게 되면 주로 대자산가들이 큰 수혜를 받게 된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어 “우리나라 제9차 개헌 헌법 전문(前文)에는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라고 명시해 ‘기회균등 민주주의가’ 곧 헌법 가치임을 선언하고 있다”면서 “헌법재판소에서도 ‘상속세제도는 국가의 재정수입의 확보라는 일차적인 목적 이외에도, 자유시장경제에 수반되는 모순을 제거하고 사회정의와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해 국가적 규제와 조정들을 광범위하게 인정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헌법이념에 따라 재산상속을 통한 부의 영원한 세습과 집중을 완화해 국민의 경제적 균등을 도모하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1997.12.24. 96 헌가 19)’고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실련은 “우리나라에서 상속세는 헌법 가치인 ‘기회균등 민주주의’와 ‘사회정의와 경제 민주화’의 실현을 위해 시행되는 과세제도이다. 따라서 금번 상속세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정치권과 기재부는 대한민국의 조리를 담고 있는 헌법가치와 이를 긍정하고 있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반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정치권과 기재부는 상속세 개편이 중산층과 민생안정을 위한 것이라는 기만적 언행을 중단하고 내수침체와 물가상승으로 고통받고 있는 민생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경제정책과 조세정책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한편 정부는 올해 안에 입법안을 마련한 뒤 국회 의결을 거쳐 2028년부터 시행하겠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