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불단행(禍不單行)인가. 우울한 소식은 끝이 없나보다. 연일 뉴스판을 장식하는 정치는 점점 낙후되고 있는듯하여 심사가 불편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발 관세전쟁의 발발은 온몸으로 한기를 느낄 만큼 미래에 대한 불가측성과 두려움의 공포를 극한으로 끌어올리고 있다. 소련과 우크라이나 간 전쟁은 언제까지 우리에게 전쟁의 공포를 지속시킬지 불투명하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가자지구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이란을 비롯한 아랍 전체의 전쟁으로 확대될 징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러한 국지전과 관세전쟁은 우리 경제에 심대한 타격을 줄 것이 예상된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일관된 주장들이다. 여기에 더하여 국내 정치 지형은 예측이 불가하게 바뀌고 있어 국민이 부담해야 할 경제적 손실이 추정조차 하기 힘든 정도다. 여기에다 전국 동시다발적 산불로 서울 면적에 버금가는 산림이 훼손되고 인명과 시설 피해 및 문화재 소실에 따른 피해도 엄청나다. 다시 원상복구는 불가능할지도 모르고 피해 복구 비용도 천문학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모두 국민 혈세로 충당해야 할 돈이다. 경기는 점점 어려워 지는데 나라가 필요로 하는 예산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야 할 판이다. 다 함께해야 할 어려운 숙제가 눈앞에 놓인 형국이다. 그러나 국민의 여건은 그렇게 녹록지가 않은 모양이다. 혈세는 갈수록 농도가 진해지고 눈물과 한숨이 더해진다. 마치 고난의 도미노를 보는 이 참담함에 전율하지 않는 국민이 없을 것이다. 雪上加霜(설상가상)이요 漸入佳境(점입가경)이다.
이런 국가적 대재앙을 맞고 있는 터에 세금을 못 내는 국민이 늘어나고 있음은 국내 경기를 반영하는 바로미터(barometer)로 보여 매우 우울한 소식이다. 국세청의 통계연보에 의하면 지난해 ‘정리 중 체납액’이 약 20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2024년 세목별 국세 ‘정리 중 체납액’은 부가가치세가 8조4000억원으로 전체의 43.5%를 차지해 가장 많았고, 소득세가 4조원(20.8%), 법인세가 2조1000억원(11%)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부가가치세가 절반에 가깝고 그다음이 소득세와 법인세의 체납액 규모다. 또 하나 특징은 부동산 관련 세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이다. 국내 부동산 경기 침체가 심각함을 알 수 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도 전반적인 침체국면임을 반증하고 있다. 부가가치세는 이미 거래 상대방이 납부한 세금이다. 국가에 납부해야 할 세금을 미리 받아 챙긴 것이다.
세금의 체납은 단순히 경기 침체에 대한 지표만이 아니다. “오죽하면 세금도 못 냈을까?”에 심각함이 배가된다. “사업을 계속하고 싶으면 대출받아서라도 세금을 먼저 내라”는 말이 단순한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사업 측면에서 보면 이득이라는 것이다. 왜 빚내서라도 세금을 내야 하는지 한번 따져보자. 일단 세금을 체납하면 본세보다 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되기도 한다. 또 일정 기간과 일정 규모 이상이 되면 은행에 통보되고 신용이 하락한다. 한마디로 사업자금의 대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출국금지까지 내려지게 되어 국외 출국이 불가능하고 사업은 물론 해외여행도 못 가게 된다. 그래도 체납이 계속되면 재산에 대한 압류가 진행된다. 사업자의 경우 거래 상대방에 대한 매출채권 압류가 단행되면서 강제 퇴출당할 수밖에 없다. 사업을 못 한다는 얘기다. 체납세금을 납부하기 전에는 사업자 등록증도 못 낸다. 빚내서라도 세금을 먼저 내는 것이 사업의 필수 요건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업자들이 모자 바꿔쓰기 등 기발한 방법으로 사업을 계속하거나 재산을 감추는 사례를 보면 귀신이 탄복할 정도다. 이 정도면 체납정리에 애를 먹는 국세청 직원들의 노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체납자들도 할 말이 많다. 국세청에서 공고한 고액 체납자들은 오히려 능력자들일 가능성이 높다. 국세청의 체납추적 사례에서 보듯이 세금은 안 내면서도 감춰둔 재산으로 好衣好食(호의호식)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문제는 영세자영업자들이다. 당장 糊口之策(호구지책)이 시급하여, 세금이 중하지만 먹고사는 것보다는 후 순위인 것이다. 아등바등 종종걸음으로 몸이 부서지도록 일을 하지만 손에 쥐는 것은 입에 풀칠하기도 바쁜 거지 ‘동양 바가지’ 모양새다. 뿐이랴. 은행 문턱은 태산보다 높고, 어쩌다 문턱을 넘으면 이자는 虎患(호환)에 媽媽(마마) 보다 무섭다. 신용도가 낮아서 금리가 좀 높다느니 이러쿵저러쿵 직원의 설명은 귓등이고 신세가 처량하기만 하다. 재산에 압류가 걸리고 거래처의 매출채권에 압류가 들어오면 업계를 떠나야 한다. “사업을 계속해야 언젠가 일어서고 밀린 세금도 낼 텐데, 세무서는 기다려주지 않아요. 법에 따라 집행하니 어쩌겠어요. 사업을 접고 체납자이면서 신용불량자로 살아가는 수밖에 없어요. 천하 없는 장사도 옴짝달싹 못 해요” 세금 때문에 평생 죄인이 된 기분으로 살아야 하는 실패한 사업자들이 체납세금만큼 많을 것이다.
아마도 사업자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생각해 본 아이디어이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이 ‘세금 통장’일 것이다. 체납으로 고통을 당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간절할 것이다. 사업자 명의의 통장을 따로 하나 개설하여 모든 거래의 10%는 무조건 이 통장에 적립하여 부가가치세에 대비하고 매월 추정 소득의 20%를 소득세로 적립하는 습관을 만들자는 권고다. 하늘이 두 쪽 나도 세금만큼은 반드시 적립하고 절대로 손대지 않는다는 각오로 사업을 한다면, 설사 사업이 실패하는 경우라도 세금 때문에 곤욕을 치르거나 더 큰 손해를 자초하는 일은 미리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대부분의 자영업자는 매출에서 세금과 이익을 구분 없이 사용하고 세금 납부 때 쩔쩔매는 경우가 다반사다. 소위 ‘내 돈도 네 돈도 모두 내 돈’으로 호사를 부리다 이익이 많은 줄 알았는데 세금 낼 돈도 모자라는 식이다. 매달 매입과 매출을 정확하게 장부에 기재하고 세금을 별도의 통장에 관리하는 철저함이 몸에 밴 사업자라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나아가 국세청의 체납정리 업무를 줄여서 국가사무를 효율적으로 하는 충신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세금 통장’이 궁극적으로 체납을 줄이는 큰 방향을 견인하고 사업자들의 건강한 사업 체질에 도움이 된다면 자영업자들의 장부를 대행하는 세무대리인들이 앞장서면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장기적으로 세금 통장의 잔고증명을 세무대리인을 통해 주기적으로 보고토록 하는 업무의 변화를 추진하는 것도 방편이 될 것이다. 입법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로 추천해 본다. 국세행정의 진일보도 부대 효과일 것이다. “세금이 국가 발전에 寄與(기여)한다”는 기쁨을 모두가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라에 채무자가 되지는 말자. 세금은 내 돈이 아니다. 사업자들이여! 지금 당장 ‘세금 통장’을 만들자. 고난의 도미노를 헤쳐 나가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는 그다음이다. 사업의 성공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