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친분 임직원 28명 연루 882억원 부당대출, 은폐·축소 정황
인사조치 6명 외 나머지 현업 유지, 쇄신 계획 일주일째 '검토' 중
4대 국책은행의 하나인 IBK기업은행에서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발생한 사실이 적발됐다. 기업은행은 지난 1월 240억원대 부당대출이 있었다고 공시한 바 있지만 금융당국에 의해 훨씬 더 많은 부당대출이 있었고, 이같은 사실을 은폐·축소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장이 발표한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은 현재까지 준비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25일 기업은행에서 882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이 적발됐다고 발표했다. 금감원은 기업은행이 공시한 바를 바탕으로 두 달간 고강도 현장 검사를 벌인 결과 당초 알려진 것보다 부당대출 규모는 640억원이나 더 많았다. 기업은행의 내부통제 부실, 은폐 시도 정황 등에 대한 엄정한 법적 제재가 필요해 보인다.
31일 은행권 및 금감원 등에 따르면, 기업은행의 부당대출은 이 은행에서 퇴직한 은행원이 2017년 6월부터 2024년 7월까지 약 7년간 은행에 남아있던 대출 심사역인 배우자를 통해 입행 동기는 물론 사모임, 거래처 관계로 친분을 쌓은 임직원 등 28명을 동원해 대규모 부당대출을 일으켰다. 전체 부당대출금 882억원 중 785억원은 이들 전현직 은행원 부부가 주축이 돼 벌인 것으로 드러났다.
기업은행에서 14년간 근무했던 남편 A씨는 퇴직 후 부동산중개업소, 법무사 사무소 등 다수의 부동산업 관련 법인을 차명으로 설립하고, 지식산업센터 신축용 토지 매입비와 공사비, 미분양 상가 구입 등에 쓰려고 부당대출을 시도했다. 은행에 대출 심사역으로 있던 그의 배우자가 허위 서류(자기자금 부담 여력 등)로 대출을 승인해 주고 A씨는 64억원 상당의 토지를 전부 대출로 매입했다.
2020년에는 A씨는 거래처로부터 일시 차입한 24억원을 자기자금으로 둔갑시키고, 배우자가 이 사실을 묵인해 공사비 대출 59억원대를 집행했다. A 씨는 이후 지식산업센터 미분양 물량도 기업은행에 떠넘겼다. 기업은행 고위 임원에게 청탁해 내부 기준에 부적합한 장소임에도 신규 기업은행 지점이 이 지식산업센터에 입점되도록 했다. 그 밖에 A씨가 매매가를 부풀린 허위 매매계약서를 A씨의 입행 동기(심사센터장 B씨와 지점장 3명)들이 승인해 216억원 규모의 미분양 상가 매입 자금이 부당대출 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금품 15억7000만원과 골프 접대 등을 관련 임직원에게 제공했다.
나머지 27억원, 70억원 부당대출 건도 유사한 방법이 동원됐다. 입행 동기인 심사센터장 B씨는 거래처 관계인 대출 차주와 공모해 차주 관계사 대표를 자신의 처형으로 교체한 뒤, 또다른 입행 동기인 지점장과 결탁해 처형이 대표로 있는 법인에 27억원을 부당대출해줬다. 한 지점 팀장 C씨는 과거 함께 근무한 퇴직 직원의 요청을 받아 자금 용도 및 증빙 서류 확인 없이 70억원대 부당대출을 해주기도 했다.
금감원은 은행 측이 지난해 9월 이미 A씨의 범행 사실을 인지하고도 상부와 금융당국에 보고하지 않는 등 사건을 은폐·축소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은행이 자체 조사를 실시한 뒤 금품수수 관련 부서는 부당대출 관련 부서에 조사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부당대출 관련 부서는 문제 지점들에 대해 동시감사 원칙을 깨고 사건 간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분할감사를 실시했으며, 감사가 끝난 한참 뒤인 지난해 12월에야 금감원에 사고 발생 사실을 알렸다. 이때 본사 인지 경위 허위 기재, 핵심 인물 A 씨를 ‘지인 A’로 표기, 공모 사실 미보고 등 의도적인 은폐 시도가 이뤄졌다. 부당대출 관련 부서 직원들이 올해 1월 부서장 지시로 271개 관련 파일과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한 행위도 발각됐다.
하지만 현재까지 은행 측은 이번 대규모 부당 대출에 연루된 임직원들에 대해 아직까지 대부분 조치 없이 현업에서 배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의 검사가 끝나지 않아 제재 대상자를 확정짓지 못하고, 금감원이 공개한 일부 사례 외 다른 부당대출 해당 건이 확정되지 않아 연루자를 추리지 못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자체 조사 후 사건의 핵심 인물인 퇴직 직원 A씨의 아내와 사고 은폐 등을 지시한 직원 등 6명의 임직원만 업무 배제 및 대기 발령 조치를 내렸을 뿐이다.
금감원은 지난 25일 기업은행 부당 대출과 관련해 이해관계자와의 부당 거래에 대한 검사 사례를 발표하면서, 연루자를 총 20여명 수준이라고 밝혔다. 검찰도 기업은행 부당대출 관련 지점과 차주 20여 곳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벌이고 있다.
김성태 은행장은 다음날인 26일에서야 기업은행의 부당대출 관련 대국민 사과와 함께 조직 쇄신안을 발표했다. 김 행장은 “이번 일로 IBK에 실망했을 고객과 국민에게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며 “금감원 감사 결과를 철저한 반성 기회로 삼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신뢰 회복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금감원으로부터 아직 현장 검사 결과를 직접 통보받지 못했다”면서 “금감원 검사 종료 후 제재 대상 명단을 받은 뒤 인사 조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의 검사가 종료될 때 까지 사고 금액은 물론 제재 대상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인사 조치의 명분이 마땅치 않다는 얘기지만, 일반 시중은행이나 사금융이 아닌 국책은행에서 이 같은 대규모 부당대출이 장기간에 걸쳐 이루어졌고, 연루된 임직원만 20명이 넘는 수준이라는 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내부통제 및 임직원 윤리의식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기업은행은 이번 사태의 원인이 내부통제와 업무 프로세스의 빈틈, 시스템의 취약점과 함께 부당한 지시 등 불합리한 조직문화에 있다고 보고 업무 프로세스와 내부통제, 조직문화 전반에 강도 높은 쇄신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향후 모든 대출마다 '부당대출 방지 확인서'를 작성하도록 하고, 아울러 ‘승인여신 점검 조직’을 신설해 영업과 심사를 분리하는 등 내부통제 쇄신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기업은행이 'IBK 쇄신 계획'을 발표한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부당대출 방지 확인서 실행, 승인여신 점검 조직 신설, 감사자문단 운영, IBK쇄신위원회 구성 등 신속하게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던 부분은 현재까지 '검토‘ 단계인 것으로 확인됐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약속한 것에 대해 이번 주 내에 준비되는 대로 상황을 발표하겠다"며 "인사 조치는 금융당국의 조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