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종합소득세 환급 서비스 ‘원클릭’을 개통했다는 소식은 진정한 납세 서비스란 ‘이런 것’임을 보여준 쾌거였다. 이번에 국세청이 발표한 ‘원클릭’ 서비스는 최대 5년 치 환급 금액을 한 번에 보여주고 클릭 한 번으로 환급신청을 마칠 수 있는 혁신적인 서비스이다. ‘삼쩜삼’과 같이 간편하게 환급 세액을 계산해서 환급을 대신 해주는 일부 세무 플랫폼 사업자들에게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원클릭’ 서비스를 개통한 첫날 13만여 명이 약 100억원에 달하는 환급금이 신청된 것만 봐도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여기까지 오기 위해 국세청은 매년 배달 라이더·학원 강사 등 인적용역 소득자들에게 선제적으로 안내해 1000만 명이 넘는 대상자들에게 약 2조6000억 원을 환급해 주는 세정 지원을 펼쳐왔고, ‘모두채움 신고도움 서비스’를 확대해 지난해 종합소득세 신고대상의 50%가 넘는 700만 명에게 제공한 바 있다. 국세청의 설명대로 환급금 계산은 각종 신고서, 지급명세서, 연말정산 간소화 자료 등 방대한 빅데이터 분석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5년간의 세법 개정 사항을 반영해 정확한 세액을 계산해야 하는 고난도 과제이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한 국세청 관계자들의 노고에 납세자의 한 사람으로 감사를 전한다.
그런데 이 무슨 희귀한 사달인가. 내 눈을 의심했다. 이것이 정말 국세청이 배포한 보도자료인가. 정부 기관에서 발표하는 문서는 공문서다. 당연히 표준말을 사용해야 오해가 없다. 애교로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 큰 실수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인기 드라마 제목을 보도자료에 넣을 생각을 했다는 발상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다만 시대상이나 최신의 트랜드를 따라가는 2030의 젊은이들에게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상황이고, 특히 신세대들의 톡톡 튀는 생각의 참신함으로 보일 수도 있다. 이 모두를 勘案(감안)해도 ‘국세청에는 사람이 이렇게 없나’는 생각은 어쩔 수 없다. 외부에 발표될 공공문서, 그것도 활자가 생명인 언론사에 배포하는 보도자료를 잘 알려지지도 않은 지방의 방언을 사용한다? 누가 이해할 것이며 누가 좋게 평가할 것인가. 공무를 장난으로 여기는 황당함이다. 나아가 이것을 바로잡는 인재조차 없다면 허접한 조직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공공기관의 공문서는 문학작품도 아니고 극적인 효과를 노리는 오락작품은 더더욱 아니다. 그런데 오락용인 드라마 대본의 작품 속 언어가 정부의 공문서에 등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기를 일으킬 정도다. 국세청, 나아가 대한민국의 미래가 걱정을 넘어 암울하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운 것으로 기억된다. 네덜란드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처음엔 손가락으로 제방의 구멍을 막다가, 나중에는 팔과 어깨까지 결국 온몸으로 막아낸 이야기와 그림을 통해, 아무리 튼튼한 둑도 바늘구멍만 한 작은 틈새에서 출발해서 무너지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별것 아닐 수도 있고 사소한 실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은 실수가 공무원이면 앞으로 나라에 치명상을 입힐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주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기 위해서 조직에는 수장을 중심으로 간부도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국세청 간부들이 벌써 차기 정부에 줄서기 바빠서 일은 건성으로 하는구나 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넘어가는 것은 더욱 위험하다. 이 보도자료의 생산 부서의 담당자들과 개인납세국 및 빅데이터 담당자 등 협조자들 모두가 책임감을 무겁게 가져야 한다. 애초에 “폭싹 속았수다”를 넣을 생각을 한 사람은 누구인지, 그 많은 결재 단계를 거치면서 아무도 지적한 사람이 없었다는 것인지, 문제의 심각성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를 정도다. 문제성을 의식한 사람 자체가 없었다면 더욱 심각하다. 대한민국의 공무원사회가 희화화하는 정도를 넘어 국가 위기로 가는 緞綃(단초)라면 진정 슬프다.
공적 문서에 사투리나 방언을 사용한다면 의미가 왜곡되거나 부정확하게 전달된다. ‘폭싹 속았수다’는 제주도 방언이다. 지난 3월7일 넷플릭스를 통해 방영하는 16부작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하다. ‘폭싹 속았수다’의 표준말은 ‘매우 수고하셨습니다’이다. 국세청의 보도자료에 ‘폭싹 속았수다’가 등장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투리 보도자료가 언론에 배포된 이상 공보관도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동안 불편을 감수해 주신 납세자 여러분께 진정을 담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가 정답이다. 짧게 해야 한다면 “감사함을 담습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표준말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환급신청이 어렵다고? 그동안 폭싹 속았수다.” 보도자료의 제목이다. 보도자료를 본 사람이면 못 볼 수도 없고 안 볼 수도 없는 큰 활자의 제목이고 특이한 말이라 눈에 확 들어온다. 아무리 인기 있는 드라마라 해도 시청률이 아무리 높아도 표준말을 대체할 수는 없다. 심각성은 제주도 방언도 모르고 넷플릭스를 시청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어떤 세무사가 국세청의 보도자료를 오해하여 “삼쩜삼에 완전히 속았다는 것이 증명됐다”고 SNS에 올렸다가 황급히 내리는 해프닝도 있었다. 국세청의 ‘원클릭 환급 서비스’가 자신들의 일이 사라짐을 자각하지 못한 채 특별한 아이디어로, 특수한 영업 방법으로 성공을 거둔 ‘삼쩜삼’이 망하게 되었다며 환호하는 어처구니없는 오해가 생긴 것이다. 희망 사항과 단어의 오해석이 빚어낸 해프닝만으로 보기에는 심히 민망하다. 세무 전문가인 세무사가 납세자들에게 국세청 보도자료에도 나와 있지 않느냐 ‘삼쩜삼’에 “완벽하게 속았다”라고 했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일인가. 세무 전문가인 세무사가 오해할 정도면 환급 대상인 노동자나 영세사업자들은 한두 명이 아닐 것이다. 물론 본 사람도 아주 극소수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공공기관의 공적 문서는 표준어로 작성되어야 한다.
국세청의 은혜로운 혜택에 감읍하면서 스스로 환급신청을 하는 사례는 기대보다 낮을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60세 이상의 노령 인구들 가운데 환급이 필요한 사람들은 핸드폰 사용이 간단치만은 않음을 알아야 한다. 심지어 세무서를 직접 찾아가서 직원에게 해달라고 떼쓰고 도움을 받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도 생각보다는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들이 보도자료를 볼 일은 없겠지만 언론까지 부화뇌동하여 “폭싹 속았수다”고 제목을 뽑아서 국세청의 편리한 ‘원클릭 환급 서비스’를 실어본들 과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까?
신세대들의 ‘초성 문장’이나 ‘줄임말 대잔치’에 쓴웃음을 지으면서 언젠가는 크게 사달이 날 것이란 불안함이 있었다. 재미 삼아 한두 마디 용인한 것이 결국 사달이 난 것이다. ‘아무 말 대 잔치’는 이렇게 하여 공문서에 무임 승차한 셈이다. 어째 세상이 갈수록 힘들고 어려워지는 이 기분은 뭘까? 제주도 방언인 ‘폭싹 속았수다’는 힘들게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스스로에게 보내는 위안이면 족하다. 우리 모두 위로가 절실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본분에 충실할 때 존재의 가치가 높아진다. “폭싹 속았수다”가 초래한 한순간의 실수겠지만 국세청의 신중함을 다지는 계기로 삼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