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끝엔 살얼음 남아있는데
아버지 현관문 앞에 앉아 봄을 마중하고 있다
무릎 연골이 다 닳아버려
네 발로 기어다니는 엄마는 배추벌레보다 굼떠
누워계신다
아버지 봄 마중 나간 것이 아니라
어머니께 면목이 없어 빙하의 바람을 맞고
벌을 서고 계신 거다
아버지, 개똥밭에 굴러도 저승보다 낫다고
어머니보다 당신 먼저 하늘로 보내달라고
목젖에 고인 눈물 받아 정화수로 올리고
기도하고 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나이 드신 남성이라면 이 시를 읽고 바로 고갤 끄덕일 것입니다. 아내를 두고 먼저 가는 것이 안쓰럽긴 하지만요. 고령화 시대가 빠르게 진행되는 요즘, 홀로 남은 남성 노인네를 보면,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를 보는 것 같아 더욱 그렇습니다. “당신 먼저 하늘로 보내달라고” 드리는 그의 “기도”는 아픈 아내에게 잘못한 뼈저린 후회와 반성의 “봄 마중”입니다. 주변에 널려있는 소재를 어떻게 시로써 승화시키는가를 잘 알려주는 작품입니다. 계간 문예지 『시인정신』 2025년 봄호에서 가지고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