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했다. 짧은 생각이 부끄러웠다. 상대방에게 부담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못 했다. 불의의 전화를 받은 이후 그분은 두 번 다시 내 칼럼을 읽지 않았다. 나는 정말 선의였다. 그냥 고마웠을 뿐이다. 내 글을 읽고 퍼 날라 준 것이 감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세무사님이시죠. 제 칼럼 열심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 한번 뵙고 인사드리겠습니다.”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가 그렇게 심사를 불편하게 했나? 당혹스러웠다. 결코 이런 결과를 예상한 것은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원인이 지적재산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칼럼을 자신의 홈페이지에 허락 없이 게재했기 때문에 따지거나 법적 분쟁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지적재산권’이 우리 생활에 얼마나 깊이 들어와 있는지 실감하는 계기가 됐다.

‘지적재산권’은 크게 세 종류로 분류된다. 산업 분야의 특허법, 실용신안법, 상표법, 디자인보호법 등의 ‘산업재산권’과 문화예술 분야의 ‘저작권법’ 그리고 반도체 배치설계법을 비롯한 사회 및 기술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의 ‘신지식재산권’이 있다. 이 가운데서도 최근 가장 심각한 문제를 惹起(야기)하는 분야가 컴퓨터 운용과 관련한 시스템과 프로그램이다. 하드웨어는 고도의 기술력이 수반되므로 일반인들과는 거리가 있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우리 실생활에 밀접하게 이어지고 컴퓨터와 소프트웨어의 사용 없이는 생활 자체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소위 ‘앱’으로 불리는 생활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가 수천 종에 이르고 그들의 연간매출도 수조 원에 달한다. 특히 AI로 불리는 특별한 기술은 이미 인간 문명을 잠식하고 있다. 상응하여 ‘지적재산권’에 대한 권리 침해와 소송이 폭발하고 있다.

세금도 예외일 수 없다. 특히 국세청은 납세자의 신고 편의를 위한 다양한 방법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다. 국세청도 홈택스를 기반으로 ‘손택스’니 하는 납세자 편리를 도모하는 유용한 앱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신고납부제도를 견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세금 제도에서는 국세청의 ‘홈택스’도 우리 생활에 절대 필요한 소프트웨어의 하나이다. 공공성, 즉 납세자의 납세 편의를 위해 개발된 특수한 프로그램이다. 공공의 이익을 위해 납세자에게 거의 무제한으로 공급되고 있다. 운용 주체가 국세청이라는 정부 기관이고 납세자들의 세금 신고와 납부의 편의에 맞춰진 특화된 프로그램이다. 그만큼 국세청만이 가능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다. 개인이 절대로 만들 수 없는 정보들을 제공하는 것이다. 문제는 납세자를 위한 유용한 정보와 시스템을 개인의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영세 납세자들에게 “환급금을 찾아 준다”고 유혹한다. 합법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종합소득세 등 신고 대행 수수료를 챙긴다. 신고 대행의 경우 국세청의 홈택스 정보를 이용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종합소득세 신고를 대행해 준다’는 의미는 국세청 홈택스에서 ‘모두채움서비스’를 이용한다는 것이다. 신고자의 개인정보를 이용하여 대신 홈택스에 접속하고 신고 절차를 끝내주는 단순 용역이다. 홈택스의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으면 신고자의 소득을 확인할 방법이 없으며, 신고자의 주장에 의존해 신고할 경우, 불성실 신고나 과다 내지는 과소신고 등 신고 후 국세청의 업무를 증가시키는 요인이 될 공산이 크다. 단지 개인이 홈택스에 접속하기만 하면 신고가 편리하고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아니즘’에 익숙한 납세자는 어디에나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환급금을 찾아준다는 핑계로 모집한 개인의 정보를 이용하여, 대리 접속 후 신고를 완성해 주는 용역비를 받는 것이다. 홈택스의 특성상 납세자 누구에게나 오픈된 점을 활용하는 상술이다. 한마디로 국세청 정보와 기술력이라는 거대한 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에 가깝다. 역으로 말하면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유명한 말처럼 스스로 권리를 포기한 게으른 납세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상존한다.

‘지적재산권’의 보호가 시대적 사조이다. 납세자에 대한 서비스라는 이유로, 공공 서비스라는 이유만으로, 누구나 쉽게 이용하게 해야 한다는 서비스의 대원칙 때문에, 일부 악용 사례보다 공공의 이익이 크기 때문에, 공개된 정보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하는 기생충까지 박멸할 수 없다면, 갈수록 국세청의 공신력이 떨어질 것이다. 특히 다수가 이 정보를 이용하여 경쟁하며 돈벌이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규제해야 할 필요성이 충분하다. 국세청의 정보를 영리 목적으로 사용하면 엄벌하는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국세청은 개방된 공공의 정보를 이용하여 ‘귀찮아니즘’에 편승하는 납세자들을 줄여서, 영리 목적 영업의 원천을 차단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에 능숙하지 않은 납세자도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만 하면 신고가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시스템의 개발에도 더욱 매진할 필요가 있다. 국세청의 홈택스에 의존해서 ‘모두채움서비스’를 이용하여 신고해 주고 용역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저급한 노동이다. 저소득 자영업(배달 라이더, 대리운전 기사, 보험설계사, 택배 등)의 경우 권리 위에 잠자는 자들이다. 권리도 필요 없고 의무는 성가시다. 무료 서비스가 필요한 이유다. 이들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들이지만 의무의 강제 또한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국세청과 보조를 맞추는 것이 국세행정에 협조하고 성실납세라는 공공의 이익에 부합하는 일이다. ‘지적재산권’을 발동해야 하는 이유다.

국세청이 납세자를 위해 개발하는 시스템과 지적 정보가 특정인의 돈벌이에 악용됨을 근절시키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납세자의 개별 정보 수집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고 국세청의 홈택스 시스템에 대리인의 접근권한을 제한하는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공공의 개방된 정보를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행위는 무조건 근절시켜야 한다. 공공의 개방된 정보에 대해서도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법을 만드는 것이 일차적 관문이다. 법 이전에 윤리적인 양심에 호소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불가능하다면 행정규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세금이 투입된 국세청의 홈택스 자료가 특정인의 돈벌이 수단이 되면 안 된다. 자칫 세금 좀도둑으로 몰릴 수도 있다. 남의 ‘지적재산권’을 돈벌이에 사용했다면 양심 불량이다. 국민의 혈세를 좀먹는 것도 모자라 서민의 주머니까지 노리는 것은 국민에 대한 심한 배신이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그의 소설 ‘롤리타’에서 “양심이란 아름다움을 즐긴 대가로 치르는 세금”이라고 했다. 양심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든다. 성실납세는 양심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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