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흔들면 대통령 해 먹겠나 정말 못해먹겠다는 소리 나온다.” 지난 2003년 봄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하신 말씀이다. 이후 평가가 엇갈렸다. 대통령 리더십이 불안하다와 얼마나 대통령을 흔들면 힘들어서 저런 말까지 할까였다.
2016년 봄 납세자들의 세금조력자로서 고소득전문자격사로 불리며 국가재정역군으로도 불리는 세무사들의 수장인 한국세무사회장의 입에서도 이런 말이 나올 것 같은 ‘얄궂은’ 생각이 든다.
지난해 6월 치러진 한국세무사회장 선거는 참으로 난리법석이었다. 흑색선전과 비방이 난무했다. 그 과정에서 어떤 후보는 경고를 받았고, 또 어떤 후보는 후보자격박탈이라는 세무사회 초유의 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어떤 후보를 지지하던 측의 인사들도 대거 징계를 받았다. 징계의 무게는 ‘회원권리정지1년’.
최근 이 징계가 윤리위와 그 상고심인 이사회에서까지 확정되어 이제 이들은 4년 동안 세무사회가 실시하는 어떠한 선거에도 출마할 수 없게 되었다. 물론 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경우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징계가 확정되자 징계를 당한 당사자들의 반발이 거세다고 한다. 어떤 회원은 선거로 뽑힌 지방회장직을 내려놓겠다고 사의를 제출했으며, 어떤 회원은 소송을 검토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리고 한 회원은 세무사회관에서 1인 시위를 벌이면서 백운찬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백운찬 회장은 세제실장, 관세청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감하고 세무사로 개업했다. 그리고 세무사회장에 출마해 반듯한 세무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많은 회원들의 요청으로 출마했다. 수많은 전직 국세청장, 관세청장, 세제실장들의 경우 한사코 마다한 고행의 길이었다. 그 역시 세무사회장을 하지 않았다면 많은 국세청‧세제실 고위직들이 그러하듯 대행로펌과 세무법인의 고문‧회장 명함을 들고, 수억 원의 연봉에 사흘이 멀다하고 골프장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시중에서 떠돈 이야기처럼 국회로 진출할 교두보로 세무사회장을 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이 또한 최근 치러진 4.13총선에 몸담지 않았다는 점에서 낭설로 판명됐다), 정말 힘든 선거전을 잘 버티며 당선되었다. 그리고 많은 회원들의 예상과 선택대로 그는 세무사들의 위기(강제외부세무조정제도 무효 판결)를 정면으로 돌파해 세무사들의 젖줄을 지켜냈다.
그런데 그가 생각 못했던 변수가 생긴 것이었다. 지난해 선거가 끝난 후 선거관리위원회가 세무사회의 질서를 바로잡겠다면서 백 회장과 상대했던 후보들에게 경고와 징계장을 날린 것이었다. 한 후보는 경고를 순순히 받아들였고, 한 후보와 이 후보를 지지했던 지방회장을 비롯한 일부 회원들에게는 중징계가 결정돼 윤리위원로 통보됐다. 윤리위에서도 선관위가 결정한 중징계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이들은 징계를 수용할 수 없었다. 이의신청을 제기했고, 징계를 최종 확정하는 윤리위 상고심(이사회)에서도 징계내용은 달라지지 않았다. 40명이 훌쩍 넘는 이사들 중 2~3명이 기권 의사를 밝히는 정도였으며, 압도적 표차로 징계가 확정됐다.
그러나 징계를 받은 사람들이 크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지사. 법원에 소송을 검토한다는 이야기와 함께 어떤 회원은 백 회장의 사퇴를 요구하는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그동안 징계를 받은 회원들 측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세무사회의 화합을 위해 이번 징계는 퉁치고 모든 것을 없던 것으로 하자는 것이 골자였다. 그리고 백운찬 회장도 ‘하나 되는 세무사회’를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런 이유로 아마도 이번 상고심에서 백 회장이 특유의 카리스마로 ‘이사님 여러분, 세무사회의 화합을 위해 없던 일로 합시다’라며 분위기를 만들고, 이사들을 독려해 윤리위의 결정을 무력화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또 이런 바램의 근거는 현행 선거관리규정에도 문제가 많고, 선거관리위가 편파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생각도 작용했던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영 딴판으로 나왔다. 백 회장과 연대부회장들은 징계심의와 관련 제척사유가 된다는 이유로 상고심에 참여할 수 없었고, 회장의 카리스마로 이사들에게 결과를 ‘강권’할 수도 없었다. 결국 상고심은 어떠한 내외부의 힘도 작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40명이 넘는 이사들의 자유투표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상고심 결정 후 화합하는 세무사회를 위해 징계가 당연하다는 회원들에게는 욕을 먹을지라도 이들의 징계를 무효화하고 화합의 모양을 갖추기 위해 백 회장을 비롯한 집행부가 무던히 애를 썼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이야기인 즉슨 ‘세무사회의 규정을 위반한 것은 명백한 사실인 만큼 상고심에 출석하여 그것을 인정이라도 해 달라’는 요청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그렇게만 한다면 지방회장들은 물론 이사들을 설득하고, 독려해 더 이상 선거로 인한 후유증과 불협화음을 없애겠다는 노력이었다는 것. 그렇지만 결국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백 회장의 생각은 아마도 이럴 것이다. ‘나도 징계를 없애주고 대화합을 선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사실이 명백한데도 잘못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없던 것으로 할 수 있겠습니까. 세무사회 업무는 회장 혼자 독단으로 처리할 수도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1년 뒤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훌쩍 떠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