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오미 현 둥베이 지방은 분명 이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 가장 누추하고, 가장 초연하면서 가장 속되고, 가장 성결하면서 가장 추잡하며, 영웅호걸도 제일 많지만 개 잡놈도 제일 많고, 술도 제일 잘 마시고 사랑도 제일 잘할 줄 아는 곳이라는 사실” 201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중국의 작가 모옌의 ‘붉은 수수밭’에 나오는 묘사다. 모옌의 이 묘사는 인간 내면의 다면성에 의한 갈등이 어떻게 사회현상으로 발현되는지에 대한 은유이다. 즉, 우리 주변의 모든 상황은 획일적이지 못하고 갈등과 번민이 지배하며 궁극적으로 양분되는 형태로 나타난다는 의식구조를 읽게 된다. 과학적으로는 작용반작용의 법칙이다.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좋은 것에는 반드시 안 좋은 것도 똑같은 크기로 존재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임을 깨우쳐준다. “세상은 진보하지만 그와 동시에 種(종)은 퇴화한다는 것을 난 절실하게 느낀다”는 표현이 이러한 모옌의 사상적 본류를 뒷받침해 준다. 이처럼 같은 집단에 이질적인 존재로 서로 불편을 감수하는 현실에 대한 사유는 어디에나 있다. 사고의 다양성으로 불려지면서 오히려 시너지를 증가시키는 요인으로 미화되기도 하는 이질적 존재의 불편한 동거는 너무나 흔하다. 특히 정치권의 추종자들이 심하다고 하지만 국가의 시스템인 공조직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국세청의 납세자보호관도 상충되는 권리의 불편한 동거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국세청이 12일 개방형 직위인 납세자보호관을 새로 임명했다. 국세청장의 납세자보호관 임명 소식을 접하면서 징세권과 납세자보호라는 상충되는 과제를 국세청이 어떻게 풀어나갈지 생각해 보게 된다. 국세청의 징세권은 반대급부 없이 세금을 추징하는 권한이다. 이에 반해 납세자는 헌법에서 ‘납세의무’만을 규정하고 의무에 상응하는 권리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징세권과 납세자보호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있고, 진보와 보수에 따라서 뿐만 아니라 사람마다 처한 상황마다 다른 생각을 하는 정답이 없는 특징을 가진다. 답 없는 논쟁을 빗대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비슷한 개념으로 볼 수도 있을 만큼 정확한 선을 가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세권의 최고책임자가 임명하는 납세자보호관이 납세자 권리를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는 不問可知(불문가지)다. “‘납세자보호관’은 국세행정의 집행 과정에서 억울한 납세자가 없도록 권익을 철저히 보호하고, 민생 현장의 세무 불편 및 고충을 폭넓게 수렴·개선하면서 경기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큰 영세납세자를 세심히 지원해야 하는 중요한 직위다. 공개모집에 응모한 다수의 민간전문가 중 서류·면접심사, 역량평가 등 엄정한 심사를 거쳐 최적임자를 임명함으로써 ‘일 하나는 제대로 하는, 국민께 인정받는 국세청’ 구현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게 됐다.” 이번 납세자보호관 임명에 대한 국세청의 설명이다. 아무리 선의로 국세청장이 최선을 다해서 납세자를 보호해도 징세권에 우선할 수는 없다. 그래서 납세자들의 斜視(사시)는 어쩔 수 없는 당연함이다. 국세청장이 임명하는 납세자보호관이 징세권에 얼마나 대항할 수 있을까? 의심한다.

국세청은 2008년 납세자보호관 제도를 도입한 이래 납세자보호관이 독립적으로 전국의 납세자보호담당관을 지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납세자보호관이 공정하게 독립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납세자보호관의 직무와 권한은 막강하다. 국세행정 모든 분야에서 납세자를 보호하는 업무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민에게 감동을 준 납세자 보호 사례는 기억되지 않았다. 나아가 ‘징세사무 처리규정’이나 ‘조사사무 처리규정’ 등 국세청의 업무처리 지침에 납세자 권리 침해 소지가 있으므로 개정을 권고한 사례도 경험한 바 없다. 국세청의 흉이라 소리 소문 없이 납세자보호관의 주장을 받아들였는지 아니면 인사권자의 눈치를 살피느라 제대로 납세자보호관 역할을 못 한 것인지는 檢定(검정)이 어렵다.

신임 납세자보호관의 자질이나 능력은 논외로 하고 제도 운영의 취지에 맞게 운영될 것인가 의문에서 출발하여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납제자 보호에 충실할 수 있는지 방안을 찾아보고자 하는 소망이 크다. 납세자보호관의 역할은 위법 부당한 징세권의 행사 시에만 작동하게 된다.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세무공무원이 위법부당한 권한을 행사한다는 말인가. 위법이나 부당함이 없는 정당한 징세권의 행사에는 납세자보호관의 역할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징세권이란 특성상 납세자에게 절대적이고 강력하다. 납세자 보호를 이유로 관련 규정과 행정을 순화시킬 수 있으려면 국세청장의 임명과 지휘 감독을 받는 조직구조로는 어렵다.

징세권과 납세자 보호라는 두 개의 상충 되는 권리가 국세청에서 한솥밥을 먹는다는 것은 불편한 동거일 뿐이다. 국세청장이 납세자보호관을 임명하는 것만으로도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라는 동화의 한 구절이 연상된다. 국세청이 납세자를 보호하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국세청이 제정한 ‘납세자권리헌장’이 이름만 거창할 뿐 존재감이 없는 것이나 다름 아니다. 납세의무에 상응하는 납세자 권리는 납세자 스스로 찾아야 한다. 누구도 대신 찾아줄 수도 없다. 납세자를 존중하고 진정으로 섬기고 싶다면 납세자보호와 징세권은 분리되어야 마땅하다. 국세청은 징세권에 충실하고 징세권에 대항하는 납세자 보호는 독립된 기구에서 담당하는 것이 효과 적이라는 생각이다. 국세청 조직 내의 납세자보호관은 불편하다. 솔직히 납세자 보호에서 현실성이 멀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진정한 납세자 보호를 위해서는 총리실이나 인권위원회 또는 감사원 등 타 기관에서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야 세법과 시행령 및 시행규칙에서 과도하게 납세자를 강제하는 규정들을 완화 시킬 방법을 찾는 노력이 가능하다. 나아가 국세청의 업무규정들 가운데서도 국세행정 편의를 위해 납세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규정들을 가려내어 개선을 권고하면 국세행정의 진보는 확실하지 않을까? 국세청이 납세자를 섬기는 것은 당연하지만 보호해야 할 가치는 징세권에 우선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징세권과 납세자 보호라는 서로 다른 권리가 동거하는 불편한 진실을 해소하기 위해 납세자보호관 제도의 새로운 접근과 연구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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