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소득세 신고 마감을 며칠 앞둔 5월의 신록이 끝나갈 무렵, 거리는 나른하고 다니는 사람도 뜸한데, 여기저기 선거 운동원들만 연신 배꼽인사를 해되며 손가락을 치켜세워 보지만 연민이 머릿속을 스치면서 왠지 모르게 울적함이 심사를 어지럽힌다. 아직 다 자라기도 전의 가로수 잎들이 더위를 먹은 듯 풀 죽어 있는 장면과 거리의 풍경이 얼추 비슷한 느낌을 준다. 기상이변 탓인지 세상인심의 이반 탓인지 생동감을 상실한 암울한 거리의 진풍경에 치를 떨면서 택시를 탔다. “날씨가 벌써 한여름 같아요. 이제 봄은 사라지나 봐요.” 이마의 땀을 닦으면서 내가 너스레를 떨자 택시 기사가 에어컨을 켠다. 어색한 침묵도 싫고 직업적 습관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사장님 종합소득세 신고하셨어요.” ‘다분히 소득세 신고가 불편한 점이 없는지 바닥의 반응을 파악해 보자’는 의도가 내포된 질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이 의외였다. “저희는 조합에서 알아서 다해 줍니다. 세무사 사무실 직원들이 조합에 나와서 신고서 다 작성해서 해주니까 우리야 편하죠.” 깜짝 놀란 표정으로 내가 물었다. “세무사 사무실에서 공짜로 신고를 해준다고요.” “왠걸요. 5만 원씩 내죠. 우리 같은 개인택시도 사업자라고 말마따나 사장이라 이거죠. 개인적으로 세무사 사무실에 맡기면 9만 원인데 조합에서 단체로 모두 동참하면 5만 원에 해준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죠.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 아닙니까. 신고하러 세무서 가면 시간 뺏기고 일 못하고 번잡잖아요.”
이것이 지금의 세정 선진국임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의 실상이고, 납세자 국민의 적나라한 세금 인식이다. 솔직히 세무사가 이렇게 납세자에게 편리하게 도움을 주는 자격사임과 특히 존재의 가치를 실감했다. ‘세금은 세무사에게 맡긴다’가 관행으로 자리 잡았나 싶다. 그렇다면 국세청이 그렇게 자랑하는 홈택스는 무용지물인가? 국세청이 납세자 국민을 위한 선진 세정의 모델이 ‘국민팔이’였단 말인가?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세무사가 다 해 준다”는 의미의 전달에 문제가 있음이다. 세무사 사무실 직원이 국세청의 홈택스에 접속하여 모두채움서비스를 이용하여 종합소득세 신고 완료 버턴을 눌러준다는 개념을 홈택스를 모르는 납세자가 이런저런 실무적 지식이 없어서 “세무사가 알아서 다 해준다”고 자랑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개인택시 사장님이 모르는 비밀이 감추어져 있다. 세무서를 미리 방문하면 기다림 없이 10분 내로 신고를 마칠 수 있게 직원이 도와주며 완전히 무료라는 것이다. 뿐만아니다. 컴퓨터 지식을 조금만 배우면 자녀들의 컴퓨터로 집에서 국세청 홈택스에 접속만 하면 모든 신고를 마칠 수 있도록 안내되어 있다는 사실마저도 모르는 것이다.
왜일까. 지구상에서 가장 선진화되고 철저하게 납세자 편의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국세행정과 실제 납세환경의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되었을까? ‘국민팔이’가 원인일 것이다. ‘국민팔이’는 화려하게 포장된다. 첫째는 홍보라는 이름으로, 둘째는 교육이라는 세금 지식의 리셋으로, 마지막으로 대리인이라는 편리함으로 그때그때 적당하게 포장디자인을 바꾼다. 먼저 국세청의 홍보가 그동안 국세행정의 편의와 성과에 역점을 둔 부작용이다. 바로 ‘국민팔이’였다는 결론이다. 납세자를 위한 세무행정 개선이라고 홍보하는 대부분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수탈의 성과’를 위한 포장이었음이 들킨 것이다. 국세행정의 선진화라는 기치 아래 단행된 많은 행정 개선과 이를 위한 예산 투입이 납세자를 위한 것으로 알았는데, ‘결론은 언제나 버킹엄’ 하듯이 세금을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도구의 현대화였다. 그럼에도 홍보는 언제나 ‘납세자 편의’아니면 ‘납세자를 위한’으로 포장했다. “국민을 잠깐 속일 수는 있어도 영원한 비밀은 없다”는 정치인의 말처럼 비밀이 들통난 것이다. 다음으로 세금 교육의 부재도 되돌아봐야 할 중요한 사회적 모티브이다. 신고 전에 시행하던 납세자나 대리인들에 대한 집합교육이 어느 순간 ‘세무공무원과 납세자의 접촉을 원천 차단 해야 한다’는 필요성에 의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아무런 대안도 없이 ‘세무공무원의 비리를 척결한다’는 사소한 이유로 ‘납세자의 알권리’라는 대의를 버린 것이다. 국민이 똑똑하면 세금 거두기 힘들어서일까. 마지막으로 세무 대리인들의 과당경쟁도 한몫한다고 봐야한다. 신고 대리를 주요 업무로 하는 세무 대리인이 수수료를 받을 대상은 납세자이다. 국세청에서 모든 신고를 무료로 할 수 있게 하면 세무 대리인들의 밥줄을 끊어 놓는 것이나 진배없다. 납세자가 대리인에게 의존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수익과 직결되는 이상 누구도 말릴 수 없다. ‘납세자를 위한다’는 ‘국민팔이’가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쉬운 방편이 된 것이다.
‘국민팔이’는 원래 정치인들의 전유물이었다. 정치인들의 모든 행위는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우리가 간접민주주의를 채택한 이상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다. 가끔은 ‘당신들의 국민은 누구?’ 의문을 가지기도 하지만 국민의 대표이고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기 때문에 이견을 달수가 없다. 가끔은 지역구의 몇 명, 좀 더 넓혀서 정당인, 세력화된 절대적 추종자들, 특정 이익단체 중 어디를 대변해도 그들에게는 국민일 수밖에 없고 틀리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국민팔이’로 매도당하는 것은 ‘정치인들의 말은 믿을 수가 없다’가 대변하듯이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한다’는 인식이 거의 절대적이다. 거창한 공약을 예산이나 구체적 실행계획 없이 할 것처럼 떠벌렸다가 무산되는 헛공약 남발이 원인이다. 특히 국민의 공분을 사는 행태는 표를 얻기 위해 허리를 굽히고 두 손을 비비고 맞잡고 온갖 과잉서비스 쇼를 하다가 당선만 되면 목에 깁스를 한 듯, 유권자 위에 군림하려는 目不忍見(목불인견) 정치인들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이래서 정치인들이 ‘국민을 위해서’ 또는 ‘국민이 원한다면’ 좀 더 영리하게 ‘국민과 함께한다.’ 등 정치인들의 말에 “‘국민팔이’ 그만두시고 너나 잘하세요”가 국민 정서로 자리 잡았다.
정치인들의 이 ‘국민팔이’를 행정 각 부처가 앞다퉈 차용하고, 이익단체들이 무분별하게 끌어다 쓰면서 호도된 측면이 있다. 특히 행정부는 물론 각 부처 산하 기관이나 단체들까지 ‘국민팔이’가 유행처럼 번진 것은, 정권이 바뀌면서 논공행상이 불가피한 상황이 되자 정치인들을 장차관은 물론 산하 각 기관의 장들로 투입되면서 ‘국민팔이’는 대세가 된 느낌을 줄 정도다. 이제 ‘국민팔이’는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하나의 기둥으로 봐야 한다. 국민만 앞에 붙이면 무엇이나 통하는 듯 보인다. 우리 뿐만아니라 세계적인 정치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정치권에서 ‘국민팔이’가 용인되는 것은 긍정적인 시그널과 동기부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거대한 담론에 비하면 초라할 수도 있지만 수시로 쏟아지는 ‘국민팔이’가 그나마 목표와 지향점을 높이는 역할을 하고, 간혹 성과도 내는 不可思議(불가사의)함을 보여주어 열광토록 한다는 점이다.
‘국민팔이’가 아무리 대세이고 용인되는 분위기라 해도 스스로 자제하고 아껴야 할 금도가 있는 법이다. ‘국민 팔이’는 철저히 공익적이어야 한다. 사익을 위해 ‘국민팔이’를 하면 비난을 넘어, 우리 사회에서 퇴출당하거나 매장당할 수도 있다. 단언컨대 ‘국민을 위하는 세금 제도’는 없다. 세금은 본질이 대가 없이 징수함을 원칙으로 하는 이상 ‘수탈’이다. 헌법상에도 국민에게는 의무만 있지 권리가 없다. 국세청에서 아무리 납세자를 위한다고 해도 속내는 징세 행정 편의 아니면 생산성 또는 행정 효율성 제고가 우선이다. 더 이상 세금이 ‘국민팔이’의 대표 상품 진열대에서 내려지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