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육신은 부모님이 주셨다 내 지식은 선생님이 주셨다 그 밖에 먹을 것 입을 것 잠자는 것 하다못해 이 순간 숨 쉬는 공기 한 모금조차 내 손으로 직접 만든 것이 없다 다만 어딘가 쓰일지도 모를 얄팍한 지식들을 팔아가며 내 인생의 반을 살아왔다
그러기에 만들어야겠다 그러기에 나누어야겠다 비록 타다 남은 등걸 같은 육신일지라도 작은 불꽃이라도 피워 가끔씩 오가는 이들의 초저녁 어둠이라도 밝혀야겠다
인생의 반을 오로지 받은 것으로 살아왔기에 나머지 반이라도 채워 놓아야겠다 적어도 내가 받은 것만큼 아니 그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그래야 살다 간 흔적이라도 그래야 죽는 날 한 번쯤은 웃을 수 있을 것 같다
0은 처음부터 시작과 끝이 없었기에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0”은 세상의 중심입니다. 무아(無我)의 출발점이자 끝점입니다. 발가벗고 태어나 날 몸으로 돌아가는 영육(靈肉)입니다. 한갓 껍데기에 불과한 인본주의(人本主義)에게 주의를 촉구합니다. 우린 늘 마침표를 찍으러 가는 길에 서 있습니다. ‘하늘의 그’물을 걷어내기 위해 많은 일을 겪어보았으나 아무것도 남는 게 없었습니다. 과연 “시작”과 “끝”은 어디인가요. 이용일 시인의 씁쓸하고도 심오한 웃음을 읽으며, 나를 되돌아보는 데에 ‘시의 힘’이 존재한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