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세무사회는 지난달 31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포함된 ‘상용근로자에 대한 월별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규정’을 또다시 1년 유예하기로 한 것에 대해 환영의 의사를 표하면서도 ‘재앙 수준’이라며 아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는 코로나 시기를 보내면서 고용보험의 엄청난 사각지대를 인지하고 실시간 소득 파악을 통해서 전 국민 고용보험 체계로 나아가자는 계획을 세웠다.

매년 1회 제출되는 자료로 인해 일용근로자,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 등 고용이 불규칙한 사람들은 소득 파악이 늦어 코로나 시기 정부가 지원을 빠르게 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주기는 `20년 말 발표된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에 따라 `24년부터는 상용근로소득에 대해서 간이지급명세서를 반기에서 매월 제출하는 것으로 바뀔 예정이었다.

◆ 복지가 재앙으로 된 이유는?

이렇듯 ‘복지’를 위해 시작된 상용근로자에 대한 월별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화는 왜 세무사들에게 ‘재앙’이 된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소상공인 등 상용근로소득을 지급하는 자의 협력 비용이 과중해진다는 점이다. 또한,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는 소득 파악을 위한 것인데 납세와 관련성이 적은 소득자료 제출의무를 상용근로소득을 지급하는 자에게 부과하고 이에 대해서 가산세까지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는 비판이 있었다.

세무사회는 논평에서 “고용보험 혜택과 전혀 무관한 2천만 명에 달하는 상용근로자 전부에 대해 매달 지급명세서를 제출하게 할 것이 아니라 퇴직 시에만 즉각 지급명세서를 제출하게 하면 된다”면서 “그러기에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재앙 수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2천만 상용근로자 매월 간이지급명세서 제출 의무화’ 규정은 또다시 임시변통 일시 유예가 아니라 아예 폐지해 기업의 걱정거리를 덜도록 하는 게 맞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제 고용보험 사각지대에 있는 일용직·프리랜서·플랫폼 종사자 등 1600만명에 대한 지급명세서가 매월 제출되고 있고 매월 소득이 동일한 상용근로자에게 매월 지급명세서를 제출하게 하는 것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의 엄청난 협력 비용을 발생시키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저해하는 규제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정부는 이 같은 납세자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세무법인, 회계법인 등에 세액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등 당근도 제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소상공인의 협력 비용 과중을 이유로 매월 제출 시행 유예안을 통과시켰다. 당시(`23년 말) 장혜영 의원은 국회 본회의에서 “(유예안은)양당의 전 국민 고용보험 포기 선언”이라면서 “양당의 밀실 협상 앞에서 고용보험의 사각지대에 있는 임시직,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들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세무사 업무량 폭증까지

세무사는 부가가치세 신고가 연간 4차례로, 1월, 4월, 7월, 10월 부가가치세 신고 업무를 해야 한다. 2월에는 면세사업자현황 신고와 연말정산이 있고, 3월은 법인세 신고, 5월은 소득세 신고, 6월은 성실신고대상자 등이다. 여기에 매월 말 지급명세서 제출과 4대 보험 신고 대행 등 매 시기마다 신고해야 할 내용도 많다.

문제는 세무사업계의 인력난도 한몫한다. 경력직원 등 사무직원 인력난이 계속되는 데다 매년 최저임금은 상승하는데 기장료는 40년째 동결된 수준이다. 여기에 신고가 잘못될 경우 가산세 부담도 있고, 과세관청으로부터 신고내용 소명 요구를 받거나 세무조사를 받는 등 사건이 겹치면 업무 과부하도 심화된다.

이와 관련 서울에서 세무사업을 하고 있는 A세무사는 “과세관청에서 신고의무를 추가할 때마다 죽을 맛”이라며 “그간 신고 세액공제 삭감을 하면서 납세협력의무만 늘려가니 세무대리인을 세무행정의 조력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노예 취급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오는 이유”라고 전했다.

◆ 2년 전에는 어땠나?

`23년 세법을 심사했던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회에서 당시 이민재 고용노동부 국장이 “조세법 관련해서 월별 소득으로 이 체계가 갖춰져야 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노사가 공감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고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과도한 납세협력 부담으로 인해서 여러 단체에서 지금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면서 “중소기업중앙회, 세무사회, 소상공인연합회, 납세자연합회 이런 데서도 지금 월별 제출하는 것에 반대 의견을 내고 있고, 상용근로자의 경우에 매달 지급 급여가 일정한데 매달 같은 금액의 간이지급명세서를 내라는 것은 과도하다는 의견도 계속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시행 시기를 연기하자는 의견으로 모아졌고, 당시 김병환 기획재정부 1차관은 “2년 정도를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러자 이민재 고용노동부 국장은 “실질적으로 전산망 마련만 된다고 하면 궁극적으로는 사업주한테 훨씬 효율적일 것이다라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 왔고, 조세법 개정됐을 때도 이 부분이 상당히 바람직한 방향이고 결과적으로는 선진적이고 효율적이라고 얘기를 했다”며 “시행을 생각한다고 하면 시행령, 시행규칙 사항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기재부 안(2년 유예)에 저희도 동의하는바”라고 말했다.

이에 김병환 기재부 1차관은 “계획에 따라 정부만의 결정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었으면 아마 다 진행이 됐을 것”이라면서 “세법에서 저희가 정하고 있는 전산 만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던 거고 지금도 없다. 다만 노사정 간에, 노사 간에 또 합의해야 하는 부분에 있어서 예상보다 늦어지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초래됐다”고 해명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세제개편안에 소득 기반 고용보험 시행 시기(`27년)에 맞추어 상용근로자 간이지급명세서 월별 제출시기를 1년 유예하는 내용을 담아 발표했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