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납세자가 세무서를 방문하면 처음 마주치는 안내봇의 친근한 멘트다. “민원서류 발급은 1번 게이트로 가셔서 번호표를 뽑으십시오. 세무신고로 방문하셨으면 2번 게이트로 나가서 안내를 받으시면 됩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3번 게이트로 나가시면 됩니다” 민원서류 발급, 세무신고, 세무 상담 창구는 직원이 한 명도 없다. 모두 컴퓨터 화면이나 로봇의 터치 화면만 대기하고 있다. 상담로봇, 신고로봇, 민원로봇이 어떤 모양일지 아직 알 수 없다. 이미 대중화 되어가고 있는 식당의 키오스크와 같은 형식이 될 것이다. 아니면 좀 더 사람 형상에 가까운 외피를 입힐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모든 업무는 AI로 프로그래밍 된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 납세자 스스로 처리해야 된다. 세무관서의 환경에 따라 1층이나 1층과 2층 아니면 지하층 등은 무인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민원인 출입이 원천 봉쇄된 사무실에는 로봇관리실, 프로그램운영실, 과세 데이터 관리실, 과세 데이터분석실, 조사실, 근로장려세 관리실 등으로 나뉘는 쾌적한 근무 환경에서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것이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업무 환경 변화와 국세행정 변화를 예상하여 미래의 세무서 모습을 그려봤다. 업무의 내용은 물론 업무처리 형태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어쩌면 지금 국세청장이 역점을 두고 있는 직원 보호를 위한 프로그램들 ‘악성 민원 전담 변호팀’이나 과로에 의한 순직 등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것들인지도 모른다. 국세 공무원들에게 힘들고 어려운 일들은 AI를 장착한 로봇이 대신 해주는 시대를 상정해 보는 것이다. 직원들은 직접 납세자를 상대할 일도 없고 과중한 업무에 시달릴 필요도 없이 쾌적한 환경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는 21세기형 선진복지 국가의 공무원이 된다.
미래의 업무처리 방식의 변화에 맞추기 위한 조직개편과 시설 교체 등에 예산도 확보해야 하고 조직법과 직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현실을 인식하고 AI 대전환 시대에 대비해 임광현 국세청장의 발 빠른 대처는 돋보인다.
14일 서울지방국세청에서 ‘미래혁신 추진단’ Kick-off를 개최한 의미가 크다.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진로를 결정할 로드맵을 만드는 첫발을 내디딘 것이다. 분과별(TF) 전문성을 갖춘 민간 전문위원 총 16명을 위촉했다. 국세행정 전반의 ‘AI 대전환’을 추진해 ‘AI 선도부처’로 발돋움하기 위해 AI 분야의 기술혁신을 선도할 민간 전문가들도 섭외했다. 법·제도 전문가와 교수들이 함께 중점 과제를 착실히 추진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임 청장의 혜안을 영접할 희망을 주는 동시에 신속한 추진력과 세밀한 계획성을 보여준다. 특히 민간 AI 전문가들의 면면만 보아도 감이 좋다. 국세행정의 진전을 이미 손에 쥔 느낌이다. 다만 제도 개선에 있어서는 전날 지적한 바 있듯이 너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우려된다. 제도개선 분과, 조세정의 분과, 민생지원 분과는 어쩌면 하나의 나무인지도 모른다. 진짜 전문가이고 손에 꼽는 석학들로 대학에서 조세제도나 국세행정을 연구하는 교수들이 주축이다. 세무 행정은 학문적으로 보면 변방이고 포지션과 역할이 적다. 그래서 부탁드린다. 이번만큼은 학문적 성취보다 현실적 납세자의 고충을 먼저 헤아려서 납세자를 위한 국세행정의 미래 발전 로드맵을 완성해 주기 바란다. 이론보다는 실질을, 탁상보다는 현장이 중요하다는 취지다.
국세청의 이러한 발 빠른 움직임이 뜨악하게 느껴지는 대목이 관심을 끈다. 바로 광복절 기념과 동시에 이루어진 대통령 국민임명식 이후 발표된 국정과제다.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가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보고대회를 열어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에는 개헌부터 검찰·국방개혁, 인공지능(AI) 산업 육성, 지역·계층 간 불평등 해소까지 새 정부의 개혁 의지를 담은 국정과제가 빼곡하게 담겼다. 정치·사회, 남북관계, 외교, 국방, 경제발전, 균형발전을 위한 국정과제들을 정하고 향후 5년간 210조 원의 추가 재정 투입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정치·사회 분야에는 개헌을 필두로 권력기관에 집중된 권한 개혁(검찰, 경찰, 감사원 등), 군의 정치적 개입 방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정부 재정 운용 체계 혁신 등을 통해 국정운영 효율화 등을 핵심과제로 정했다. 남북 관계는 다방면의 남북 교류협력과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통해 ‘한반도 리스크’를 ‘한반도 프리미엄’으로 전환한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외교 분야는 한미동맹 고도화 및 외교 다변화 추진, 비핵화 및 지속 가능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목표로 정했다. 국방은 ‘3축 방어체계’ 고도화, 임기 내 전시작전권 전환, 북핵·미사일·사이버 위협에 대비한 정예 군사력 건설을 목표로 제시했다. 경제발전 분야에 대해서는 민생 안정과 내수 활성화를 위한 규제 합리화, AI·바이오 등 신산업 육성과 에너지 전환, AI 고속도로 구축, 벤처투자 연간 40조 원 달성, AI·바이오·재생에너지 분야 규제 제로화, 메가 특구 도입, 국민성장 펀더 100조 원 조성, 코스피 5000 시대 도약 등을 내세웠다. 마지막으로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 세종 행정수도 완성과 2차 공공기관 이전을 약속했다.
5대 국정 목표 아래 123대 과제를 빼곡하게 설정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신호탄인듯하여 희망으로 설레게 한다. 이러한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향후 5년간 210조 원의 재정이 추가 투입될 것임을 공언했다. 기존에 늘어 나는 복지재정과 국내 경기 활성화를 위한 소비 쿠폰의 발행 등 재정수요는 폭발적인 상황이다. 여기에 새로운 재정 투입 요인이 발생한다는 얘기다. 나라의 살림살이가 힘들겠다는 느낌은 어쩔 도리가 없다. 이처럼 대규모 재정 투입이 필요한 국정과제를 발표 함에 있어 세입 대책이 삐진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세출은 천문학적인 규모를 말하는데 세입은 일언반구도 없다. 순전히 차입에 의존하고 국가부채를 다음 정부에 넘기겠다는 뜻인지 알 수 없다. 당장의 늘어나는 재정수요는 세법을 개정하여 세입을 늘리지 않는다면 빚을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단순히 지금의 세법에서 징세를 강화하고 체납을 일소하는 정도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의 핵심과제에서 세제개편이나 국세행정 개선이 빠졌다는 것은, 지금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국세청장의 ‘AI 시대전환에 대비한 국세행정 개선’이 자칫 헛발질이 될 수도 있음이다. 정치 이슈에 밀려 국정과제에서 헌법상 국민의 3대 의무인 국방, 교육, 납세 가운데 국방을 제외한 교육과 납세가 빠져 버렸다. 첫째 목표로 내세운 헌법개정에서 교육의 의무와 납세의 의무를 빼기 위한 전조인가라는 느낌마저 든다. 민생을 말하자면 정치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은 거리가 멀다. 경제를 살리고 민생고를 해결하기로 한다면 국정과제는 정치개혁을 필두로 노동개혁, 교육개혁, 조세개혁이 선행 과제가 아닐는지.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 세금이 빠진 것을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다. 임광현 국세청장의 시대전환 구상이 힘을 잃을까 걱정이다. 대통령이 세금에 관심이 없는데 국세행정 선진화가 다 무슨 소용일까? 나아가 이렇게 수입도 없이 돈만 펑펑 쓰다가 부도나면 국민과 나라는 어디로 가나. 거창하게 국민주권의 나라라고 떠들면서 민생은 그림자도 없고 정치권력과 싸움만 보인다. 나라 살림이다. 돈 써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세금 더 내야 한다고 왜 말 못 하나. 국민이 卒(졸)로 보이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