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존재 이유는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기 위해서다. 지식인들의 말로 바꾸면 정부의 세출예산에 맞추어 세입예산을 확보하는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나라의 살림살이를 위한 돈을 마련하는 것이다. 따라서 과세 행위가 일차적인 존재 이유일 것이다. 과세는 공정성과 적정성 및 형평성이 최대의 덕목이다. 국세행정의 최고 지향점일 것이다. 과세라는 행정행위는 잘못될 수도 있고 100% 완벽하게 집행될 수도 없다. 그래서 과세 행위와 똑같은 크기로 과세 불복에 대해서도 국세청의 관심과 행정을 기대하게 된다. 신고납부제를 취하고 있는 우리 조세제도는 납세자에게 선의의 성실신고를 기대하지만, 과소신고가 많음은 人之常情(인지상정)이다. 신고가 적정했는지 검정하는 업무도 필요하고 秋霜(추상)같은 세무조사라는 엄벌이 준비되어 있다.

세무조사에 의한 추징에 대응하는 납세자의 권리가 과세 불복이다. 이는 과세와 불복의 크기가 동일하고 같은 잣대로 행정행위가 이루어져야 올바른 선진 국세행정을 구현하게 됨은 不問可知(불문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납세자의 권익은 언제나 뒤처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국세청의 홈페이지를 보면 메인 구성에 납세자권익에 대한 것은 단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별도로 구성된 각각의 주제별 홈으로 별도 구성한 것까지야 이해한다고 쳐도 ‘납세자권익 24’라는 타이틀로 맨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조세박물관보다 후순위로 밀리는 장면은 “말로는 납세자를 섬긴다면서 실상은 납세자를 鳳(봉)으로 취급하는구나” 싶다.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하는 느낌을 받는다.

‘납세자권익 24’에 들어가 보면 납세자보호담당관도 있고 국선대리인도 있다. 납세자가 과세에 불복하는 절차나 방법도 상세히 안내하고 있다. 얼핏 보면 국세청이 납세자 권리구제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다. 실상은 어떨까? 단언컨대 아니다. 작금의 국세행정에서 가장 먼저 혁신해야 할 부분이 과세 불복에 대한 국세행정이다. 납세자 불복은 세무서와 지방청은 이의신청을 처리하고 본청은 심사청구를 결정한다. 납세자의 불복을 객관적이고 공평하게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관서별 ‘국세심사위원회’를 두도록 하고 있다. 신기하게도 국세청이 공개한 홈페이지나 홈택스나 어디에도 과세불복의 결정 과정은 철저하게 감추어져 있다. 납세자는 몰라야 한다는 취지인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국세사무처리규정’이나 업무 지침으로 담당자에게만 공지되고 있을 것이라 짐작된다. ‘국세심사위원회’는 국세행정의 ‘홍길동’인가? 아무리 서자(庶子)라도 당사자인 납세자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 납세자의 알권리는 철저하게 무시하면서 납세자 권익을 말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지난달 “국세심사위원회 민간위원을 공개 모집한다”는 짤막한 소식을 접하면서 다시 한번 울화통이 터진다. 공정하고 투명한 국세심사위원회 운영을 위해서라고 한다. 지원 자격을 보면 可觀(가관)이다.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 직에 3년 이상 근무한 사람과 세무 관련 학과 교수만 지원할 수 있다. 이들이 세법에 정통하고 지식이 일반 납세자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혜까지도 월등한 것은 아니다. 국세심사위원회의 임무가 납세자의 과세 불복을 처리하는 의견을 모으는 역할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부분의 과세 불복은 납세자가 뭔가 억울하기 때문에 불복하는 것이다.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말을 할 것인가”라는 옛날부터 유명하게 전해오는 관리에 대한 경외심이다. 그래서 웬만큼 억울해서는 참는 것이 국민이다. 바꾸어 말하면 대부분의 과세 불복은 납세자가 견디기 힘들 만큼 국세청의 무리한 추징에 기인한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과세전적부심사에서 출발하여 이의신청과 심사청구라는 불복에서 국세심사위원회가 무슨 역할을 하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 절차와 진행 및 내용이 공개돼야 마땅하다. 납세자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무리한 세무조사와 과세에 제동을 걸 수 있다면 심판청구의 인용률은 물론 조세 소송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어야 한다. 힘의 절대 우위에 있는 국세청이 전력을 다해도 패소하는 사례도 종종 보게 된다. 왜일까? ‘국세심사위원회’가 부실하게 운영되거나 존재가치가 없음이다. 나아가 무리한 과세는 언제나 상존한다는 의미다.

‘법은 최소한의 양심이다’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법은 부실하다는 의미다. 즉, 사회의 모든 현상을 법으로 규정할 수 없음을 뜻한다. 결국 법보다는 현상과 사실 판단이 법이론보다 선행되어야 함이다. 법률에 정통한 전문가라 할지라도 사실 판단은 현장을 경험해 보지 않으면 모를 수 있다. 의도적으로 탈세를 위해 거짓말을 하는 납세자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정작 관청을 상대로 거짓을 꾸미기는 정말 어렵다. 더구나 통할 리는 만무하다. 과세 불복은 무리한 추징이 원인인 경우가 절대적이다. 국세청에서 위촉한 국세심사위원들이 진정 납세자 편일까도 의문이다. 위촉의 권한을 가진 기관에 보은해야 하는 것은 事必歸正(사필귀정)이다. 단언컨대 국세행정 전반을 놓고 보아도 가장 시급한 혁신 대상은 ‘국세심사위원회’라는데 주저 없이 동의한다.

납세자 불복을 처리하는 이런 장면을 꿈꾸어 본다. 세법 이론 전문가와 관내 납세자를 동수로 배심원단을 구성하고 과세 담당자와 세무대리인이 각각 과세의 정당성과 과세의 부당성을 상세히 설명하고 배심원들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다. 배심원제가 만능은 아닐 것이다. 행정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하고 성가시고 번거로운 일일 수도 있다. 납세자가 제외되고 관서가 임명하는 위원으로만 구성된 ‘국세심사위원회’보다는 납세자 권리가 좀 더 강화될 것이다. 납세자에게 과세 불복의 처리 절차와 내용이 공개되는 장점을 살려보자는 취지다.

개선이 필요한 이유는 또 있다. 관내 대리인이 수행하는 과세 불복에 같은 자격자들이 모여서 결정하는 것도 모순이다. 자격사끼리의 친목도 도모하고 관청의 눈치도 봐야 하지만 그래도 ‘완장’이 어디냐. 지금 국세심사위원들의 모습일 것이다. 납세자의 불복을 처리하는 이의신청이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심도 있게 고민해 보자. 전문가라는 미명으로 몇 사람 모아놓고 과세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납세자의 입막음용으로 동원되는 국세심사위원이라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다. ‘국세심사위원회’는 과거 국가권력 만능 시절 행정편의에 맞춰져 왔던 구시대의 유물이라는 생각이다. ‘짜고 치는 고스톱’ 내지는 밀실 행정의 표본으로 인식될 정도면 하루빨리 열린 행정으로 전환해야 한다. 감추어진 것, 납세자가 접근하기 어려운 소위 ‘쉬 쉬’하는 밀실 행정이 적극적으로 공개돼야 시대조류에 맞는 혁신이 가능하다.

官尊民卑(관존민비)의 잔재는 시급히 청산하는 것이 옳다. 행정능률보다 납세자권익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납세자가 왜 과세에 불복하는지 국세청은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이 진정한 국세행정 혁신이고 납세자가 바라는 선진 세정이다. 무엇이 진정으로 납세자를 섬기는 국세행정인지 더 많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발 빠르게 국세행정 전반을 혁신하고 있는 임광현 국세청장의 영민함에 기대한다. 열린 국세행정이 만개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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