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초대해 고급 리조트에서 골프치며 심포지움
최근 서울청 조사1국 비정기 세무조사…법원서 敗
의료계 리베이트 방식, 세무조사 부과 뒤집힌 이유
탈루·오류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 아닌
국세청의 ‘합리적 의심’에서 시작된 세무조사 문제
국세청이 코로나19가 바이러스가 확산되던 시기 의료계 세무조사를 대대적으로 실시했다. 당시 국세청 레이더망에 걸린 의약품 제조업자인 A사는 세무조사를 받고 19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받았다. 그리고 최근 법원은 19억원의 세금 부과 판결을 모두 뒤집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난 `16년 2월, 검찰은 서울 중구에 소재한 한국노바티스 본사에 수사관을 보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노바티스가 의사들에게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했다는 혐의였다.
우리나라는 지난 `10년부터 의약품 거래에서 리베이트를 제공한 자와 수수한 자 모두를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를 시행 중이다. 쌍벌제 시행 이후 의료계에 리베이트 제공 방식은 학술행사를 진행하는 마케팅 대행사를 통해 이루어졌다.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의약전문지 4곳의 대표이사 등은 리베이트 쌍벌제가 시행되자 한국노바티스 측에 의료인에게 뒷돈 주는 방식을 새롭게 제안했다. 노바티스로부터 광고비 명목으로 돈을 받고, 노바티스에서 판매하는 의약품을 처방하는 의료인을 대상으로 간담회, 심포지엄, 포럼, 미팅 등을 열어 강연료, 원고료, 자문료, 거마비 명목으로 경제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제안한 것. 그리고 언론사는 약 10%~50%까지의 수수료를 정산받기로 했다. 그렇게 노바티스는 `11년~`15년까지 5년간 182억원 상당의 광고비를 집행했다.
검찰은 의학학술지 발행업체, 의약전문지 등 업체를 통해 의사에게 총 25억9000만원 상당의 불법 리베이트가 제공됐다고 밝히며 한국노바티스 대표를 비롯해 의약전문지 등을 기소했으며, 이 사건은 결국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한국노바티스에 벌금 4000만원 부과 등 일부 유죄가 인정됐다.
이 과정에서 의학전문지 B, C도 검찰 조사 대상에 포함됐다. 이에 `15년 초반까지 B, C를 통해 심포지엄을 개최해 왔던 A사는 곧바로 다른 대행업체로 거래처를 변경했다.
서울국세청이 세무조사를 실시한 이유가 바로 이 부분이다. A사가 B, C 측이 ‘노바티스 리베이트’ 건으로 검찰조사를 받게 되자 다른 행사 대행업체로 거래처를 변경한 점, 그리고 A사의 2013~2019 사업연도 법인세 신고자료에 따르면 `14년도 6월 세무조사 이후 접대비 지출이 줄고 광고선전비 지출이 늘었다는 것을 파악하고 ‘신고 내용에 탈루나 오류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있다’고 보아 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 세무조사 해보니…의료인 대상 고급 휴양지 숙박 및 골프 일정 등 ‘경제적 이익’ 제공 포착
A사는 1987년 1월부터 의약품 제조·도매업을 영위하고 있으며, 지난 `15년 9월부터는 공동대표 체재로 전환됐다.
서울국세청 조사1국은 `20년 2월18일부터 `7월2일까지 A사에 대한 2014~2019 사업연도 법인세 등 통합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서울국세청은 A사가 의료인을 대상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광고선전비를 계상한 비용 중 의료인과 가족에게 제공한 숙박비, 식사비 등 20억1800만원을 접대비로 보았다. 특정 의료인과 가족을 휴양지나 고급 리조트에 초청해 의료인과 원활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기 때문이다.
또한, 학술대회 행사 등에 후원하고 광고선전비로 계상한 학회 시상금 등 5억2000만원을 비지정기부금으로 보았으며, 이 외에도 재단법인 D에 연구용역비로 지급한 5억원을 가공용역으로 보아 손금불산입하고, 53억7100만원의 연구인력개발비 세액공제를 부인하고, A사가 지분 100% 보유한 자회사의 마케팅 용역 등을 수행하고 수수료를 과소수취한 것으로 보아 4억700만원을 익금산입했다
A사는 심포지엄에 사용한 금액이 접대비가 아니라며 불복 청구했다.
제약회사인 A사는 일반 대중매체를 통한 광고행위가 불가능하다. 이에 약을 처방하는 의사를 상대로 광고 및 홍보를 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의사에게 인지도를 향상시켜야 하기에 학술대회 행사 시 관련 분야의 임상 및 연구에 공적이 있는 의사들을 선정해 논문상, 의학상, 공로상을 수여하면서 부상금을 대표이사가 직접 참석해 전달함으로써 의사들이 구독하는 의학잡지 및 대중매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게 해 영업력 증진을 도모하고 있는바, 이는 학회에 대한 후원금이 아니라 A사의 홍보로서 매출증진에 기여하므로 이는 광고선전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또 심포지엄 행사 참석자의 가족 동반은 극히 드문 개인적인 일로서 가족이 참석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휴가 차원에서 간혹 동행하는 사례가 있으나 동반가족에 대한 지원사실은 없다고 반박했다. 숙박비용도 혼자 오던, 가족 동반으로 오던 객실 하나는 제공되기 때문에 추가 지출되는 비용도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서울국세청은 내부 문건을 통해 영업부 직원이 타깃 의료인을 대상으로 참석 여부, 가족 동반 여부를 확인해 룸배정, 교통편 안내, 항공편도 원하는 시간에 예약해 주는 것으로 티켓 구매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담당 직원으로부터 심포지엄 일정에 포함이 안된 골프장 예약, 골프장 이동 차량을 렌트해주고 학술목적이 아닌 사교나 휴양 목적으로 온 것으로 보여진다는 진술도 받았다. 참석 싸인만 하고 가족과 개인 일정을 보냈다는 진술도 있었고, 교통비 지원명목으로 상품권을 지급한 사실도 확인됐다.
통상적인 제약회사 제품설명회는 병원 인근 식당에서 식사제공, 의료인 사무실에서 간단한 다과 제공 등이지만 심포지엄은 고급 휴양지에서 골프일정이 포함돼 가족을 동반한 사적 활동이 있었다며 전문의약품 홍보를 위한 영업활동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이와 관련해 조세심판원은 고급 휴양리조트에서 심포지엄이 개최되고, 1박2일 심포지엄 행사 시 1일 차 2시간, 2일 차 1~2시간 외에는 개인 자유일정으로 이루어진 점, 가족동반으로 초청된 것을 불특정 다수로 보기 어려운 점 등으로 광고비보다 접대비 성격으로 보여진다며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또 시상금 후원도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홍보 목적으로 지출하는 성격의 광고선전비로 볼 수 없고 광고효과도 극히 제한적이라며 국세청의 비지정기부금으로 보아 손금불산입해 법인세를 부과한 것도 잘못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심판원은 이 외에 모든 쟁점에 대해서도 국세청의 손을 들어줬다.
◆ 법원, 법인세 부과처분 모두 취소…왜?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최근 서울행정법원은 A사가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등부과처분취소 소송에서 A사의 손을 들어줬다.
A사는 법원에 불복을 진행하면서 ‘절차상 하자’를 문제 삼았다. 세무조사 선정 당시 ‘수시 세무조사대상 선정 사유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원고를 세무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과세 자료를 수집했다’, ‘정당한 사유 없이 세무조사 사전통지를 생략했으며, 생략한 사유를 구체적으로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원도 이 같은 A사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세무공무원은 적정하고 공평한 과세의 실현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 세무조사를 행해야 하며, 다른 목적 등을 위해 조사권을 남용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이 있는 등 법에서 정한 요건과 한계 내에서만 허용돼야 한다며, 적법절차의 원칙을 어긴 과세처분은 위법하다고 봤다.
법원은 A사가 `15년도 초반까지 거래하던 의학전문지들이 ‘노바티스 리베이트’와 관련돼 리베이트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고 해서, 이 전문지를 통해 의사에게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거나, 다른 대행업체를 통해 리베이트를 제공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이 사실을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 `15년경부터 접대비 지출이 감소하고 광고선전비 지출이 증가한 것이 A사의 신고 내용에 탈루나 오류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접대비를 적게 지출하고 광고선전비를 많이 지출할 사유가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없다며 조세탈루의 개연성이 객관성과 합리성이 있는 자료로 뒷받침되어 상당한 정도로 인정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실제로 세무조사는 심포지엄과 시상금 외에도 A사의 연구용역비, 연구인력개발비, 수수료 등 다른 곳까지 조사 영역이 확장됐다. 당초 `20년 2월부터 5월까지 세무조사 기간으로 통지됐으나 서울청은 조사 기간을 7월초까지 두 달가량 더 확대했다. 또 조사대상 과세기간도 2014~2018사업연도에서 2014~2019사업연도까지로 확대했다.
법원은 “세무조사가 ‘법인세 통합조사’로 서울국세청이 조사대상 과세기간 동안의 A사의 모든 회계자료를 제출받아 기존 세금 신고내용과 일일이 대조하고 오류를 찾아내는 방식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며 “조세탈루나 오류를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자료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막연한 추측에 기반해 이 사건 세무조사에 착수한 이후 조사 범위를 확대했는데 이는 최소성의 원칙에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