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들어섬에 따라 대대적인 조세개혁을 기대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직접 “부동산 정책에 세금을 활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핵심 국정과제 선정에서 조세개혁이 빠질 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진보세력이 정권을 잡았고 입법부의 절대다수 의석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특히 법의 제정과 개정은 ‘누워서 떡 먹기’보다 쉬운 터에 보수정권 체제하의 조세제도를 그대로 둘 수 있겠어? ‘국민의 명령’이라는 한마디면 없던 법도 만드는 판인데 세법 개정쯤이야 如反掌(여반장)이지가 보편적인 생각이었다. 아니 국민의 여망인지도 모르겠다.
보수정권의 정책이 좋은지, 진보정권의 정책이 좋은지는 정답이 없다. 오로지 국민의 선택만 있을 뿐이다. 즉, 국민이 진보좌파 세력에게 나라의 운영을 맡길 때는 기대하는 바가 있기 마련이다. 보수정권의 정책이 잘못된 것이었고 선택의 오류였음을 입증하라는 주문이다. 국민의 주문이든 명령이든 이를 입증하지 못하면 그동안 여당의 국정운영에 비토를 놓고, 발목잡기에 불과했다는 것을 자인하는 꼴이 된다. 그렇게 시시콜콜 비난을 퍼붓고 다수의 힘으로 전진을 막았던 이유를 명쾌하게 보여주어야 한다. 시비를 넘어 전쟁하듯 국정의 발목을 잡아 온 정책들에 대해 “그래, 이렇게 해야지” 무릎을 치게 하지 못하고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여,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하는 여론이 만들어지면 내로남불의 비난을 면키 어렵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다 해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동안 비난해 왔던 모든 정책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 보수우파 진영의 정책들을 모두 갈아엎고 진보정권의 이념과 철학을 구현할 정책으로 개혁해야 마땅하다. 이 모든 정책에 앞서 우선 처리되어야 할 과제가 조세개혁이라고 본다. 조세개혁을 통해 나라 살림살이를 위한 예산 규모를 먼저 세운 뒤에 어떤 사업이나 정책을 어느 정도의 속도로 처리해 나갈지 설계해야 한다. 이런 집행계획이 실현가능해 보이고 정책이 민의를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판단이 확고해질 때 국민은 정권에 대한 신뢰를 보낸다. 조세개혁이 모든 정책 전환의 토대가 됨을 다시한번 강조한다.
조세개혁의 중대성과 국민의 기대를 인식하면 ‘2025 세법 개정안’은 놀랍다. 조세제도 전반을 현 경제체제에 맞게 손질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소득세, 상속세, 부동산보유세, 양도소득세, 부가가치세, 특별소비세, 증권거래세까지 모든 세목을 대상으로 어떤 형태로든지 개정의 필요성이 임계점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인다. 특히 대통령의 야당 시절 부자 감세라고 목소리를 높였고 근로자의 목소리를 대변한다고 자처했던 상황을 돌이켜 보면 보수정권의 조세제도를 그대로 사용한다는 것은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다. 흔한 ‘정치인의 거짓말’이라고 빠져나가면 항간의 ‘거짓말쟁이’를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만큼 ‘2025 세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의 실망이 큰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바꾸었는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세수 추계와는 얼마나 일치하는지. 어느 것도 명쾌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조세 학자들, 세무 전문가들, 실물경제 분석가들, 금융가들, 기업가들, 자영업자들, 그리고 노동자에 이르기까지 세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내용은 양심을 따질 겨를도 없이 정제되지도 않은 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구난방으로 국민의 정신을 난삽하게 하는 내용들을 정리하고 취해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구분하는 일부터 시작돼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조세제도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은 내용을 몇 가지만 열거해도 조세제도의 개혁이 얼마나 시급한 국정 현안인지 느낄 것이다.
소득세는 ‘노란봉투법’의 국회 통과로 근로자들의 임금이 올라갈 것은 분명 하다. 소득세 최저세율 적용 단위에서부터 최고세율에 이르기까지 세율구간 조정과 누진율의 전면적인 개편이 시급하다는 인식이다. 상속세는 이미 유산취득세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는 국민적 합의까지 도출된 사안임에도 이번 세법 개정안에서 피해 갔다. 부동산보유세는 태생적으로 문제가 있었다. 이중과세 논란에 자유롭지 못하다. 재산세를 강화함으로써 부동산보유세의 역할을 어느 정도 커버 가능함에도 국세의 세수를 늘리기 위해 무리하게 도입한 측면이 있다. 특히 합산과 과표를 금액 기준으로 함에 따라 집 한 채 이외에 다른 재산이 없고 소득도 없는 노령층이 세금을 낼 수도 없고 집을 팔 수도 없는 난감함이 여러 경로로 확인되고 있다.
양도소득세도 개편이 시급하다. 강남에서 집을 팔면 같은 구역에서 비슷한 규모의 다른 집을 살 수 있어야 거래도 활발해지고 부동산시장이 살아난다. 그러나 작금은 세법에서 1세대 1주택의 비과세를 규정해 놓고 가격 기준을 정해놓아, 사는 집을 팔고 양도소득세를 내고 나면 다시는 집을 사기 어려운 형편에 놓이게 된다.
부가가치세 역시 세율 인상이 논의 된 지 오래다.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 물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쉽지 않은 면이 있다. 그래도 전 국민이 복지재정을 공동으로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국민을 설득하여 세율 인상을 단행하는 것이 국가부채를 늘리는 것보다 올바른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특별소비세도 시대에 맞게 적용 대상을 재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증권거래세도 증권투자 인구가 많아질수록 세수 기여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증권거래세는 최소한으로 적용하되 증권 거래를 통한 수익에 대해서는 소득세와 동일한 정도의 누진 구간의 적용을 받도록 해야 세목 간 형평에도 맞고 형평과세의 취지도 살리게 된다. 코인과 같은 새로운 과세 환경에도 대처해야 한다. 어떤 세목도 완전하지 않아 보인다. 특히 새 정부의 국정 이념과는 괴리가 심하다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의 조세제도는 오랜 세월 상황에 맞게 부분적인 손질만 하다 보니 ‘누더기’에 비유될 정도로 복잡하고 효율은 저하되어 있다. 완전한 개혁이 필요하고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다느냐’의 문제가 되어있는 상황이다. 특히 새로운 정부의 정책과는 엇박자가 심할 수밖에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이런 세법 개정안을 내놓았다면 기획재정부의 무능이다. 새로운 정부의 정책을 효과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준비가 덜 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025 세법 개정안’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누구를 위한 것인지, 효과는 어느 정도인지 보이지 않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기대가 무너지는 이 헛헛함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나라의 장래는 여전히 깜깜하니 언제나 장 닭의 새벽 喙(훼) 치는 소리를 듣게 되려나. ‘2025 세법 개정안’은 정말 실망을 넘어 절망적이란 생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