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수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4일 세종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국세 체납관리단’ 출범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국세청]
안덕수 국세청 징세법무국장이 4일 세종시 국세청 기자실에서 ‘국세 체납관리단’ 출범에 대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 국세청]

국세청이 마법에 걸린 것일까? 133의 마법. 귀신의 조화인가. 운명의 장난인가. 딱 떨어진다. 여러분 신기하지 않은가? 국세청이 ‘국세 체납관리단’ 발족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국세 체납자가 133만 명이라고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국의 세무서 숫자와 일치하는 게 아닌가. 전국의 세무서장이 133명이라는 말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 133은 무슨 계시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이렇게 이해하면 더 쉬울 것이다. 계시란 신의 영역이고 신만이 가능한 신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우연은 무엇인가. 이 역시 신의 허락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연도 역시 신의 계시에 속하는 영역이 아닌가? 133을 하나가 33개로 쪼개질 수도 있음을 보여주는 신의 오른손인가? 신의 마법이라면 인간은 유추가 불가하다.

133의 마법은 국세행정의 진일보를 위한 신의 역사함일까? 임광현 국세청장의 세수관리 역량과 아이디어가 우연히 세무서장 숫자와 맞아떨어진 걸까? 그러면 그 결과는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 공연히 별 의미 없는 우연의 일치에 거창하게 ‘하늘의 뜻’을 억지로 옭아매는 것일까? 출애굽기 33장이나 창세기 33장을 보아도 33은 범상치 않은 수다. 동양철학의 백미로 꼽히는 주역에서는 하나가 서른세 가지를 포함하기도 하고 하나가 서른세 개로 분화되기도 한다. 重天乾(중천건)에서 변화를 시작하여 重地坤(중지곤)에 이르기까지 64괘 중 33번째 괘는 天山遯(천산둔) 괘이다. 이에대한 공자의 해석은 “군자는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고 했다. 전체적인 괘 상은 막혔으니 기다려야 하고,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며,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는 시기로 해석한다. 도덕경 33장은 인생의 지침으로 알아 둘만하다. “남을 아는 자는 지혜로우나 스스로를 아는 자는 밝으며, 남을 이기는 자는 힘이 있으나 스스로를 이기는 자는 강하다. 족함을 아는 자는 부유하고, 힘써 행하는 자는 뜻이 있으며, 그 바를 잃지 않는 자는 오래하고, 죽어도 망하지 않는 자는 오래 산다.” 동양철학에서는 33의 숫자에 대해 명상과 자기 내면의 수련을 강조하고 다가올 새로운 일에 대한 준비를 권한다.

80년대였다. 모 세무서장이 한 말이다. “체납 정리 스트레스만 없으면 세무공무원도 할만한 직업입니다.” 국세청 개청 이래 가장 어렵고 힘든 업무가 ‘체납 정리’라는 푸념이다. 그만큼 해묵은 과제이고 국세청의 영원한 숙제인 체납 정리. 임광현 국세청장이 신묘한 힘을 발휘할지 아니면 또다시 이러다 말지 지켜볼 일이다. ‘체납’이라는 하나의 과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33가지라는 해석을 해본다. ‘국세 체납관리단’만 해도 구성 방법과 운영 방법을 따져보면 얼마든지 변용과 차별을 둘 수 있어 33가지 이상의 변화무쌍을 기대할 수 있다.

사실 체납자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동묘지에도 이유 없는 죽음이 없고 사연 없는 무덤이 없다’는 말이 세상의 이치다. ‘세금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도 공연히 생긴 것이 아니다. 체납자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감히 이러쿵저러쿵할 일이 못 된다. 특히 국세 체납자는 지방세 체납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국세 체납자는 금융기관에 통보되어 신용불량자로 금융거래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사업자등록도 할 수 없어 자영업을 할 수도 없다. 노동 현장을 가도 송금받을 통장 개설이 안 되면 아웃이다. 사업을 하다 사돈의 8촌까지 끌어들여서 일가 전체가 거지가 된 상황이다. 100세 시대에 50줄에 사업이 망하는 사태에 직면하면 그 사람의 남은 인생은 지옥이다. 산 입에 거미줄 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 죽자니 인생이 불쌍하고, 영혼은 지명수배를 내려야 하고, 주위의 손가락질은 차지하고라도 처와 자식 식솔들은 또 어떻게 하고, 막바지에 몰리면 생각에서 지혜는 도망쳐버리고, 범죄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게 된다. 친구든 친척이든 신용불량자가 아닌 사람과 동업도 생각해 보고 명의만 빌릴 궁리도 해본다. 어찌어찌하여 다시 일어서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기도 한다. 생각해 보자. 그때까지 온갖 고초와 영혼이 도망갈 정도의 지옥 같은 삶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버텨서 살아냈다.

다시 일어나 체납세금 정도는 가볍게 낼 수도 있고 남부럽지 않게 살 만큼 형편이 폈다. 그런데 지나간 세월이 억울하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기나긴 세월 그 핍박과 서러움을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었다, 내가 당한 만큼 갚아 주리라 다짐해도 방법이 없다. 이만큼 당했는데 내가 왜 세금 내나? 내 죽고 나면 모를까 생전에는 세금 못 내지. 억하심정이 안 들면 사람이 아니다. 체납자가 되는 순간 신이 오른손가락으로 이마에 새겨준 사랑은 지워져 버렸고, 왼손가락으로 가슴 깊이 새겨준 양심이 도망가 버린다는 것을 체납자의 인생을 살아보지 않으면 실감하지 못한다. 여기에다 영혼과 지혜마저 깊이 다친 사람에게는 법도 무용지물이다. 체납 때문에 생기는 상처도 33가지는 될지 싶다.

그래도 국세청이 체납 정리에 행정력을 쏟을 수밖에 없는 것은 ‘공평’ 때문이다. 대부분의 성실납세자에게 미안해서다. 체납자를 방치한다면 누가 성실하게 세금 낼 것인가? 징세권에 심대한 타격을 받게 됨은 물론 국민에게 세금을 징수할 명분이 없어진다. 그래서 체납세금은 끝까지 추적하여 추징하는 것이 국세청 본연의 임무이다. 따라서 국세청이 ‘체납관리단’을 출범시키고 전례 없이 강력한 체납 정리에 착수한 행정행위는 비난할 수 없다. 특히 생계형 체납자에 대한 지원책까지 마련한다니 체납자의 서러움을 다독이는 따뜻함이 돋보인다. 다만 체납자에 대한 지원은 자칫 성실납세자에 대한 예우에 맞지 않는다는 비난의 여지가 없도록 신중해야 할 것이다.

국세 체납 정리 업무에서 주의할 것은 지방자치단체들의 체납 정리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 지방자치단체들은 ‘체납 정리 특별반’이니 ‘체납 정리 기동반’을 운영하여 만성적인 자동차세 및 취득세 체납자들을 추적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국세는 다르다. 사업자등록 말소라는 절대적인 행정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신용불량자 등재도 가능하다. 사실 이 두 가지만 해도 사업자는 세금을 체납하기 어려우며 사업자에게는 체납이 일정 기간이 도래하면 매출채권 압류라든가 거래처 체납 사실 통보 등의 행정조치도 선행된다. 이렇게 강력한 무기를 장착한 징세권을 가진 국세청이 지방자치단체들처럼 체납 정리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싶다.

법을 조금만 손보면 체납 고민이 해결될 터인데 아쉽고 답답하다. 체납자에 대한 사업자등록취소와 신규 등록 거부에 금융기관 신용불량 등재 등 강력한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국세청이다. 더 강력한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방법은 없을까? 체납은 인생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체납 자체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체납자의 재산을 추적하는 것 보다 제도의 변화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도 해본다. 국세청의 133만 명의 체납자와 133명의 세무서장이라는 133의 마법. 신은 어떤 결론을 준비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나아가 국세청은 신의 주문을 읽어낼 수 있을지 미래가 더욱 재미있게 생겼다. 국세청이 마법에 걸려도 좋고, 임광현 국세청장의 통찰력이면 더 좋고, 우연이 겹쳐서라도 ‘국세 체납 일소’의 기적이 미소로 다가와 키스하는 아름다운 결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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