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고 합리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국세청.
공정하고 합리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국세청.

국세청이 ‘고위무원공단’ 인사에 술렁이는 모양이다. 임광현 국세청장의 취임 이후 국세청 고위직 인사가 차일피일 늦어지면서 온갖 루머가 난무하는 양상이다. “현 고공단 가운데 사직을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도 들리고 “새로 ‘고공단’ 입성을 노리는 대상자들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다” 에서부터 “누구는 어느 라인이니, 누구는 누가 뒤를 봐준다는 얘기가 있다”는 등 차마 입에 담기도 싫은 풍문들이 한 입 건너 두 입으로 퍼지더니 아예 쑥덕공론으로 번질 기세다. 이제 시간이 갈수록 임광현 청장의 첫 고위직 조각이 어떻게 귀결될지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고위공무원단’ 제도가 도입된 것은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6년이다. 당시 도입 배경은 고위공무원들의 능력을 극대화하고 적재적소의 인사를 위해 인사의 풀을 넓히는 것이었다. ‘고위공무원단’ 제도는 OECD의 일부 나라와 미국과 일본 등이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였기에 도입하기가 쉬웠다. 인재풀을 넓히고 효율적인 인사와 공직사회의 업무 능률 향상을 도모할 수 있는 우수한 제도로 포장했으나 실제는 상대 진영의 인사들을 합법적으로 잘라 내기 위한 방편으로 악용되기 일쑤였다. 즉, 정치권력의 행정부 장악을 위한 ‘꼼수’가 엿보이는 아이디어였다. 결국 도입 배경이나 목적과는 달리 우리 몸에 맞지 않는 옷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으나 관존민비의 특수한 정서를 디딤돌로 하여 우뚝 선 모습이다. 전통적인 공무원 사회도 직업공무원 제도가 확립되었다고 하지만 고위직은 정치 바람을 탈 수밖에 없었다. ‘고공단’은 공무원 조직을 장악하기 위한 권력자의 의도에 맞추어진 느낌이 강했지만 누구도 반대 명분을 찾지 못하고 오늘에 이른 ‘계륵’ 같은 존재다. 국민의 지시만을 수행하는 공복의 자세를 견지한다는 것은 焉敢生心(언감생심)이다.

오랜 보수정권에 휘둘렸던 진보정권은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이 탄생하면서 해묵은 보수정권의 인사들을 정리하고 핍박받았던 진보성향의 지지자들을 교체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여러 가지 제도적 변화를 통해 장기적으로 진보적 성향의 인사들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나 정무직을 제외한 공무원 사회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보수의 싹을 제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3년 김대중 대통령의 뒤를 승계한 진보정권의 노무현 대통령 때인 2006년 ‘고공단’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도입했다. 고위공무원단은 고위공무원의 물갈이를 원활하게 하기 위한 진보정권의 참신한(?) 묘수에서 출발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통설이다.

그러나 역사의 수레바퀴는 누구에게도 영원함을 주지 않는다는 진리를 깨우치게 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뒤를 이어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으로 보수정권이 재집권하면서 진보정권의 꼼수로 한자리 꿰찬 고위공무원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간신히 자리보전한 인사들은 온몸으로 떨어야 했고,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꾸기도 했다. ‘만사형득’이니 ‘문고리 3인방’이니 고위공무원들의 정권 줄 대기가 도를 넘었다. 공무원 사회의 부패가 점점 심해진 것이다. 폭넓은 인사를 통한 정부의 효율성 극대화라는 포장지 속의 전 정권의 잔당을 청소하려는 꼼수는 공무원 사회를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정무직이야 원래 그런 임시직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제 전통적인 공무원직급이었던 이사관(3급)에서 관리관(1급)은 합바지 방귀 새듯이 사라지고 현재는 ‘고공단 가급’이니 ‘고공단 나급’이니 하여 정권에 가까운 사람이 아무 장애 없이 추월이 가능한 장치가 제도라는 이름으로 터를 잡았다. 인사혁신처와 ‘고공단’이라는 역사적 제도개선으로 정치권력에 아부하여 영달을 누린 사람이 셀 수 없으며 그 유탄에 절명하거나 폐인이 된 사람들의 눈물이 한강 수위를 높였다는 풍문도 있으나 실제 확인된 바는 없다. 오죽하면 행시 동기 중 찌꺼기만 남기고 유능한 인재는 싹을 모두 잘라버린 결과로 무능한 인물이 과외의 영예를 누리다 영어의 신세가 되기 일쑤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진보와 발전을 위한 진화를 거듭해야 할 대한민국의 공무원 사회 DNA가 점점 쪼그라들고 퇴보하는 양상은 슬프기까지 하다. 자칫 대한민국의 몰락으로 이어지지나 않을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식자층이 점점 늘어나고 있음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제 정치권의 줄 대기를 하지 않고는 ‘고공단’에서 살아남기 어렵게 됐다.

인사혁신처도 우습지만 이들의 ‘고공단’ 승진평가는 가히 코미디를 방불케 한다. 직업공무원 제도가 확립된 경우라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5급(사무관)으로 임용되면 3급까지 승진하기 위해서는 대개 20년 정도 걸린다. 이 기간 동안 각 부처에서는 직무능력이 검증되고 인사이동 때마다 비리나 징계사유 등을 걸러내고 성과와 업무 성취도를 평가하게 된다. 수십 년간 누적된 이러한 정당한 평가를 도외시하고 인사혁신처에서 무슨 근거로 무엇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도 모를 평가 잣대를 들이대니 ‘소가 웃을 일’ 아닌가?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인사혁신처에서 고공단 승진자 평가에서 탈락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각 부처에서 “알아서 긴다”는 말이 적당한 비유일 것이다. 부처 책임자가 미리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로 대상자를 선별해서 올린다는 표현이 적정하리라.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으로 출발하면 고위직으로 승진과 정년이 보장된다. 오죽하면 “일하지 않아도 정년이 보장되는 공무원”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무사안일과 철밥통으로 공무원을 최고의 직업으로 꼽는 것이 세태다. 그래서 많은 젊은 청년들이 출세의 최첨단으로 행정고시를 꼽고 있으며 너도나도 여기에 목을 맨다. 그들이 알까. ‘고공단’이라는 제도로 인해 말년이 비참하게 마무리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고위공무원으로 마무리를 잘하고 정치권으로 옮겨가 100세 시대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정권에 줄서기를 잘해야 한다는 서글픈 현실을, 그것도 미리 준비할 수도 없고, 오로지 운 발이고 타고난 벼슬 운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면 이미 때는 늦는 경우가 다반사다. 뛰어난 업무능력, 남다른 추진력, 덕망, 존경, 지혜, 지식 등 훌륭함의 모든 요소를 두루 다 갖추어도 아무 소용 없다. 벼슬 운이 없으면 구체적으로 말하면 바뀐 정권에 전 정권의 부역자로 찍히면 그날로 끝장이다. 반대로 아무리 무능하고, 아부 외에 할 줄 아는 것이 없어도, 무식해도, 조직의 指彈(지탄)을 받아도, 부하들의 손가락질도, 아니 전 정권에 무능력자로 낙인찍혀 한직으로 밀려다니며 박해를 받을수록, 지혜가 모자랄수록 정권의 충성도가 높다는 이유로 살아남고 오히려 우대받는다. 정권교체기에 어떤 위치에 있는지와 정치권에 줄 대기를 할 수 있느냐 여부에 남은 공직 인생이 좌우되는 것이다. 신의 妙技(묘기)라 불리는 ‘운발’ 밖에 믿을 것이 없다.

정권의 공무원 사회 장악을 위한 꼼수에서 출발한 ‘고위공무원단’은 이제 적폐로 보인다. 서기보, 서기, 주사보, 주사, 사무관, 서기관, 이사관, 관리관의 직업 공무원제도가 확립되어 공직사회가 안정되어야 한다.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아야 나라의 중심이 바로 선다. 4년이나 5년이나 선출직들은 임기가 정해진 임시직들이다. 선출되었다는 이유로 임시직들이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 공무원들을 흔드는 것은 비정상이다. 국민의 공복으로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하게 하는 정책적 유인이 절실하다. 정권이 공무원 사회를 장악하는 것은, 국민을 도탄에 빠지게 하는 지름길이란 생각이다. 선출직 권력은 임기가 끝나면 무상하다. 무한한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특히 정권에 걸림이라는 이유로 싱싱한 새싹을 잘라버리는 것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잡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유능한 인재를 반대파라는 이유로 잘라서 손해 본 국가의 이익이 얼마인지는 왜 아무도 연구 안 하는지 모를 일이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원한다면, 나라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동방의 빛으로 세계를 밝히고자 한다면, 금수강산을 길이 보존하고자 한다면, 지구에서 가장 위대한 민족으로 남고자 한다면 ‘고위공무원단’부터 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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