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정기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가 10월 16일 국세청 세종 청사에서 열린다. 이날 본청을 비롯해 서울청, 중부청, 인천청 등 3개 지방청 국정감사도 함께 진행한다. 29일과 30일 기재부와 산하 외청과 한은 산하의 금융기관들에 대한 종합감사를 끝으로 올해 ‘국감’의 대단원을 정리한다는 계획인 모양이다. 바야흐로 ‘국감 시즌’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국감’은 의원 나리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최상위 계급의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행정부 각 부처의 공무원들을 쥐잡듯 호통치고 위세를 떠는 모습이 차마 目不忍見(목불인견)이었다. 반면 장·차관은 물론 행정부처 공무원들은 혹시나 의원님들의 눈 밖에 나거나 비위를 거슬리는 일이 없도록 정성을 다하여 접대하느라 몸고생 맘고생에 예산 낭비까지 죽을 맛이지만 有口無言(유구무언)을 미덕으로 승화시켰다.
작금의 국회 형태와 운영을 보면 “국감은 해서 뭐 하나”싶다. 한마디로 ‘국감’ 무용론에 한 표를 보탠다. 지금의 국회는 소위 ‘수준 이하'라는 말이다. 행정부의 만용을 견제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정권교체에 따른 무도한 권력기관들의 횡포가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앞선 국민은 야당에 절대다수 의석을 몰아주면서 견제와 균형을 요구했다. 그러나 의외의 결과가 초래됐다. 국회의 과점주주가 된 야당은 사사건건 정부의 발목을 잡았고, 인내심 약한 행정수반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골 한번 낸 것이 화근이 되어, 국민 뱃속에서 10달을 참고 인내하며 품어서 금이야 옥이야 산고를 치른, 내 사랑 내 새끼로 사랑받지 못하는 소위 칠삭둥이도 못되고 육삭둥이 정권을 세상에 내질러놓게 됐다. 기회만 엿보고 있던 야당은 “옳다구나” 정권을 내 편이라는 이유로, 누구 말마따나 “한주먹도 안되는 권력”이고, 4년 또는 5년이면 물러날 임시직들이 세상을 요절낼 기세다. 결국 당면 국회의 모습은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수의 횡포를 일삼고 정권과 야합하여 법원을 조롱하며 ‘삼권분립’을 ‘명심천하’로 만들고자 총력을 기울인다. 한마디로 無所不爲(무소불위)다. 이에 반해 정상적인 국회라면 당당해야 할 소위 야당이라는 한쪽 다리는 아예 못 쓰게 돼 버렸다. 견제는커녕 할 수 있는 것은 포기뿐이다. 국민은 내 선택이니 울며 겨자 먹는 심정이어도 속으로는 “00이 육갑하네” 할지언정 남이 볼까 그저 잘되기만 천지신명께 빌면서 전전긍긍 속을 태우고 있다.
이런 절름발이 국회가 ‘국감’인들 제대로 수행할 리 만무하다. 더구나 민족 명절 추석 연휴로 인해 국감을 준비할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그래도 정해진 절차이고 국회의 권능을 믿어보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는 것이 주어진 현실이다. 국회의 행정부에 대한 ‘국정감사’는 보통 예산감사가 첫째이고 정책감사가 둘째이다. 국회의 첫 번째 임무가 예산 편성 및 승인과 감시이기 때문이다. 의원들에게 물어보자. 올해와 내년 국세청 예산 편성 항목별 규모와 쓰임새를 점검하고 문제점은 무엇인지, 아니면 어떤 항목에 예산을 얼마나 더 투입하는 것이 필요한지 연구했는지. “우리 정권인데 행정부의 예산을 감시하고 들춰서 좋을 것이 뭐 있나?” 하면 국회의원 자격이 없는 것이고 직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올해 국세청 예산은 2조 40억 원인 것으로 국세청이 밝히고 있다. 국세청이 홈페이지를 통해 올해 예산 집행과 내년도 예산안을 상세하게 공개하고 있다. 그런데 기관 운영비에서 절감할 항목은 없는지? 제도개선을 위해 예산이 추가 돼야 할 항목은 찾아볼 수 없는지? 기관 운영비에서 직원들 사기진작을 위한 지원은 얼마나 필요한지? 국세청 예산을 공유하고 국세청 국감에 참여할 기재위원들 간 의견 조율은 있었는지? 이런 정도는 해야 국회의 기능을 다하는 것 아닌가 싶다. 국회의 예산 감시권은 혈세 낭비를 막는 최후의 보루임을 생각하면 더 이상 중요한 일은 없을 것이다.
‘국감’의 두 번째 중요 덕목인 정책감사는 더욱 어렵다. 국회의원들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국세청의 징세 업무에 필요한 각종 제도에 대한 무관심 때문이다. 국세청이 국회에서 승인한 예산 대비 징수율은 어떻게 되는지? 국민의 조세 부담률 측면에서 국세청의 역할은 무엇인지? 세금계산서 발행제도는 어디까지 와 있는지? 신용카드 사용률 및 국세의 카드 납부 비율은 몇 퍼센트나 되는지? 세무대리인 관리에 부실함은 없는지? 체납 관리 대책과 실효성 있는 징세 대책은 어떤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지? 관리 실익이 없는 소액 장기 체납자의 회복 방안은 강구되고 있는지? 근로장려금은 형평에 맞게 고루 지급되고 있는지? 영세사업자를 지원하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신종 탈세 수법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무리한 세무조사와 추징은 없는지? 모르긴 해도 연구한 의원도 없을 것이고 기재위의 관심 사항도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상황에서 예측되는 ‘국감’의 모습을 그려보면 이렇다. 국세청장은 의원들의 질의에 “개별납세 정보는 법으로 공개가 금지되어 있음을 양해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와 “의원님의 지적 겸허히 받아들여서 국세행정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라며 면피성 답변으로 일관하며 국감을 형행화 시킬 공산이 크다. 누가 뭐래도 국감의 주인공은 국회의원들이다. 이들이 예산이나 정책은 뒤로한 채, 전 정권 인사들과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과세 여부를 따지고 실익도 없으면서 증인으로 불러다 망신 주기, 검찰 수사 중인 사건들에 대한 국세청의 처리 절차 등 정치적 사안만을 돌출시키는 愚(우)를 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중 최악은 지역구의 민원성 질의로 국세청을 윽박지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이번 국세청 ‘국감’에서는 ‘탈세 정보 공개’ 원칙 하나만이라도 세웠으면 좋겠다. 자료수집과 국세청 의견을 토대로 정기국회가 끝나기 전에 ‘탈세범 정보공개법(가칭)’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국세청이 지금까지 한 번도 밝힌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검찰 수사 중일 때는 ‘수사 중’이라는 이유로, 수사가 끝나면 ‘종결된 사항’이라는 이유로, 국세청의 역할과 탈세액 및 추징액은 오리무중이다. 탈세도 분명 범죄이건만 형사 범죄에 묻히면 언제나 보이지 않는다. 일례로 대법원에서 형이 확정된 법인 대표의 경우를 보자. 그에게 조세포탈 범죄에 대해서는 얼마나 형이 추가되는지 전혀 알지 못한다. 검찰 수사를 받게 되면 대부분 국세청의 세무조사도 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그 결과는 며느리도 모른다. 아무리 개별납세 정보는 미공개가 원칙이라 해도 우리 법에서는 ‘사회 공공의 이익’이라는 원칙이 확립되어 있다. 개인의 인격도 보호되어야 하지만 보호의 가치가 사회공공 질서에 위반하는 때는 공공이 이익을 우선함이다. 강력범죄자에 대한 신분 및 인물 공개나 흉악범에 대한 수배 전단 등은 좋은 예이다. 탈세범은 국가를 상대로 한 범죄이기 때문에 더욱 엄격히 처리해야 하는 중대범죄다. 그럼에도 개인이나 법인격을 갖춘 기업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납세 정보를 공개하지 않음은 비정상이다. 국회의 입법권은 이럴 때는 잠자고 있다. 그렇게 좋아하는 패스트트랙이라는 것을 이때 사용하면 우리 사회가 정화될 터이다. 의원님들의 뒤가 더 구려서 용기를 못 내는지도 모르겠다.
제발 2025년도 정기국회 국정감사에서는 행정부의 혈세 낭비가 없는지 세밀하게 살피는 예산감사를 위주로 입법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는 정책감사가 병행되었으면 한다. 실은 대한민국 초대 국회 구성 이후 한결같은 소망이지만 희망이 큰 만큼 실망이 컸다. 무엇을 기대하랴. 부질없는 꿈이었나 생각하며 속쓰림을 달래는 수밖에. ‘의회 독재’라는 신조어가 생겨나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국민의 근심이 하늘에 닿았음을 알기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