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저스의 예언은 빗나갔다. “2010년 이후 세계는 ‘블록체인과 AI의 시대’가 될 것이다. 경제 개념을 전환하고 가상화폐와 AI 주도형 금융거래로 세계질서가 재편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현대 경제학의 대부답게 그의 예언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그러나 오직 대한민국에서만 그의 예언은 오차가 너무 컸다. 블록체인과 AI의 시대가 된 것만 놓고 보면 그의 예언은 적중한 것이다. 사회 전반을 AI가 리드 해 나가는 느낌이다. 가상화폐도 전 국민이 열광하는 투자 대상이 되고 AI 기반을 토대로 주식 투자가 적중률과 수익률을 높여주면서 개미투자자들이 획기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주가지수 5000을 공언하는 등 정부 차원의 노력도 짐 로저스의 예언에 부응하는 듯하다. 그러나 결과는 엉뚱하게 부유하고 항해는 나침반을 잃은 듯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죽었다 깨어나도 변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특수상황은 바로 부동산이다. 가상화폐의 수익도, 주가지수 상승에 따른 주식거래 수익도, 배당도, 소위 고소득이라는 전문직도 부동산 상속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생긴 이유는 첫째가 수요 공급의 시장원리가 작동하지 않는 부동산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둘째는 분배정책의 실패가 원인이다. 富(부)의 불평등을 측정하는 기법으로 지니계수와 로렌츠 곡선을 통한 분석이 많이 사용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상위 20%가 소유하는 부가 하위 40%보다 월등하게 높다. 오랜 세월 분배를 위한 누진세와 부의 세제에 무신경했던 탓이다. 특히 부동산의 경우 소유에 대한 집착이 강함에도 제한을 금기시했다. 부동산의 공급 경직성을 도외시하고 공급 확대를 남발했다. 지금이라도 부의 재분배와 자산 불평등 지수를 개선하기 위한 세제개편이 시급하다.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세금 정책을 쓰지 않겠다”는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하게 국세청이 한강벨트의 부동산을 전수조사했다고 한다. 거래 수익자를 찾아내서 세무조사도 할 모양이다. 집값이 심상치 않음을 체감하고 있음일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소유자가 최상위의 신흥 귀족계급을 이루고 소위 돈 잘 번다는 ‘사’자 전문직들이 기를 써도 못 따라가고 주식거래로도 당할 수 없는 절대 ‘富’를 자자손손 유지하는 대원칙이 ‘믿을 것은 부동산 뿐이다’를 탄생시켰다.
이처럼 부동산 상속자들이 최상위 귀족계급이 되는 특이한 현상은 부동산이 갖는 특수한 원죄와 국민성을 정치에 이용한 권력의 낭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은 근원적으로 수요 공급의 시장원리를 배척하는 특성이 있다. 지금 사회문제로 등장한 집값의 경우만 봐도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원죄라 볼 사항이다. 수요는 가구 수의 증가로 지속적으로 늘어난다. 이에 반해 공급은 적기 수급이 불가능하다. 공동주택의 경우 입지 선정과 기반 시설 조성 및 건축 공급까지 아무리 서둘러도 5년 이내는 어렵다. 결국 수급의 불균형은 매년 집값을 상승시키고 시중 유동자금을 부동산시장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게 된다. 시중 유동자금은 확실한 수익을 담보하면서 위험부담이 적은 쪽을 택하기 마련이다. 현 장세에서 주식은 부동산에 비해 위험도가 높고 수익률도 보장하지 못한다. 대통령의 말도 소용없고 정부의 정책도 먹혀들 여지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부동산 상속자들이 최상위계급으로 영화를 누리게 되는 과정은 이렇다. 부동산을 가진 부모가 증여세를 내고 증여하면 매년 부동산 상승률로 인해 10년 정도 지나면 납부한 증여세는 흔적 없이 지워진다. 소위 세금 전문가라는 세무 대리인들이 자산가들에게 컨설팅이라고 자문하는 절세전략의 주 타킷이 바로 부동산 사전증여를 통한 부의 세습이다. 상황이 이 정도면 누구라도 어느 정도의 부를 축적하면 제일 먼저 부동산을 갖길 원한다. 부동산은 갈수록 수요가 창출되고 공급은 한정돼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에서 부동산은 영원불변의 황금알일 수밖에 없다.
어떤 연예인이 과거 47억 원에 산 빌딩을 350억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는 뉴스는 부동산을 빼고는 투자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는다. 12년 만에 300억 시세차익을 실현했다면 어떤 투자와도 비교할 수 없을 뿐 아니라 근로소득으로는 당연히 불가능하고 어떤 전문 직업인도 실현 불가능한 고소득이다. 그나마도 이렇게 시장으로 나오는 매물은 세습되지 않는 측면에서 사회 기여인지도 모른다. 전국에 수많은 빌딩과 강남의 똘똘한 한 채, 여기에 땅까지 가진 부동산 귀족들은 대한민국을 지배하며 정치권력을 내려다본다.
방법은 하나다. 주거용 이외의 어떠한 부동산도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농지는 농민만이, 공장용지는 공장으로만, 택지는 주택으로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만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목적에 맞는 정책을 위해서는 세금 정책의 동원이 불가항력이라 봐야 한다. 세금 정책만 생각한다면 ‘보유세는 무겁게, 거래세는 가볍게’가 원칙이다. 과거 문재인 정부 때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보유세를 강화하면서 동시에 거래세까지 올리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보유세는 잘못 인상하면 전가되는 경향이 있으므로 “세금 때문에 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소유 자체가 불가능하게 해야한다. 그리고 양도소득세와 취득 및 등록세는 폐지해야 한다. 거래세는 가벼울수록 좋다.
과거 경제 개발 시대였던 70년대나 80년대까지만 해도 부동산은 유리 천장을 파괴하는 방법의 하나였다. 그때 개발과 급속한 경제성장의 열매를 독점했던 신흥 귀족이 땅 부자였다. 이후 세대가 바뀌고 주역이 교체되었지만 부동산은 변함없었다. 일부 방탕한 자식을 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증여나 상속이라는 보편타당하고 적법한 대물림에 성공했다. 부의 세습으로 최상위 귀족이 된 상속자들은 영원불멸이다. 황금알을 낳는 부동산이 수중에 있는 한 어떤 것도 두렵지 않다. 정치인들의 협박도 권력자들의 공갈도 먹히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상속받은 계급을 상속하기 위해 상속세를 폐지하자고 명분을 만든다. 甘言利說(감언이설)일 것이다.
솔직히 근로자들이 내 집 마련하기도 힘든 세상이다. 이대로라면 근로자는 영원히 노동자로 세습되고 부동산 상속자들은 언제나 부자로 남게 된다. 새롭게 형성된 계급사회에서 노동자가 귀족이 되는 유리 천장은 사라졌고 약육강식의 밀림 법칙만 유효할 뿐이다. 연금까지 상속됐던 중세 귀족사회보다 심한 계급사회로 가고 있는 느낌이다. “계급은 어디에도 있다. 동물의 세계라면”이라는 말이 진리인가 싶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도 결국 동물이란 말이다. 국민이 정권을 선택한 이유 중에 ‘부의 재분배’와 ‘평등한 세상’도 한몫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