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위엄이다. 세무조사라는 칼이 있어 국세청을 무서워한다. 탈세자들에게는 염라대왕보다 무섭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패가망신(敗家亡身)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성실한 납세자에게는 절대로 휘두르지 않는다. 그것이 법이다. 흔히 세무조사를 일컬어 ‘성실납세를 담보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이유다. 그래서 국세청의 역사는 세무조사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무조사가 국세청의 존재 이유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중차대한 세무조사가 도마 위에 오를 모양이다. 임광현 국세청장이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세청 국정감사 업무보고를 통해 “조사 방식 바꾸겠다”고 천명하여 천지가 진동하는 충격을 던졌다. 시대의 투영인가? 국세행정의 선진화인가? 인간 지식 누적의 산물인가? 진보의 표상인가? 여론을 떠보기 위한 응수타진인가? 삐끗하면 범죄자가 되는 조사와 수사의 차이는? 세무조사 방식을 바꾸겠다는 국세청장의 선언은 충격이다. 강진에 비견되고 귀신이 경기(驚氣)를 일으킬 정도다. 이를 두고 어떤 국회의원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라며 조크를 날렸다.
아직은 구체화 되지 않아서 세부 내용은 알 길이 없다. 세무조사에 부드러움을 접목하고 싶다는 의도를 모르는바 아니나 “세무조사는 국세청의 칼이어야 한다”는 한마디에 많은 시사가 내포되어 있다. 모든 세무조사에 적용할 것인지, 정기세무조사처럼 예고된 통상적 조사에만 적용하는지, 납세자가 선택할 수 있는지, 국세청의 선택사항인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그러나 세무조사를 위해 납세자를 세무관서로 부르면 납세자는 피의자가 경찰서에 수사받으러 가는 느낌이 들것이다. 관서의 위압감과 조사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이 주는 두려움 등으로 심리적 공황 상태가 초래될 수도 있다. 뭐가 걸렸는지 궁금하고 고액의 추징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공포에 떨게 될 것이다. 결코 납세자를 위한 행정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조사 대상자가 조사에 불응하면 체포영장이나 동행명령이 가능한지? 아니면 현장 조사로 전환하는지? 기존의 서면분석과는 무엇이 다른지 궁금하다. 서면분석도 엄밀히 말하면 세무조사의 한 형태다. 다만 신고 내용만으로 정확한지 누락 된 것이 없는지, 거래상대방과의 대사 등 컴퓨터가 정확히 가려내 준다. 따라서 신고 내용만 분석하는 것이 세무조사의 전 단계인 서면분석이라 명명하고 사업체에 나가 장부를 영치(領置)하고 현장의 모든 실상을 확인하는 것을 세무조사로 통칭한다.
대부분의 탈세는 신고 내용 분석만으로는 적발이 어렵고, 사업장에서 장부나 서류들을 영치(수사상 압수수색)해야 하는 경우는 어찌할 것인가. 탈세 신고나 내부 고발의경우도 탈세를 적발하기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탈세 신고 포상금이 쉽게 지급되지 않을 정도로 세무조사 업무 자체가 쉽지 않은 행정이다. 특히 탈세는 성격상 우리 사회의 어두운 곳에 만연하고 있다. 유흥업소, 불법도박, 인터넷 사이트, 추적이 어려운 가상화폐, 유령회사를 통한 허위 무역 등 탈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의 실상을 들여다보자. 이들은 사업자등록이 안 된 경우도 허다하고 사업자의 경우는 바지 사장과 전주가 다른 경우가 일반적이다. 세무관서로 불러서 세무조사를 한다면 과연 효과가 있을까?
또 있다. 소위 ‘하명조사’라 통하는 기획조사의 경우 실태 확인을 위해 현장 파악 등 사전점검(수사상 내사)은 어떻게 하는지? 내사 후 구체적인 증빙 없이 사업자를 세무조사 명목으로 불러서 “네 죄를 네가 알렸다”는 식의 소위 ‘원님 조사’가 되면 이 시대에는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내사가 마무리되면 탈세범으로 취급할 정도로 탈세의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 현장 확인과 서류 영치를 안 하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 모든 조사전 단계를 거친 다음에 사업자를 관서의 조사실로 부르는 것은 지금 보다 훨씬 무시무시한 칼이 될 것이다. 아마도 정권에 비협조적인 사업가들을 겁주는 무기로는 최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국세청은 지난날 납세자와 세무공무원의 유착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세무서 민원실을 제외한 관서에 납세자 출입을 막아왔다. 심지어 세무대리인들도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런데 납세자를 세무관서로 부른다고 한다. 개선이라는 명목과 납세자 편의를 높인다는 엄청난 은혜(?)를 베푼다는 생색이 놀랍다. 국세행정의 개선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행정능률의 향상이고 다른 하나는 납세자 편익 증진이다. 행정능률에서 기존에 신고 내용의 서면분석을 통해 수정신고를 권고하고 확실한 탈세 정보가 확인된 때만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다만 정기조사의 경우 성실신고를 담보한다는 국세행정의 대의명분 아래 주기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 경우도 인력 등 행정력 부족 등으로 일정한 기간에 조사를 못하는 경우가 더 많은 난맥상이 노출된 지 오래다.
그래도 과거와 달리 사회시스템이 점차 탈세에 대한 유혹을 포기하게 하는 여러 장치들이 작동하면서 투명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탈세는 더욱 지능화하고 교묘해지는 경향이 있어 모든 납세자에 대한 ‘성실성 추정’은 갈 길이 멀다. 세무조사와 관련한 개선은 여하한 방법으로 탈세자를 걸러내느냐가 관건이다. 탈세자만 정확히 가려낸다면 세무조사 방법은 가혹하리만큼 철저해야 한다. 탈세자에게는 일반 납세자에게 주어지는 모든 편의와 세정 지원이 박탈되어야 한다. 세무조사에 필요한 사업장 현장 확인과 관련 장부 서류 일체의 영치와 형사법상 피의자와 동일한 잣대로 부정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탈세 규모와 소득 탈루를 찾아내고 처벌해야 한다. 세무조사는 추상(秋霜) 같아야 한다. 탈세 혐의자에게 베풀 세정은 없다. 탈세자는 인권이라도 유린하고 싶다.
국세청장은 성실한 납세자에 대한 세정 지원에 최선을 다하되 세무조사의 엄중함을 보여 주기 바란다. 백번을 양보해도 탈세 혐의자를 관서로 불러서 조사하는 방법은 세무조사의 개선이라 보기 힘들다. 자칫 소 잡는 칼로 닭 잡을까 걱정이다. “세무조사로 인한 납세자 불편을 줄여주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왠지 “이유 없는 무덤 없다”라는 옛말이 생각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