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득층 세율인상 반대론을 실증적으로 반박…부유층 증세론에 힘

"부자들이 사업상 이유 등으로 더 붙박이형…소수 세금이주는 플로리다로만"

`백만장자들한테 부유세를 매기면 세율이 낮거나 없는 지역이나 나라로 떠나기 때문에 세수에 손해다'라는 게 부자 증세나 부유세 부과에 대한 반대론자들의 논리이지만, 적어도 미국 내에선 이게 사실이 아니라는 게 실증적 연구로 밝혀졌다.

미국에서 13년간 4천500만 건에 이르는 국세청 기록을 분석한 결과 부자들은 그들보다 가난한 사람들보다 도리어 더 붙박이 형이고, 이주한다 하더라도 세금과 관계없는, 가령 바닷가에서 살고 싶어서 등의 이유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블룸버그닷컴이 26일(현지시간) 미국사회학지(ASR) 6월호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전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의 각 주나 혹은 세계 각국이 부자들의 `세금 탈주'를 걱정할 필요없이 부유층으로부터 세금을 더 거두는 정책 기반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이 매체는 전망했다.

당장 진행중인 미국의 대통령선거 국면에서도 고소득층에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힐러리 클린턴이나 버니 샌더스 같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등 정치적 함의가 크다는 것이다.

오는 11월 선거 때 부유층 세율 인상 여부에 대한 주민투표도 실시할 예정인 캘리포니아, 콜로라도, 메인, 미네소타주의 유권자들에게도 이 연구 결과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자들이 세금을 피해 이주하는 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극소수여서, 최고 세율을 10% 올릴 경우 그 세율 부과 대상 부자 가운데 그 주(州)를 떠날 사람은 단 1%에 불과해 세수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이다.

이 연구는 지난 1999년부터 2011년 사이에 어느 한 해라도 100만 달러(11억8천만원)의 소득을 신고한 사람의 기록 4천500만건을 갖고 이들의 주간(州間) 이주 기록을 분석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부자들은 부자가 아닌 사람들보다 다른 주로 이주하는 경향이 적다. 연구 대상 기간 매년 약 50만 가구가 100만 달러 이상의 소득을 신고했고, 이중 다른 주로 이사한 사람은 2.4%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미국 전체의 이주율은 2.9%였고, 특히 연간 소득이 1만달러인 저소득층은 4.5% 였다.

이는 부자가 결혼하고 자녀를 가졌으며 자신의 사업체를 가진 경우가 다른 소득층에 비해 더 많기 때문이다. 모두 이주를 어렵게 하거나 번거롭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부유층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에 여러 관계 망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으며, 또 그것이 사업 성공의 요인이기도 하다.

스탠퍼드대 사회학교 교수 2명과 국세청 경제분석관 2명으로 이뤄진 연구진은 논문에서 "대부분의 백만장자들은 '일하는 부자'"라고 지적했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사업관계가 구축돼 있는 특정 장소에서 나온다는 뜻이다.

정보기술 분야 기업가에겐 뉴햄프셔나 테네시주의 세율이 낮다고 해서 자신의 부의 원천인 실리콘밸리를 떠날 유인이 안 된다. 월스트리트 변호사들은 월스트리트 가까이 살아야 한다. 플로리다주엔 소득세가 없지만 유명 영화감독이나 배우가 캘리포니아의 할리우드 대신 플로리다의 할리우드를 택하진 않을 것이다.

세율이 높은 주와 낮은 주가 바로 접해 있어 매일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을 비교해도 마찬가지 결과다. 오리건주는 미국내에서 가장 높은 편인 9.9%의 소득세를 내는 반면 강 건너 워싱턴주는 소득세가 전혀 없음에도 양안간 백만장자 인구는 거의 차이가 없다.

백만장자들은 개인 제트기로 이동할 수 있으므로 주소지와 활동지간 거리가 더 멀어도 되지만, 뉴욕주 같은 곳들은 부자들에게 소득세를 내지 않으려면 1년에 반 이상을 다른 주에서 보낸다는 것을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기할 것은 소득세가 없는 주가 플로리다를 포함해 7개인데도 부자들의 세금 이주 사례는 거의 전부 플로리다로 몰렸다는 점이다. 플로리다로 이주한 경우를 빼면 "부자들의 세금 이주는 사실상 없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부자들이 플로리다를 선호하는 것은 "카리브해에 접한 유일한 주"이기 때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도 "플로리다 효과가 세금 회피 때문인지, 그 지리적 특성 때문인지, 두 가지가 합쳐진 때문인지는 알기 어렵다"고 짐짓 모르는 체 했으나, 블룸버그닷컴은 "사회학자가 아니더라도, 야자수 아래 느긋하게 누워있으면서 세금까지 내지 않으면 더 좋을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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