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증식 시인
고증식 시인

모처럼 방에 누워 시집 한 권 읽는데

엊그제 중학교에 든 딸아이 다가옵니다

조금만 자고 공부하면 안 되겠냐고

가만히 품안에 파고듭니다

아빠 심장은 너무 느리게 뛴다고

웅얼웅얼 몇 마디 투정이더니

쌕쌕 고른 숨소리 들려옵니다

이마에 가만히 입술을 대고 있으려니

비누 내음인지 꽃 내음인지

시 한 줄 읽고 숨소리 한 번 듣고

숨소리 듣다가 얼른 또 시 한 줄 봅니다

그러고 보니 시집 제목이

서정홍의 ‘내가 가장 착해질 때’입니다

우리 강아지 오래오래

철들지 않았으면 생각했습니다
 

[박정원의 시에서 시를 찾기]

시인 박정원
시인 박정원

   “씨를 뿌릴 때 가장 착해진다”는 서정홍 시인의 시가 떠오릅니다. 과연 “내가 착해질 때”는 언제일까요. 필자 본인의 두 딸과 아들이 혼인할 때마다 결혼식장에서 눈물이 절로 흘렀습니다. 내 품에서 떠나는 순간, 부모님 품에서 나 또한 떠나던 그때가 엊그제처럼 생각났기 때문일까요. 고증식 시인도 “딸아이”가 먼 미래를 향해 출발하는 날, 무척 슬퍼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가만히 되새겨보게 만드는 시는 그림을 그려주면서 “쌕쌕 고른 숨소리 들려”오듯, 늘 우리네 가까이에 있습니다. 각박한 시대일수록 시를 가까이하면 좋겠습니다. 연간지 《화요문학》 29호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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