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2025년도분 종합소득세 중간예납 대상자(종합소득이 있는 개인사업자) 152만 명에게 일제히 고지서를 발송했다는 뉴스에 또다시 심사가 뒤틀린다. 중간예납 고지서는 납부해야 할 세액을 알려주는 것이 일차적 목적이지만 주의해야 할 내용들도 꼼꼼히 챙겨주고 있다. 고지서를 받은 납세자는 12월1일까지 세액을 납부해야 한다. 중간예납 세액은 직전 과세기간(`24년 귀속) 종합소득 세액의 1/2이며, 납부한 세액은 내년 종합소득세 확정신고 시 기납부세액으로 공제된다. 이밖에 고지 제외 사유, 추계신고, 분납, 납기 연장 등을 안내하고 있다. 국세청의 ‘친절 세정’과 납세서비스의 고품격을 보게 된다. 국세청이 납세 안내에 얼마나 공을 들이는지 실감하게 된다. 납세자들이 납세의무를 이행 함에 있어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제도상의 혜택들을 일일이 안내하고 있다. 납세자에 대한 서비스 기관으로 거듭나고 있음이다. 지난날 권력기관으로 경외심의 대상이던 경직성은 흔적만 남은 정도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아마도 개청 이후 국세청의 지속적인 자정 노력과 납세 서비스를 확대하기 위한 행정의 허물벗기를 통한 성장의 산물일 것이다. 그러나 국세청의 이러한 노력이 빛이 바래고 중간예납에 대한 홍보를 볼 때마다 심사가 뒤틀리는 마음은 어찌할 수가 없다.
중간예납에 대한 불쾌함은 크게 두가지다. 확정되지 않은 세금을 미리 내야 하는 마뜩잖음이 먼저고 다음은 용어가 주는 불편한 심통이다. 중간예납은 직전년도 세액의 절반을 미리 내게 하는 제도로 국세 수입의 연중 균형을 맞추고 납세자에게는 일시 납부에 대한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는 장점이 있다는 이유로 도입됐다. 그러나 엄격하게 보면 아무리 헌법에 정한 의무이지만, 국가와 국민 사이에 권력과 의무가 정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가의 권력을 앞세운 부당한 핍박이라는 생각과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년도의 세액을 기준으로 절반을 납부하라고 세법으로 강제하는 것은 국가권력의 남용이라 생각할 수 있다. 추계신고, 납기 연장, 분납 등 납세서비스라고 홍보하는 것들이 따지고 보면 모두 권력남용을 감추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
다음으로 ‘豫納(예납)’이라는 용어에 대한 거부감이다. 미리 豫(예)라는 한자를 차용하여 ‘미리낸다’ ‘선납한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법인세와 종합소득세에는 ‘중간예납’이라고 사용되고 부가가치세법과 양도소득세에서는 예정신고로 쓰인다. 중간예납이나 예정신고는 이제 외래어가 우리나라에서 고유명사화되듯이 세금 용어로 자리한 현실이 못내 안타깝다. 이미 상용화된 세금 용어이지만 ‘推計申告(추계신고)의 推計만 떼어놓고 무슨 뜻인지 물어보면 20세 이하의 미래세대들은 문맹의 수준일 것이다. 推計(추계)의 한자를 해독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한문으로 법률 용어가 상용화된 것은 비단 세법에 국한한 내용은 아니고 우리나라 법률 전반에 대한 반성과 대대적인 개편 작업이 필요한 부분이다. 물론 입법 당시의 환경이나 지식의 수준을 勘案(감안)하면 불가피성이 인정되기도 하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의 헌법과 각종 법률이 성안되어 지난 80년간 헌법 개정과 각종 법률 개정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어느 정부도 우리의 독창적인 법률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度外視(도외시) 했다. 우리는 우리만의 독보적인 문자와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법률 용어들은 한자문화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대부분이 일본의 법률을 摹寫(모사) 하거나 흉내 낸 일본 식민 35년의 잔재로 보이기도 한다. 정치권에서 중국의 ‘東北工程(동북공정)’을 비난하거나 ‘식민사관’이라는 역사 인식에 대해 “일본의 잔재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면 정치인들의 민낯을 보는 느낌이다. 스스로 부끄러움을 모르는 몰염치의 극치를 보여준다는 생각이다.
中間豫納(중간예납)은 순수한 우리말로 바꿀 수는 없을까? ‘미리내기’ 정도면 어떨까? ‘일찍내기’가 더 정확한지도 모르겠다. 국어학자들이 머리를 맞대어 법률 용어에 대한 우리 말 연구와 국회나 정부에서 법 개정 시 우리말 사용을 의무화했으면 한다. 특히 세법은 ‘예산부수법’이어서 매년 개정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 번에 모두 바꾸기 어려우면 개정안 마련하기에 앞서 연구과제로 용역을 주는 방법으로 국어학자들의 연구 내용을 점차로 접목해 나가는 노력이라도 해야 훗날 우리 문자로 만들어진 우리만의 법이 완성될 것이다.
작금의 2030 세대들만 해도 한문은 해독이 불가한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태어날 우리의 미래세대는 더욱 한문을 배척할 가능성이 높고, 지금 우리말과 문자를 독창적인 문화로 정착시키지 않으면 문자나 말도 영어권으로 흡수될 가능성마저 보인다. K컬처니 K팝이라는 문화의 선도적 역할도 우리의 문자나 말이 아닌 영어로 만들어진다면 공허할 뿐이다. 이러다 우리의 문자인 한글과 말이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공연히 마음만 조급하다. 누구도 관심조차 없는 ‘문화공정’ 앞에서 더욱 초라해지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인가 싶다.
지금이라도 세제를 다듬는 기획재정부에서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인지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매년 정부의 예산안에 맞추어 세법을 개정하느라 애쓰는 세제실 담당자들은 나의 손에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평안함이 달려있음을 自覺(자각)함이 마땅하다. 우리의 경제력이나 살림살이 규모로 보아 이제 확정되지도 않은 세금을 미리 받아야 나라 살림살이를 할 정도는 아닐 것이다. 중간예납 제도를 폐지해도 크게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이다. 법인이나 개인사업자의 세 부담을 분산시킨다는 장점보다 두 번의 신고에 따르는 번잡스러움과 고생이 훨씬 크다는 생각이다. 세법이 바뀌지 않으면 국세행정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시대에 부합하고 미래의 대한민국을 위해 세법 전반의 심도 있는 개혁을 주문한다. 모든 것을 용서한다고 해도 굴욕적인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아픈 상흔을 그대로 자손 대대로 물려주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 가운데 가장 핵심일 것이다. 특히 우리의 문화와 민족의 영혼을 말살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제도, 문화, 관습, 역사 등 광범위하게 자행된 만행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국가 유지의 기초가 되는 법과 규범들에 녹아있는 일제의 잔재들을 걷어내려는 범국민적 노력에 더하여 정치 지도자와 공복들의 각성을 촉구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