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환용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주환용세무회계사무소 대표

공인회계사와 세무사 수습 미지정 문제가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일부 미지정은 불가피하겠지만, 전년도 미지정자까지 누적되며 구조적 문제로 번지고 있다. 내 일이 아니라고 마냥 팽개치기에는, 업계 선배로서 양심에 걸린다.

필자도 2003년도 합격자로서, 당시 한국공인회계사회 교육으로 수습을 때웠다. 실무가 아니라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이론교육으로 애꿎은 세월만 낭비하고, 어처구니없는 자괴감만 밀려왔던 칙칙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여 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오히려 심각해졌다 하니, 도대체 원인은 무엇이며,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이고, 당장 실행가능 대안이 무엇이 있을지를 짚어보고자 한다.

▶ 제도의 취지와 현실의 괴리

당국은 회계사와 세무사 배출을 확대하여, 국민과 기업들이 회계세무서비스를 저렴하게 이용하게 하겠다는 취지인 것 같다. 좋은 취지이고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나라님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좋은 정책이다.

문제는 이렇게 많이 뽑아 놓긴 했지만, 당국이 원하는 질 좋은 회계, 세무인을 양성하는 데는 손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수습제도는 회계사 등 전문직종의 자격사들이 시험에 합격하고도 일정기간 동안 현장 실무를 익히는 제도인데, 전문직인 만큼 이론 시험만으로는 부족하고, 실무를 익혀서 업계에 내보내야, 허투루 일처리하여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파괴하는 일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마디로, 돌팔이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이다.

▶ 의료계와의 비교, 그리고 시사점

필자가 알아본 바로는 수습제도를 가장 엄격하게 시행하는 곳이 의료계다. 의사면허 취득 후 인턴, 레지던트의 3년의 과정을 거쳐야 전문의 자격취득 및 개원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의사들은 합격 후 각급 병원에 배정되고, 남은 수습생은 지방 소재 병원들에게 강제로 배정된다는 것이다. 병원이 수련교육을 하지 않겠다고 해도, 지방 의료인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보건복지부가 밀어붙인다는 것이다. 다소 부자유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실무수습 해결 측면에서는 고무적인 일이다.

따라서 회계세무업계도 강제배정을 하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해 보면, 병원은 국가의 간섭을 받는 비영리기관이니까 가능하더라도 영리법인인 회계, 세무법인에게 강제로 고용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상 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하므로 힘들다고 보아진다. 그렇다면, 법인에서 채용 후 남은 인원은, 상대적으로 영세한 감사반이나 개인사무실에서 채용하도록 하고, 수습채용보조금을 지급한다면 어떨까?

▶ 법적 근거와 현실적 제안

[공인회계사법 제7조 ②금융위원회는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실무수습에 대한 지원을 할 수 있다.]

[동시행령 제12조 ⑤공인회계사회는 회계법인등에서 실무수습을 받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별도의 실무수습과정을 설치할 수 있으며, 이 경우 금융위원회는 그 실무수습과정의 운영에 필요한 비용 등을 지원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재 공인회계사회가 실시하고 있는 이론교육은 자괴감의 악취만 모락모락 피워올리고 있으므로 당장 걷어치우고, 감사반 중심의 생생한 현장 실무 훈련으로 전환해야 한다.

▶ 벼농사의 교훈

필자는 어렸을 때 농촌에서 자랐는데, 6월이 되면 모심기하느라 허리가 부러지는 줄 알았다. 모내기하는데도 나름대로 방식이 있어 일정한 간격을 띄워가며 잘 심어야 했는데, 나는 이를 무시하고 촘촘하게 심었다. “그렇게 촘촘하게 심으면 나중에 자라면서 통풍이 안 되어서 병충해도 잘 생기고 벼가 잘 자라지 못 한다”고 어머니는 충고했다.

소싯적부터 고집이 세었던 나는 아랑곳없이 촘촘하게 심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둘 것 아니냐’라는 믿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 이후 논을 오가며 벼가 잘 자라는지 관찰해보았는데, 내가 심은 부분은 다른 벼와 다르게 색깔이 시퍼렇고 키도 크게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역시 내 생각이 옳았어’라고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선선한 바람이 불어 올 즈음, 대부분 말라서 주저앉거나, 얼마 되지 않은 살아남은 쭉정이 벼들을 베면서 옹고집의 잘 못을 뉘우쳐야 했다. 벼들이 정상적인 열매를 맺는 것은 뒷전이고, 저들끼리 햇볕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탓에, 키 높이는 일에만 열중하니, 처음에는 무성한듯 하더니, 결국은 줄기가 썩어들어간 것이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한다. 요즘 세무업계는 탈세와 절세의 경계선을 넘나드는 첨단 기법이 횡행하고, 세무당국은 뒤쫓아가며 규제하느라 바쁘다. 회계업계도 부실감사에 감리강화라는 채찍을 휘두르고 있다. 쫓고 쫓기는 자의 광활한 황야의 레이스가 펼쳐지고 있다.

▶ 청년들의 현실, ‘청년 노예제’라는 말까지

나라님들은 날만 새면 청년우대, 청년주택, 청년oo, 청년, 청년 외치면서, 왜 이렇게 전문직 청년들을 홀대하는가?

세무사는 수습처를 못 구하면 세무서에 무료봉사를 한다고 한다. 회계사는 강의실에 주저앉아 무보수로 이론교육을 받거나, 임금 없이 회사에서 일한다고 한다. 필자도 그렇게 했다. 현대판 청년노예제가 지금 대한민국에서 시행되고 있다.

힘차게 뻗어나가야 할 젊은 혈기를, 초장에 소금에 잘도 절여놓는다. 이것은 대단한 강심장을 가진 위인이 아니면 아무나 하지 못한다. 이렇게 해서 내보내면 전문가가 되나? 이게 수습제도랍시고 운영하고 있는 것인가? 수많은 꿈 많은 젊은이들을 수렁에 집어넣고, 정책당국자들은 목구멍에 밥알이 편하게 넘어가시던가?

▶ 젊은 벼들이 제대로 익게 하려면

결론이다. 전문가를 많이 배출하는 일은 국가와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다. 그러나 내실 없는 수습제도 아래에서는 결국 알곡보다 쭉정이가 더 많이 자랄 뿐이다. 2025년 올해 벼농사는 풍년이라고 한다. 대한민국 어느 농부도 벼를 촘촘하게 심어서 풍년을 맞이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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