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인천 국제 공항 가는 길 - 황금빛 여정
가을의 도시는 유난히 따뜻했다. 창가로 스며드는 햇살은 부드럽고, 가로수는 저마다의 빛깔로 물들어 있었다. 올림픽대로를 따라 이어진 단풍길은 마치 한 폭의 풍경화 같았다. 붉은 잎과 노란 잎이 엇갈리며 흩날리는 길 위로, 나는 천천히 계절의 끝을 지나고 있었다.
멀리 한강 위로 반짝이는 햇살 속에 내 마음도 은은하게 물들었다. “떠난다”는 말 한마디가 이토록 설레면서도 쓸쓸할 줄이야. 가을은 언제나 떠남의 계절이었고, 그 길 위에서 나는 또 한 번 계절의 이름을 되새겼다.
Ⅱ. 인천대교 -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인천대교의 거대한 아치가 시야에 들어왔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그 길은 마치 하늘로 오르는 계단처럼 장엄했다. 몇 번 통과한 경험이 있어도 대교를 감싸고 있는 바닷빛은 올 때마다 새로운 얼굴이다.
구름이 낮게 깔리고, 멀리 바다빛은 은회색으로 빛났다. 차창을 스치는 바람은 약간의 소금기를 머금고 있었고, 그 속에서 나는 비로소 ‘여행의 문턱’에 들어섰다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마음 한쪽에서 속삭임이 들려왔다.
“지금 이 길이 곧 나의 활주로다.”
Ⅲ. 대합실 - 사람들의 이별과 설렘
공항의 대합실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교차하는 공간이었다. 누군가는 이별을, 누군가는 만남을, 또 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시작을 품고 있었다. 젊은 연인, 여인은 떠나고 남자는 배웅한다. 두 사람의 눈가가 촉촉이 적셔 있음을 힐끗 보게 되었다. 무슨 사연이 있을까?
전광판에는 수십 개의 나라 이름이 깜빡였고, 나는 그들 사이에서 잠시 멈춰 섰다. 가방 속엔 여권과 티켓, 그리고 가을이 들어 있었다.
Ⅳ. 활주로의 침묵 - 거대한 숨 고르기
보안 검색대를 지나, 창밖이 한눈에 트인 게이트 앞에 섰다. 길게 뻗은 활주로 위로 바람이 흐르고, 줄지어 선 비행기들이 묵직한 몸을 예열하고 있었다. 그들은 거대한 '철의 새'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치 긴 숨을 고르는 생명체 같았다.
가을 햇살이 은빛 날개 위로 쏟아지고, 비행기 한 대가 천천히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이동하자 그 그림자도 함께 날아올랐다. 그 순간, 나의 마음도 이륙을 준비했다.
Ⅴ. 탑승 - 하늘로 가는 문턱
탑승구가 열리고, 좁은 통로를 따라 들어서자 비행기 특유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기계의 냉기, 공기의 긴장, 사람들의 설렘이 섞인 향기였다.
좌석에 앉아 안전벨트를 매자 창밖으로 활주로의 빛줄기들이 차례로 지나갔다. 멀리 관제탑의 붉은 불빛이 점멸하고, 엔진의 굉음이 천천히 몸을 흔든다. 비행기가 미끄러지듯 전진하며 방향을 잡을 때, 나는 문득 생각했다. “모든 여행은 결국 이 한순간의 설렘, 떨림으로 시작된다.”
Ⅵ. 이륙 - 가을의 하늘로
엔진음이 커지고, 몸이 뒤로 젖혀지며 땅이 서서히 멀어진다. 창밖에는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점등되고, 그 불빛들이 작아질수록 마음은 점점 가벼워졌다. 이 비행기는 곧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고, 6시간 후 나는 태국의 공기 속에 있을 것이다.
Ⅶ. 도착 - 방콕의 첫 숨결
새벽의 방콕, 수완나품 공항의 불빛은 여전히 뜨겁게 빛나고 있었다. 기내의 공기는 오래된 음악처럼 잔잔했고, 장시간 비행을 마친 승객들의 표정에는 피곤과 설렘이 섞여 있었다.
입국심사대 앞에서 나는 무심코 긴 줄을 따라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심사관은 여권을 한 번 힐끗 보더니, 입국신고서도 확인하지 않은 채 “웰컴 투 타일랜드!”라는 말 한마디와 함께 통과시켰다. 순간, 국제적으로 ‘신분이 인정된 기분’이 들었다.
‘백발이라 그런가?’라는 우스운 생각이 스쳤다. 세월이 내게 준 또 다른 ‘신분증’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Ⅷ. 태국의 공기 - 낯선 온도의 포옹
공항 문을 나서는 순간, 공기가 확 달라졌다. 가을의 차가운 숨결 대신, 따뜻하고 습한 열대의 숨결이 온몸을 감쌌다. 마치 오래된 친구가 뜨겁게 포옹하듯 반겨주는 기분이었다. 사실 태국은 8번째 골프 여정이다.
밤공기 속에는 이국적인 향과 매운 향신료 냄새가 섞여 있었고, 멀리서는 ‘삑삑’ 대는 툭툭이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나는 짐을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낯선 도시의 숨결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콕의 하늘 아래, 서울의 가을은 이미 사라졌지만, 그 대신 또 다른 계절, 설렘과 자유의 계절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이여, 안녕~!
이제 나는 또 다른 하늘, 방콕에서 칸차나부리에 도착하면 아티타야 골프장의 새로운 햇살 속을 누비고 다니게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