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진단을 두고 세무사회가 국민 앞에서 기업진단 감리제도 운영 전반에 대해 공인회계사회에 공개 검증을 제안했다고 한다.

표면상 투명성 경쟁처럼 보이지만, 본질적으로는 제도의 취지를 잘못 이해한 주장이다. 감리는 보여주기식 감시가 아니라, 독립성과 공정성을 지키기 위한 자율규제 시스템이다. 즉, 전수 사전감리는 감리가 아니라 사전심사, 통제에 가깝다. 감리의 본래 목적은 사후 검증을 통해 품질을 개선하고, 전문가의 책임을 명확히 하는 데 있다.

주환용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주환용세무회계사무소 대표

세무사회는 기업진단 업무를 처음 맡는 일이니, 보고기관인 지자체 등에 “우리도 기업진단 잘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전수 사전감리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얻어온 일감인데, 초장부터 부실하면 안 되지 않나!’ 하는 심정일 것이다. 원래 기업진단 업무는 공인회계사 고유업무영역이었으나, 2012년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으로 그때부터 세무사도 기업진단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세무사회가 처음 기업진단 시장에 진입하면서 전수검사를 시행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경험이 일천하니, 실수 방지 차원에서 안전장치를 둔 것이리라. 낯선 길을 걸을 땐 지도를 자주 펼쳐 봐야 하지 않겠나? 하지만, 그 방식이 ‘표준’이라 착각하고는, 이제 막 걸음마 단계에서 고목인 선배에게 공개 검증하자는 것은 다소 볼썽사납다.

공인회계사회는 이미 수십 년간 기업진단, 회계감사, 세무자문을 통해 축적된 전문성과 윤리규범을 기반으로, 표본 감리 및 품질관리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이는 금융위원회와 공인회계사법에 근거한 제도적 감리체계다.

또 세무사회는 “우리는 전수 사전감리를 시행하지만, 회계사회는 사전감리 하는 제도가 없다"는 주장도 하였는데, 세무사회가 “우리처럼 전수검사 안 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마치 이제 막 수습 딱지를 뗀 신입사원이, 대뜸 부장님에게 찾아와서는 “왜 내 방식대로 안 하냐”고 떼쓰는 것과 같다.

감리는 전문가의 판단이 국민의 신뢰를 얻도록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이다. 즉, 회원을 통제하기 위한 절차가 아니다. 그렇게 전수 사전감리를 할 거면, 세무사회에서 직접 진단을 할 것이지, 왜 회원들에게 일하게 하고 또 그것을 전부 사전감리한단 말인가? 세무사회원들의 실력을 못 믿어서인가? 이렇게 되면 전문가의 판단은 행정의 도장 아래 갇혀버린다.

감리의 핵심은 얼마나 ‘많이’ 하느냐가 아니라, ‘제대로 하는 감리’다. 선배가 논밭을 일구고 길을 닦아 놓았기에 후배는 그 밭을 잘 갈아먹어면 되는데, 무슨 신기한 주체 농법을 개발했다고 이리 난리법석인지 모를 일이다. 지금 한가하게 선배 집에 찾아와서 시비걸 때가 아니다. 진짜 싸워야 할 상대는 세무 시장을 파고들고 있는 법무 군단이다.

장부 작성 대행과 성실신고 확인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 세무 업무(조세 신고·신청 대리, 세무조정계산서 작성, 조세 상담·자문, 세무조사 대리 등)는 변호사가 다 할 수 있다. 많이 빼앗겼다. 빼앗긴 것을 다시 찾아오던지, 조세소송이라도 받아와야 하지 않겠는가? 세무사회가 쓸데없는 논쟁을 벌이는 사이, 법무특공대는 이미 가업승계 등 세무사의 고유영역에 깊숙이 침투해 들어왔다.

무릇 지도자의 방향 설정은 중요하다.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쏟아붓고서, 자기영역을 다 잃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세무인과 회계인은 친구이자 형제이다. 각자의 영역을 존중하고, 세무회계영역을 침범해오는 에일리언에 함께 맞서 싸워야 하는게 우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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