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재명 대통령이 “국세청 요즘 아주 잘하고 있다”고 칭찬과 격려를 공개적으로 보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특정 기관을 격려하는 일은 매우 드물고 이례적이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지도자의 칭찬 한마디에 고무된 직원들이 다 함께 업무에 매진하는 분위기를 만들며 고생과 고단함이 행복으로 전환된 느낌을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국세청이 요새 아주 잘하고 있다”는 틀림없는 팩트다. 행정부의 다른 기관들보다 발 빠르게 간부 전원을 교체하는 코드인사를 마무리 지었다. AI 대전환을 선도적으로 치고 나오면서 업무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AI를 통한 24시간 세무상담(AI 에이전트 서비스)을 준비하는 등 납세 서비스의 확대와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노력도 눈에 띈다. 악성 민원에서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한 ‘악성 민원 대응전담반’과 ‘법률지원단’ 출범을 준비 중이다. 세무조사 방식을 바꾸고, 체납관리단 가동을 준비하는 등 새로운 모습과 아이디어를 통한 업무혁신과 개혁을 성공적으로 랜딩하고 있다.
고액 상습 체납자에 대한 추징은 공평과세와 조세정의 구현 차원에서 국세청의 역점업무에 속한다. 임광현 국세청장은 이번 ‘고액 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의 활동이 사전에 철저히 준비된 기획의 결과라고 설명한다. “국세청은 재산을 숨기며 호화생활을 이어온 고액·상습체납자 18명에 대해 서울시, 경기도 등 7개 광역자치단체와 공조하여 국세청이 보유한 재산은닉 혐의 정보와 지자체의 CCTV, 공동주택 관리정보 등 현장 정보를 공유해 잠복, 탐문, 현장 수색을 공동으로 수행한 결과, 현금 5억 원, 명품 가방 수십여점, 순금 등 총 18억 원 상당의 은닉재산을 압류하는 공조 체계의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국세청이 11월 초 ‘고액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을 출범시켜 체납 발생 즉시 실태 확인, 추적조사, 징수 전 과정을 논스톱으로 진행해서 재산을 은닉하기 전에 철저히 징수하는 일하는 방식의 일대 전환이 가져온 성과라는 것이다.
국세청의 의도된 홍보영상인가, 팩트에 기반한 장면의 연출인가는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이 격려를 보내는 장면이 공개된 이상 이제 국세청은 언제나 최고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팡파레를 울리기도 쑥스럽다. “국세청이 잘 한다”가 순전히 좋게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국세청이 잘했다는 말을 뒤집으면 납세자는 공포를 느낀다. 체납하면 안 되겠구나. 심리적 효과 만점이지만 ‘국세청이 수시로 칼을 뽑는구나’로 느끼면 살벌할 수밖에 없다. 체납자의 집을 급습하여 고액권 현금 뭉치와 명품들을 늘어놓은 체납관리단의 활동 영상은 체납자들에게는 공포와 전율로 전해졌을 것이다. 보여주기인 것 같은 느낌이 강하지만 국세행정의 홍보와 체납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효과는 기대 이상인 것으로 보인다. 기둥을 쳐서 서까래를 울리는 식이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강제력을 동원하는 장면을 칭찬해 버리면 “지혜가 저기까지인가?” 실망할까 두렵다. 더 나쁜 경우도 상정해야 한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볼 때 탈세자들은 언제나 세법을 앞질러 변신했다. 국세청의 탈세 대응력이 강해진 이상으로 탈세한 재산을 숨기는 수법이 교묘해질 것이다. 국세청이 어디를 어떻게 뒤질지 공개된 이상 더욱 은밀하고 남모르게 숨기고 표적을 감출 것이다. “국세청 요즘 아주 일 잘한다”란 격려가 자칫 “체납하면서 호화생활을 하는 체납자들은 더 꼭꼭 숨어라”라는 신호로 해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당연히 국세청의 ‘고액탈세 추적전담반’은 실적에 전전긍긍해야 하고 고민과 중압감이 증가하는 미래에 치를 떨어야 할 판이다. 지금의 칭찬이 내일의 우환이 될 수 있음이다.
국세청의 체납관리 업무는 사실 국민에게 보인 영상보다 훨씬 고급지다. 국세청의 체납 정리 업무 계획은 단순히 체납자에 대한 징수 목적만은 아니다. 체납자를 파악해 고의적 납부 기피자, 일시적 납부 곤란자, 생계형 체납자로 분류해 맞춤형 징수체계를 구축하여 고의적으로 체납하면서 호화생활을 하는 자에게는 끝까지 추적하여 추징하고 지원이 필요한 자에게는 지원을 연계한다는 것이다. 행정의 선의를 통해 국가와 납세자 간 권리와 의무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소통에 방점을 두는 전례가 없는 정책이다. “국세청은 이번 합동 수색을 계기로 세금을 고의로 회피하며 호화생활을 하는 고액·상습 체납자가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끝까지 추적하고 단호히 조치하여, 성실하게 납세의무를 다하는 대다수 국민이 존중받는 공정한 세상, 조세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임광현 국세청장의 설명만 봐도 긍정적인 모티브를 제공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내년에는 국세 체납관리단을 신설해 악의적으로 세금을 회피하는 체납자는 강력 대응하고, 생계곤란형 체납자는 재기할 수 있도록 적극 도울 것”이란 약속도 훌륭한 개혁으로 점수를 딸만하다.
‘고액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의 실적 홍보영상은 대변인실의 승리다. ‘고액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 구성원들과 대변인실에서 백조의 발처럼 사력을 다한 결과이다. “결과가 좋아야 모두가 좋다”는 항간의 여담이 확인된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데 한 번만이라도 이면을 보면 안 되나? ‘고액체납자 추적 특별기동반’이 그렇게 간단히 체납자의 집을 급습하고 뒤지고 현금다발을 찾아냈을까? 그 한 장면의 홍보영상을 얻기까지 아마도 수없는 시행착오와 허탕 질이 선행되었을 것이다. 그 고단함과 마음고생을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다. 과거 전시행정을 통해 보여주었던 감성 팔이가 클로즈업되는 느낌을 받는다. 국세청의 체납정리 장면이 보여주기 위한 연출만은 아닐 것으로 믿는다. 다만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얻는 사람들이 모르는, 밥상의 그늘에 숨겨진 땀과 정성을 찾아내어 고마움을 전하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감성을 과거와 겹치게 하는 모양이다.
국세청의 보여주기식 홍보전략과 이례적인 대통령의 격려를 보면서 국세공무원들의 고민을 생각해 본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이 우선이고 배려는 사치라는 우울감에 젖게 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혼신을 바치고 노력과 땀의 과실을 다른 사람이 우아하게 맛보는 현실이지만 스스로 위안을 찾기 바란다. 나의 모든 노력은 나를 위한 것이고 최선을 다한 것에 만족하고 성취의 쾌감을 느끼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해도 늦지 않다는 말을 믿어보자. “어떤 사람도 그 혼자서는 온전한 섬이 아니다./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조각, 본토의 일부이니.(중략)/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알려고 사람을 보내지 마라./그것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16세기 시인 존던이 세상에 던지는 인류의 근원적 물음에 대한 답이다. 누구나 무엇을 하던 모두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진리의 설파다. 그래서 지금은 즐기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