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판회사 등기이사 늘지만 규제 회사선 줄어…책임경영 이면에 감시 회피 우려

이사회 상정 안건 99% 원안 가결…사외이사 거수기 못 벗어나

대기업 총수일가가 주력회사에서는 등기이사로 전면에 나서지만,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에서는 미등기임원으로 한발 뒤로 물러나는 사례가 늘었다.

책임 경영을 강화하는 모습이지만, 감시 사각지대에서는 사익 편취를 추구할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대기업 이사회는 안건을 99% 이상 원안 가결해서 '거수기' 역할에 그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런 내용을 담은 '2025년 공시대상기업집단 지배구조 현황 분석'을 19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자산 총액 5조원 이상 공시대상기업집단(대기업집단) 92개 중 86개 집단 소속 2천994개 소속회사가 분석 대상이다. 올해 신규 지정 5개와 특별법으로 설립된 농협은 제외됐다. 분석 기간은 지난해 5월부터 올해 5월까지다.

◇ 간판 회사에서 총수일가 전면에…규제 회사에서는 빠져

총수가 있는 77개 집단 2천844개 중 총수일가가 이사회 구성원이 아니라 미등기 임원으로 재직하는 회사는 198개사(7.0%)로, 비율이 전년보다 1.1%포인트(p) 늘었다.

하이트진로가 58.3%(12개 중 7개)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 DN(7개 중 2개), KG(26개 중 7개), 금호석유화학(16개 중 4개), 셀트리온[068270](9개 중 2개) 순이었다.

상장사 중 총수일가가 미등기 임원인 경우는 29.4%로 전년보다 6.3%p나 뛰었다. 비상장사(3.9%)의 7배 수준이다.

총수일가 미등기임원 직위 259개 중 사익편취 규제대상 회사가 141개(54.4%)로 절반 이상이었다. 지난해(220개 중 119개, 54.1%)보다 증가했다.

총수일가의 미등기임원 겸직 수(1인당)는 중흥건설, 한화·태광, 유진, 한진·효성·KG 순으로 많았다.

총수 본인의 미등기임원으로 많이 겸직하는 집단은 중흥건설, 유진, 한화·한진·CJ·하이트진로 순이었다.

음잔디 공정위 기업집단관리과장은 "비등기임원은 경영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만 등기임원과 달리 상법 등에 따른 법적 책임과 의무에서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문제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최근 개정된 상법에서는 이사의 충실의무 규정이 강화됐는데, 미등기임원인 총수일가가 늘어나면 개정 법의 실효성이 저하될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으론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인 회사도 함께 증가했다. 이는 책임 경영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전체 18.2%(518개)의 회사에서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활동 중이다.

등기이사 중 총수일가 비율은 7.0%(704명)로 2021년 5.6%에서 늘었다.

총수일가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계열사 비율이 높은 집단은 셀트리온, 부영, 영원, 농심, DN 순이었다.

전체 등기이사 중 총수일가의 비율이 높은 집단은 부영, 영원, KCC[002380], 농심, 반도홀딩스였다.

특히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인 주력회사에 총수일가가 등기이사인 경우가 많았다.

주력회사 중 총수일가가 이사로 등재된 비율은 44.2%(154개 사 중 68개 사)로 절반에 조금 못 미쳤다. 전체 회사 대비 비율(18.2%)보다 배 이상 높았다.

총수 본인이 주력회사 이사인 경우는 26.6%(154개 사 중 41개 사)로, 전체 회사(5.7%)의 4배가 훌쩍 넘었다.

음잔디 과장은 총수일가가 주력 회사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경우와 사익편취 규제대상에 미등기임원으로 재직한 경우가 동시에 늘어난 점에 "겉으로는 책임경영 모습이지만 한편으론 감시 사각지대로 피하려는 모습도 보여서 면밀히 감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사외이사 과반 넘지만…'거수기' 못 벗어나

86개 대기업집단 361개 상장회사의 이사회 운영 현황을 보면 이사회 내 사외이사 비율은 51.3%로 지난해 보다 0.2%p 늘며 과반을 유지했다.

공정위는 사외이사 비율이 과반인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사외이사는 총수일가를 비롯한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는 핵심 장치로 꼽힌다.

상법상 사외이사 선임 의무 기준(44.2%)을 초과한 곳은 현대백화점(현대홈쇼핑, 대원강업), SK(SK케미칼, SK디스커버리, SK디앤디) 등이었다.

다만 감시·견제 효과는 여전히 미미한 것으로 보인다.

상정된 안건의 99% 이상이 원안 가결됐고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경우가 최근 5년 중 최저치(0.38%)를 기록했다.

특히 총수가 있는 집단(77개)이 총수 없는 집단(9개)에 비해 사외이사 비율·법상 의무 기준을 초과해 선임한 평균 사외이사 수와 원안대로 통과되지 않은 안건 비율이 모두 낮았다.

총수가 있는 집단은 없는 집단에 비해 보상위원회, 감사위원회 설치 비율도 낮다.

이에 관해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경영활동·보수 결정 과정에 대한 이사회 차원의 견제와 감시가 상대적으로 미흡하다는 점이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소수주주 경영감시를 위한 핵심 제도인 집중투표제는 상장사 대부분(96.4%)이 정관으로 배제했고, 실제 실행한 사례도 3년째 1건에 그쳤다.

전자투표제 도입(88.1%)과 실시(87.3%) 비율은 증가하고 있지만, 소수주주가 이 제도를 통해 의결권을 실제로 행사한 비율은 1%대였다.

공정위는 올해 개정된 상법의 집중투표제·전자주주총회 도입 의무화 규정은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의 이해상충 문제 해결 및 소수주주의 이익보호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다.

음잔디 과장은 "이사회 감시·견제 기능이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환경조성과 시장감시가 중요하다"며 "이런 측면에서 사외이사 의무 선임 비율 확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 규정을 담은 개정 상법은 투명한 지배구조 확립에 긍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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