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무서에서 세금과 관련한 단순한 신고 안내문만 받아도 덜컹 겁이 나는게 현실이다. 그런데 억울한 세금이 부과된 통지서를 손에 들었다면 그 심정은 어떨까. 더욱이 그 억울함을 바로 잡아야겠는데 가방끈이 짧은 탓에 세법지식이 부족하고, 그래서 조력자의 도움을 요청해야겠는데 비용이 없어 정당한 권리구제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떨까. 세무서 마당에서 분신(焚身)이라도 하고 싶지 않을까.
국세청이 이런 영세납세자들이 과세관청의 세금부과 등에 이의가 있을 경우 세무서나 지방국세청, 국세청 등을 상대로 불복청구를 제기할 때 불복대리인을 무료로 지원해 주는 ‘국선세무대리인제도’를 내달 3일 납세자의 날부터 본격적으로 시행키로 했다.
국세청은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한 영세납세자가 청구세액 1천만원 미만의 불복청구를 제기하는 경우 납세자의 신청에 따라 국선세무대리인을 지정해 무료로 불복청구 대리업무를 지원토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세청은 이들 국선세무대리인들의 불복대리에 따르는 보수는 지식기부(무보수)로 형태로 운영할 것이라면서 이날 국세청과 세무서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모집 공고를 냈다. 전국적으로 237명 정도를 모집할 것이라고 한다.
국세청에 따르면 그동안 경제적 사정으로 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한 소액 불복청구의 인용율이 대리인을 선임한 고액 불복청구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는 그동안 지방국세청이나 세무서에서 자신들이 처분한 건에 대해 납세자가 억울하다고 하는데도 대리인이 없다는 이유로 매몰차게 몰아 부친 것으로도 이해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도입한 국선세무대리인제도는 늦은 감이 없지 않으나 크게 환영할 일이다. ‘김덕중표 국민행복 세정의 대표작’이라고 명명해도 되지 않을까한다.
하지만 박수를 칠 때 치더라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두 가지다. 국선세무대리인의 서비스 품질제고와 그리고 원천적으로 부실부과 즉 억울한 과세를 줄이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세청은 이미 지난 2008년경 일부 세무서 등에서 국선세무대리인제도를 선보였다.
돈 없는 영세납세자들이 세무조사시 세무대리인을 선임하지 못해 발생하는 조사행정 불만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 세무서 등에서 관내 세무사들과 협약을 맺어 ‘무료 세무대리인’ 역할을 하도록 하는 행정적 조치 형태로 시행하기도 했다. 납세자가 세무조사를 받을 경우 이 대리인이 납세자에게 조사의 쟁점사항과 세법지식 등을 알려주어 세무조사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하고 소명자료 준비에도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며 기대가 상당했다. 그러나 얼마가지 못하고 ‘유야무야’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무료대리인의 한계(품질)’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국세청은 이런 과거사를 기억하는지 향후 국선세무대리인제도의 법제화 및 국비지원을 위한 예산확보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두고 볼 일이다.
두 번째로 영세납세자들에게 불복청구 대리인을 무료로 지원해준다고 해서 세무서 등의 부실부과 문제가 덮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까놓고 이야기하면 이번에 발표한 국선세무대리인제도는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라는 비판도 없지 않다. 우리가 과세한 내용이 억울하다고 하니 대리인이라도 무료로 선임해 주겠다는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무료 국선대리인 선임이라는 선심보다 부실부과를 줄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을 뼈아프게 지적하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있다. 이번에 국세청이 발표한 국선세무대리인제도는 납세자들을 벌벌 떨게 하는 세무조사 대리업무와 세금을 내기위해 추가 비용을 들여 세무대리인(신고와 기장업무 등)을 선임해야 하는 현실을 감안해 이 같은 업무도 일부 무료로 해 줄 수 있는 제도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는 점이다. 물론 현행 세무사제도와 충돌하는 면이 없지 않겠지만 세금을 내기위해 세무대리인을 선임해야 하고 그에 따르는 비용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면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동창회비를 내는 방법이 어려워 누군가에게 비용을 주어가면서 물어야 한다면 어떨까.
다행인 것은 국세청도 이런 비용을 납세협력비용 즉 ‘제2의 세금’으로 인식하고, 이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별도로 기울이고 있다고 하니 ‘희망’을 가진다. 그래서 이번에 첫 발을 내디딘 국선세무대리인제도는 납세협력비용을 줄이는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시작이 반’이라는 경구를 떠올리면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