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점식. 교통방송(tbs)에서 낭랑한 목소리로 세무상담하던 세무사였다. 기자의 첫 기억에 있는 세무사다. 택시안에서 라디오로 접했다. 어려운 세금문제를 어떻게 저렇게 술술 쉽게 풀어서 설명할까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이런 박 세무사의 모습을 롤 모델로 삼아 조세전문가를 꿈꾸었고, 최고의 조세전문가가 된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뒤에 알고 보니 박 세무사는 교통방송에서 무려 13년간이나 활동했다.
그리고 그를 기억할 수 있는 것 중 또 하나는 감사경영이다. ‘세무사의 업무는 고객과의 소통이 전제되어야만 한다'며 고객과의 소통을 위해 '감사경영'을 도입해 실천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 임직원이 매일 감사일기를 써서 사내 인트라넷 감사릴레이 게시판에 올리고 서로 공유하면서 긍정의 힘을 키워가게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감사의 전도사로 불리었고 세무사들은 물론 그를 아는 사람들에게 큰 감사와 울림을 던졌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생전 ‘어머니’에게 부치지 못한 1000통의 감사편지를 책으로 펴내 세상에 또 한번의 ‘울림’을 던져주고 있다. 책 제목은 ‘어머니’다.
그는 ‘매일 5가지씩 감사하는 일을 적으면 3주만에 뇌가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글을 읽고 감사운동에 입문한 후 지난 5년 동안 감사일기 쓰기를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감사일기는 어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시작했다. 700개를 쓸 무렵 어머니는 돌아가셨고 300개를 보태 이번에 책을 펴낸 것이다.
평소 알고 지내던 박 세무사가 어머니라는 책을 펴냈다는 소식을 신문으로 접하고 주말에 서점에 들러 한권 사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틀 뒤 박 세무사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책을 보내주었다. 그리고 한 동안 책 속에 푹 빠졌고, 읽고 또 읽었다. 어머니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렸다.
그 책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있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흑산도 무장공비 사건이 터졌다. 조명탄이 터지고 소리가 요란했다. 이불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 어머니는 문에는 이불을 덧씌우고 나에게는 이불을 더 꺼내 덮어주셨다. 그리고 당신은 이불 밖에서 기도하셨다.”
“찬밥이 있으면 당신이 드시고 나에게는 늘 새로 지은 밥만 주셨다. 나는 그것이 당연한 일인 줄만 알았다. 방학때 흑산도에 들어가면 그 바쁜 와중에도 내 밥은 새로 지어 주시려고 밖에서 일하시다가도 헐레벌떡 뛰어오셨다.”
“목포상고 재학시절 여름방학 때 섬에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집 염소를 잡아먹었다. 목포 하숙방을 찾아오신 어머니는 불같이 화를 내셨다. 넘의 염소를 멋대로 잡아 묵어? 내가 ‘경우 바르게’살라고 했냐, 안했냐? 사람이 그런 나쁜 짓을 험시로, 공부는 해서 뭣하냐! 하시고는 내 책을 모두 불사르셨다.”
“어머니가 고구마를 쪄 놓으라고 하셔서 찌다보면 왜 그렇게 물 붓는 것을 잊어버리는지....솥이 시커멓게 타서 혼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때 의외로 별 말씀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고구마가 맛있게 쪄졌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중년의 대부분을 사셨던 흑산도를 떠나 아들 하나 믿고 서울에 오셨다. 모든 것이 얼마나 낯설었을까. 그런데도 나는 밖으로만 나돌았다.”
박 세무사는 ‘어머니’에 대한 감사의 글을 새벽 명상까지 하며 기억을 되살려 썼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어머니에게 감사의 편지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 너무나 큰 행운이었으며, 우둔한 자신이 어머니의 큰 사랑과 한결같은 신뢰를 그제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과연 나는 어떤 아빠인가를 생각해 봤고, 어머니를 도저히 따라 잡을 수는 없지만 길잡이로 삼을 수는 있었다면서 이 책을 보낸다고 적었다.
천지세무법인 박점식 회장이 보낸 준 ‘어머니’를 읽고 시골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박 회장의 ‘귀한 선물’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