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초 이탈리아에서는 마니폴리테(깨끗한 손)라는 운동이 있었다. 피에트로 검사를 주축으로 하는 검찰의 정치권 사정이었다. 1년 동안 무려 3천여 명의 정·재계 인사들이 체포·구속됐고, 이 가운데 고위공직자와 정치인이 1천여 명이나 됐다.

마니폴리테는 국민들의 적극적 지지를 받으면서 피에트로 등 4명의 검사들은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기도 했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반발에 지쳐 이들 검사들은 사표를 냈고, 이후 이 운동은 시들해졌다. 25년이 지난 지금 이탈리아는 어떨까. 그렇게 청렴이 철철 넘치는 나라라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90년대초 이탈리아에서 검사들이 나서 소위 정풍운동을 일으켰다면 2016년 대한민국에서는 9월 28일부터 부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에 의한 정풍(청렴)운동이 강하게 불게됐다. 그런데 이 법이 잘못되었다면서 법률전문가들부터 나서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것을 시작으로 법시행의 뒷다리를 잡아당겼다. 헌법소원의 제기는 법률의 이치를 떠나 이미 이 법의 순수성을 훼손하는데 큰 역할을 해버렸다.

또, 농수축산업계를 중심으로 이 법의 규제대상인 공직자들이 받는 선물가격이 너무 낮다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법률의 정당성을 용인하지 못하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더해 이미 헌재에서 합헌이 났지만 언론인들까지 포함한 것은 사적영역을 법률로 규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이 법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일조를 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일단 헌재에서 다수의 재판관들에 의해 정당하다는 심판을 받았다. 그리고 이제 시행만 남겨두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제 부터다. 과연 이 법이 온전히 우리사회를 청렴하게 만드는데 일조를 할 수 있을 것인가이다. 밀실, 접대, 사교, 호형호제, 상부상조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그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겠느냐는 우려인 것이다.

이 법의 핵심은 공직자들(공무원, 언론인, 교육자 등)은 식사를 대접받는다고 해도 3만원 이하여야하며, 선물은 5만원 이하, 그리고 경조사비는 10만원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지금 지적되고 있는 가장 큰 이슈는 농수축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그동안 선물로 판매되던 한우세트와 굴비세트의 판매가 줄어들면서 농어가의 소득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한우와 굴비를 재료로 해서 4만9900원짜리 선물상자를 만들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물가격을 조금 올리자는 의견이 많다.(물론 이대로 시행하자는 의견이 더 많지만)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다. 선물용이 없다면 한우농가가 문을 닫아야한다니 도무지 이해불가다. 그 선물도 이해관계자가 공직자에게 하는 선물용이다. 누나가 동생에게, 조카가 삼촌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는 선물은 포함되지도 않는다. 단지 공직자에게 보내는 선물용 물량이 없어진다고 해서 한우농가가 망한다면 뭐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리고 공직자들은 선물이 아니면 자기 돈으로 한우를, 굴비를 사먹지 못하는 사람들인가. 또 선물이 없으면 자기 돈으로 사먹지 않겠다는 것인가. 즉 부정청탁금지법을 시행한다고 해서 한우에 대한 전체적 수요는 결코 줄어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가지 더 있다. 공직자들이 왜 이해관계자들로부터 선물을 받아야 하는가이다. 국민의 심부름꾼으로서 심부름값으로 선물을 받는 것인가. 당연히 아니지 않는가. 따라서 이 법을 반대한다는 것은 법 시행과 깨끗한 세상을 지향하는 정풍운동에 돌을 던지기위한 반대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밖에 볼수 없다. 아니면 법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식사문제도 그렇다. 반드시 이해관계자들에게 얻어먹어야 제 맛인가. 소위 각자계산(더치페이)문화로 만들어가면 서로가 부담 없어 좋다. 선진 유럽과 미국 등도 더치페이 문화로 세계를 호령하고들 있다.

문제는 그동안의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형 관습이 이 법 성공의 가장 큰 적이다. 즉 공직자와 민원인과의 영원한 ‘갑을관계’ 문화를 깨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직자는 100만 공무원은 물론 교직원, 언론인 등이다. 이들이 법 시행후 민원인들로부터 같이 식사를 하고 밥값을 본인들이 각자 계산했다고 치자, 민원인들은 아마도 안절부절 못할 것이다. 회사로 복귀하면 그것도 접대라고 하였느냐며 고생했다는 말 대신 핀잔만 뒤따를 것이다. 결국 갑을관계가 없어지지 않는 한 더치페이에는 필연적으로 뒷거래가 뒤따를 것이라는 짐작으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세법상 이 뒷돈은 어떻게 처리해야할까. 아마도 비자금으로 조달해야 할 것이다. 비자금은 말 그대로 지하경제다. 기업들은 이 비자금을 만들기 위해 가공자산 즉 가공기계장치를 만들어내고, 또 적게는 임원들의 연봉을 크게 올려(접대비 포함)집행하거나, 믿음직한 사람들을 사외이사로 만들어 월급을 되돌려 받는 방법 등 기괴한 방법들이 개발될 것이다. 물론 이 보다 더 수준 높은 특급비밀은 유명한 로펌과 회계법인 등이 만들고 있겠지만.

그렇다면 온전한 부정청탁금지법의 시행은 요원한 것인가. 방법이 없지않다. 국세청이 바로 강해지면 가능하다. 탈세, 도박, 마약, 매춘, 비자금은 모두 지하경제다. 이미 국세청은 지하경제양성화팀을 만들어두고 있다. 그 칼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부정청탁금지법의 성공, 즉 한국판 마니폴리테의 정착이 달려있다. 그래서 국세청은 이 법이 시행되기전인 올해초부터 유난히도 청렴을 강조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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