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서울 수송동 국세청사에는 국세청을 퇴직한 후 세무법인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세무사들과 세무사회 간부 및 국세동우회원 등 선배 국세인 120명이 얼굴을 드러냈다.
국세청이 3일 납세자의 날을 맞아 선배들의 경륜과 후배들의 열정을 모으는 국세인들의 아름다운 소통의 장을 만들기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름 붙여진 ‘선배 국세인 초청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또 이날 행사에는 현직 국세청 고위간부 31명도 참석해 국세 행정과 관련한 다양한 소통의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김덕중 청장은 “48년 국세청 역사 속에서 선배님들의 흘린 땀과 열정에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며, “오늘 선배들이 전하는 조언을 되새겨 국세행정을 더욱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국세청은 이날 선배 국세인들이 방명록에 남긴 ‘국세행정에 대한 조언’들을 모아 관리자들이 공유하고 기록물로도 보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국세청이 가진 선배 국세인들 초청행사는 지난 26일 김덕중 청장이 밝힌 이청득심(以聽得心) 납세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어려움을 헤아리는 것이야 말로 납세자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라고 생각한다면서 소통행정을 강조한 금년도 세정방향의 실천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오랜만에 웃음꽃이 피었다고 한다.
지난해 박근혜 정부의 초대 국세청장으로 취임하면서 병객(屛客)이라는 용어를 동원해가며 사사로운 손님을 멀리하겠다던 김덕중 청장의 세정운영 철학이 현장과의 소통으로 바뀌는 첫 걸음으로도 읽혔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표현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이날 행사 후 언론에 비춰진 선배 국세인 초청행사는 많은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이 목격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원인은 이들이 촬영한 기념사진이었다. 120여명이 참석했는데도 언론에 비춰진 사진은 국세청장을 지내는 등 고위직 출신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진의 겉모습은 화기애애해 보였다.
그러나 그 사진에는 국세청에서 고위직으로 일하면서 국세청 조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거나, 납세자들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면서 국세청을 누란의 위기로 몰아넣었던 사람들까지 당당하게 섞여있었다.
국세행정 측면에서만 보면 이들 선배들은 최대 조력자일수도 있고, 어떤 때는 가장 무서운 적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선배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는 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특히 이들 선배들이 세무사로서 현직에서 활동하면서 직접 납세자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전문가라는 점에서 가장 훌륭한 조언자이자 비평가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국세청이 이들 선배들의 조언과 쓴소리를 듣기위해 초청해 같은 테이블에서 음식을 나누며 환담을 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다. 말 그대로 ‘소통행정’의 표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치부하면서 국세청 조직을 궁지로 몰아넣었던 사람들이 무슨 낯짝으로 후배들에게 얼굴을 디밀고, 또 조언까지 하겠다고 이 자리에 버젓이 참석했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들다. 그리고 어떤 조언을 했는지, 또 방명록에는 어떤 그럴듯한 말을 적었을까 무척 궁금해지기도 한다.
솔직한 심정은 고위직이든 하위직이든 재직시절 국세청 조직에 누를 끼쳤다고 생각하는 선배들은 앞으로는 스스로 발걸음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국세청 후배들 입장에서는 예의상 초청장을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점도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스스로 그런 선배라고 생각이 된다면 설령 초청장을 받았더라도 선약이 있다는 핑계로 살짝 빠져주면 초청장을 보낸 후배들도 얼마나 마음이 편하겠는가. 그리고 본인도 부끄럽지 않고, 후배들도 좋은 취지로 만든 행사를 더욱 빛낼 수 있지 않았을까.
한번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한번 실수한 것을 가지고, 그리고 법적으로 죄 값을 다 치렀는데 후배들까지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지 않는가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 번 양보해서 선배의 날 참석하는 것까지 좋다고 치자 그렇다면 국민들에게 공개되는 기념사진 촬영에라도 얼굴을 내밀지 않는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라도 지켰으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그랬으면 “나는 저런 언죽번죽한 ‘꼰대’는 되지 않아야 할 텐데”라는 후배들의 비아냥도 듣지 않았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