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당 5억원 ‘황제노역’으로 논란이 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의 숨은 재산 찾기가 국민적 관심사가 된 가운데 국세청이 허 전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황 모씨가 사실상 운영하는 A개발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한다. 이번 조사 역시 지난 2007년 때처럼 광주지방국세청 소속 조사요원들이 아닌 국세청의 핵심인 서울지방국세청 조사요원들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광주국세청에서 조사에 나설 경우 제대로 조사를 했더라도 국민적 관심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곧이곧대로 믿겠느냐는 점이 이런 결정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런 중차대한 일을 광주국세청에 맡겨두어서는 안된다는 수뇌부의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봐주기 판결을 했다면서 지역 법원에 대한 국민적 시선이 따가운 현실에서 국세청마저 타오르는 ‘향판’ 불길에 기름을 부어서는 안된다는 정무적 판단이 작용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 허재호 전 회장 사건과 관련 아직까지 과세관청인 국세청의 잘못한 부분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국세청은 지난 2007년 허씨가 회장으로 있던 대주그룹의 계열사인 대주건설과 대주주택에 대한 특별세무조사를 벌였다. 서울국세청 조사국 요원들이 투입되어 3개월 넘게 이어진 강도 높은 조사에서 500억 원대의 탈세를 찾아내 조세포탈혐의로 허 전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이에 따라 검찰은 수사를 벌여 허 전 회장을 재판에 넘겼다. 그러나 지역기관장들과 경제단체들이 지역경제의 파장을 이유로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허 전회장의 구명운동을 했다. 이런 노력 때문인지 검찰은 1심 재판에서 징역5년에 벌금 1016억 원을 구형하면서 이례적으로 벌금형은 선고유예를 요청했고, 1심과 2심에서 잇따라 집행유예가 선고됐지만 항소도 상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법원은 1심에서 하루치 노역을 2억5천만 원으로 판결했고, 2심에서는 어처구니없게도 두 배인 5억원으로 결정했다.
결국 국민적 공분이 끓어올랐고, 검찰과 국세청 등 관련 정부기관이 합동으로 나서 허 전 회장의 재산 찾기에 나섰고, 또다시 국세청이 관련 기업에 세무조사라는 칼을 빼든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07년 때처럼 광주국세청이 아닌 서울국세청 조사국 요원들을 보냈다. 광주청에서 조사를 벌여 자칫 부실세무조사로 이어질 경우 들끓는 향판에 대한 비난이 ‘향세’라는 꼬리표를 달고 국세청으로 날아 들 수도 있는 작은 가능성마저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도 풀이된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국세청은 더 이상 큰일이 생긴다면 아마도 문을 닫아야 할 운명에 처할지도 모르는 위기상황이 이러한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전직 국세청 수장이 대기업으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긴 혐의로 재판에서 유죄를 받아 영어의 몸이 되어있다. 그리고 서울국세청 조사국 요원들이 무더기로 세무조사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챙기는 커넥션을 일으켜 줄줄이 구속되었는가 하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국민들의 국세청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친지 오래다.
이런 때에 자칫 항판에 이어 2007년 세무조사는 물론 지금 시작한 세무조사에서 조그마한 실수라도 터져 나온다면 ‘향세’라는 비난을 넘어 국세청 세무조사의 칼을 송두리째 반납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지난 2004년 국세청 수뇌부는 부산의 토착기업 태광실업에 대한 세금탈루 문제와 관련 비자금성 의혹을 포착한 후 부산청에서 조사를 할지 서울에서 할지를 놓고 갈팡질팡하다 결국 부산청에 맡겼더니 제대로 하지 못했고, 이 문제가 다음 정권(이명박)으로 넘어가 결국 서울국세청에서 조사를 벌였고,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단초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그 조사였다.
당시 국세청장을 맡았던 당사자는 지난해 모 방송에 출연해 2004년 당시 서울청에서 조사를 해서 예방주사를 확실히 놨으면 문제가 없었을 텐데 그렇지 못해 다음 정권으로 넘어왔고, 결국 서울청 4국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또다시 부산청에 조사를 맡겼으면 홍콩에서 4200만 불을 찾아내는 등의 조사 성과를 올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표적조사’였다라는 세간의 지적을 피하기 위한 발언으로도 들리지만 부실했던 부산청의 첫 조사가 서울청의 원정조사를 불렀다는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당시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는 서울청 조사4국 직원 60명이 관광버스까지 동원해 김해까지 내려가 5개월 동안 먼지 하나까지 조사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황제노역’으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는 대주그룹과 관련한 계열사에 대한 또 한번의 서울청 세무조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 세무조사 결과는 전직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런 조사였다라는 오명은 쓰지 않았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