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수 십년 동안 일선세무서 등에서 운영해오고 있는 ‘세정협의회’라는 것을 손질한다는 소식이다. 세정협의회란 세무서가 세정현안에 대한 홍보 및 지역여론 수렴 등 납세자와의 소통창구로 활용하기위해 관내에서 제법 사업체를 잘 꾸려나가는 사업자들을 추려 모은 모임이다. 겉으로는 자생조직이라고 말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과연 그럴까? 라는 물음표가 붙는다.

좋게 말하면 세정동향을 살피고, 또 국세행정을 좀 폼나게 전파할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그룹이라고 하기도 한다. 언뜻 보기에는 아주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퇴직 세무서장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보통 세무서의 경우 세정협의회 회원은 30~40여명, 그리고 세정자문위원회를 따로 두고 있는 세무서도 있다. 이 또한 30~50명이라면 많게는 100명의 관내 기업인들이 ‘세정협의, 세정자문’이라는 명분으로 세무서에 이름을 걸치고 있는 것이다. 이쯤 되면 세무서 관내에서 제법 매출을 올리는 기업가들은 대부분 세무서의 위원회에 이름을 내밀고 있다고 봐야한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이 세무서업무를 국민들에게 전파하고, 또 세무서가 세정을 펼치는데 엄청난 조력을 하는가이다.

한마디로 ‘아니올시다’라는 게 일선 세무서장의 솔직한 고백이다. 어떤 세무서장은 “차라리 없앴으면 좋겠다”고 했다. 귀찮은 모임이라고 까지 했다. 물론 퇴직 시한이 많이 남은 서장의 말이다.

하지만 현직에서 퇴직이 예상되는 서장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 세정협의회나 세정자문위원들이 세무서장이나 세무서 과장들이 퇴직 후 세무사로 개업할 때 소위 ‘세무고문’이라는 계약을 맺고 매월 일정의 보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정협의회 회원사들은 퇴직 세무서장이나 과장들의 ‘예비고문업체’인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고문계약은 그동안 국민들의 눈을 가린 채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뤄져왔다. 얼마 전 한 기업체 간부는 세무고문이라고 계약은 했지만 ‘고문님 얼굴 한번 본적이 없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세무업계에서는 수 십년 동안 이런 비정상적인 일들이 아무런 죄의식 없이 아주 자연스럽게 관행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던 것이 지난 연말경 명퇴를 앞둔 세무서장의 과욕이 세간에 회자되면서 급기야 협의회의 숫자를 줄이라는 본청의 '수술 지시'가 떨어지기에 이르렀다. 아마도 더 이상 방치했다가는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점을 간파한 조치일 것이다.

그런데 그 지시가 이상하다. 세정협의회 인원을 25명 내외로 조정하라고 했다는 소식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국세청이 세정협의회를 수술하겠다는 것은 아마도 퇴직세무서장 등의 부적절한 고문계약 등에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것이다. 그렇다면 회원이 50명 일 때는 고문계약이 가능하고, 25명 일 때는 불가능하다는 것인가. 회원의 숫자가 줄어들면 오히려 단가가 올라갈 수 있다. 그렇다면 협의회 소속기업은 더 힘들어지고, 고문세무사는 오히려 수익구조가 탄탄해진다. 세무서장 입장에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다. 이게 무슨 말 안되는 지시이며, 도대체 뭘 하자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앞서 일선세무서장의 말처럼 당장 세정협의회를 없애는 게 맞다. 인터넷과 SNS가 여론을 지배하는 시대에 관내 사업자들 몇몇 모아놓고 국세행정방향이라고 몇 자 읽어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굳이 세정을 전파하기 위한 모임이 필요하다면 세무서에서 공식적으로 운영중인 국세심사위원회나 납세자보호위원회 등의 외부위원들을 활용하면 될 것이다. 또한 관내에서 납세자들의 세무업무를 대리하는 지역세무사회는 놔 두었다가 어디에다 쓸 것인가.

그리고 세무서장들 뿐 아니라 일부 지방청장들의 고문계약과 관련해서도 뒷말이 들려온다. 지나치다는 이야기다. 세정협의회가 구악(舊惡)이라면 고위직들의 고문은 고악(苦惡) 이다. 차제에 감찰의 매서운 칼을 빼들어라. 국세청 감찰이 선배들에게 칼을 들이 댈 수 없다면 총리실이나 청와대 감찰팀이 나서야한다. 결코 원하지 않는 세무고문, 기업들에게는 정말 ‘손톱 밑 가시’일 수 있다.

저작권자 © 세정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