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민봉사기관이어야 할 국세청이 권력기관으로 인식되고 과세가 공평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조세행정의 기본 패러다임을 바꿔 세무조사의 공정성, 객관성, 투명성을 높이겠다.”
지난 2003년 3월 제14대 이용섭 국세청장의 취임사에 담긴 내용의 일부분이다.
이어 이 청장은 이날 취임식 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도 “경제여건 등을 감안해 당분간 시급하지 않은 세무조사는 자제할 것이며, 탈세 등 세정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이 청장은 재임기간 세무조사보다는 국세청의 납세서비스에 치중했던 국세청장으로 기억되고 있다. 집에 앉아서 세금신고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등 국세청이 서비스기관이라는 말을 듣게 된 것도 그때부터 였던 것 같다.
그리고 10년 후 그는 지난해(2013년) 국세청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지금과 같은 경기 침체시에는 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를 줄이고 오히려 납세서비스를 강화해 세원을 육성하고, 사업상의 애로를 해소해주어야 함에도 무리한 세무조사를 통해 쥐어짜기 과세행정을 펼치고 있다”고 후배들을 질타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선진세정을 추진해 왔던 그동안의 국세행정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매섭게 몰아붙였다.
실제로 지난해 국세청은 세무조사로 시작해 세무조사로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제 세무조사의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세무조사 때문에 사업을 못하겠다는 숱한 비판을 들어야 했다.
2013년 4월, 국세청은 전국의 각 지방청장들과 세무서장들을 불러모아놓고 세무조사, 세원관리, 체납징수 등 현장중심의 세정활동을 강화해 소관 세수 중 노력세수의 비중을 8% 이상 수준으로 상향시키겠다는 방침을 시달하면서부터 비난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국세청의 이런 방침은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는 것은 국세청 입장에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는 표현일 수 있으나, 선량한 기업과 성실한 납세자 입장에서는 모조리 수익을 누락하는 잠재적 불성실납세자로 간주하겠다는 이야기로도 들릴 수 있다는 점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했으며, 실제 세정현장에서도 크고 작은 불협화음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국세청은 한발짝 물러나 세무조사 축소라는 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국세청은 주어진 세수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무려 8조8천억 원의 세수펑크라는 사태를 맞았고, 고개를 숙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2014년, 국세청은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최소한 기업인들 앞에서는 무턱대고 세무조사를 강화하겠다는 말은 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경기를 살리는데 힘을 쏟겠다고 기업인들의 기를 세워주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지난 4월 4일 김덕중 국세청장은 대한상의 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그 뜻을 분명히 했다. “경제회복의 온기가 경제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대한 세정지원을 더욱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소득규모에 상응하게 성실하게 납세하는 분들을 ‘국가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어 “세무조사를 하더라도 부실한 과세가 발생하지 않도록 지방국세청 조사인력을 감축하는 한편 추징액 고지전에 조사내용의 적격성을 검증하는 ‘조사심의전담팀’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나아가 “3천억 미만법인중 일정수준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한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정기세무조사 선정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 강조했다.
200조원을 훌쩍넘는 매출(국세청 소관 세입예산)을 올리는 국세청이 고객인 기업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서비스는 최대한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됐다. 세무조사를 강화해 기업들을 쥐어짜봐야 세수에 크게 보탬이 되는 것보다 소리만 요란하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려 경기가 활성화되고 경제성장률이 1%오르면 세수가 2조원 늘어난다는 단순한 경제이론을 이제야 깨우친 것이다.
어디 감히 ‘털면 먼지 안나는 놈 있나 두고 보자’는 식으로 대놓고 세무조사를 강화해 노력세수를 늘리겠다고 말하는가. 그런 점에서 지난해 국세청의 언행은 철이 없었다면 올해는 어른스러워졌다.
지하경제를 양성화해 조세정의를 바로 세우고 탈루소득을 찾아내어 세금을 제대로 거두어야 하는 것은 국세청의 당연한 책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제는 힘으로 세수를 늘릴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납세자들이 즐겁게 세금을 낼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도 국세청이 해야 할 일이다.
이것이 21세기형 세무행정의 바로미터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