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지난주 국세청 홈페이지에 "세수가 부족하니 세금 납부를 더 하라며 금품을 요구하는 가짜 국세공무원 주의 안내"라는 대자보가 실렸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아직까지 세간에 국세공무원을 사칭해 선량한 납세자들로부터 돈을 뜯어내려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한 숨’이 절로 나온다. 최근 경기불황과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세무조사 강화 방침이 발표된 것에 편승한 것으로 보이지만 국세청이 이런 사칭 주의 안내문을 홈페이지에 게재한 것은 올해 들어서만 벌써 세 번째다. 정말 예사롭게 넘길 문제가 아니다.
특히 국세공무원 사칭 문제는 올 해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발생되어져 오고 있다는 점에서 이미 사회적 문제가 되었다고 봐야한다. 그동안 언론에 보도된 사례들을 보면 자신을 퇴직 세무공무원이라고 밝히면서 세무사례집 구매를 강요하거나 사업자등록증 확인을 내세워 금품을 요구하는 행위 등 사칭수법도 각양각색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런 말도 안되는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에나 있을법한 일이 최첨단 스마트시대를 사는 지금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국세청의 대응은 너무 태평스러워 보인다.
국세청은 고작 “국세 공무원은 공무상 사업장을 방문하는 경우 공무원증 및 출장증을 소지하고 이를 제시하고 있으니 반드시 신분을 확인하시고, 국세공무원 사칭 사실이 확인되면 즉시 관할 세무서 및 수사기관에 신고하시기 바랍니다”라는 문구를 홈페이지에 올린 게 전부다. 남의 집 불구경 하는 듯 한 모습이다. 너무 안이하다는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 국세공무원을 사칭하는지 어떻게 하면 속아 넘어 가지 않을 수 있는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 볼 수가 없다. 물론 어디로 전화를 해야 할지 또 수사기관은 어디를 말하는 것인지? 수사기관의 전화번호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다. 당황한 납세자가 갑자기 세무서 전화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 보지 않았는지? 집안에 불이 났을 경우 갑자기 119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114를 누르는 경우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보지 못했는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국세청 전화번호 ‘126’이라도 안내하면 안되는 것인가?
국세청의 이런 대응은 국세공무원 사칭사건으로 국세청이 직접적인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소극적일 수 밖에 없겠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보면 국세공무원의 사칭에 당하는 납세자는 곧 나의 고객이자 국세청을 지탱해 주는 원천이라는 점을 간과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서울에 앉아 남해안고속도로의 정체여부를 한눈에 볼 수 있고, 걸어 다니면서 텔레비전을 보는 최첨단 스마트한 세상에 사는 지금 왜 1970년대 TV도 제대로 없던 시대에나 일어나던 일이 21세기 백주대낮에 아직도 국세공무원을 사칭하는 일이 생기고, 또 여기에 속아 넘어 가는 납세자들이 생기는 것일까?
아마도 아직까지 국세행정이 납세자 개별정보의 보호라는 두꺼운 세법전에 갇혀 투명하지 못한데 대한 두려움, 그리고 국세공무원의 말 한마디가 무서워 벌벌 떨 정도로 깨끗하게 회계처리를 하지 못한 불량 납세자들의 불안함이 함께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고 국세공무원을 사칭함으로써 국세청과 국세공무원의 명예를 더럽히고, 또 성실납세 분위기를 해치고, 정당한 공권력을 도용해 우매한 납세자들을 괴롭히는 이런 후진국적 행위가 활개치게 해서는 안될 일이다.
국세청은 더 이상 이런 국기문란 사건을 먼 산 불구경 하듯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홈페이지에 안내문 달랑 한 건 올리는 수준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주문하고 싶다.
우선 부가가치세 신고만 잘 하라고 안내하고, 홍보하고, 광고할 것이 아니라 납세자들이 이런 범죄자들로부터 ‘인격적 모독’에 해당하는 ‘황당한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국세공무원 사칭 예방 광고부터 먼저 대대적으로 하는 게 어떨까?
선량한 납세자를 보호하는 일, 결코 세무조사 보다 덜 중요하지 않을 것이며, 무엇보다 중요한 성실한 납세자가 마음 놓고 사업에 만 전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