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호 침몰 사고의 원인 중 하나로 ‘해피아’가 꼽히고 있다. ‘해피아’는 해양수산부 공무원들과 해수부 산하단체, 해운업계가 똘똘 뭉쳐 마피아처럼 움직인다는 나쁜 의미를 담고 있다.
현재 해수부 산하 공공기관 14곳 중 11곳에 해수부 출신이 낙하산 기관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 전직 관료들이 현직 관료들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선박 안전은 뒷전시 했다는 것이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로 터져 나오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기회에 ‘해피아’를 뿌리 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 부처와 전직 고위직들과의 유착은 해피아 뿐 아니다. 원자력발전소 비리 뒤의 ‘원전마피아’를 비롯해 저축은행 사태 때는 금피아(금감원+마피아)도 있었다. 그리고 기획재정부의 ‘모피아’도 유명하다. 얼마나 공직자들과 공기업들과의 유착과 결탁이 심하면 각 부처별로 이런 이름이 없는 것이 더 이상할 지경이다. 교피아(교육부), 산피아(산자부), 철피아(철도부)등 너무도 많다. 그리고 또 세피아(국세청+주류관련단체)도 있다.
이처럼 공직자들의 낮 두꺼운 자기 밥그릇 챙기기와 부정부패를 비판하면서 1970년대 시인 김지하 씨가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공무원, 장성, 장차관들의 부정부패와 초호화판의 방탕한 생활을 통렬하게 풍자하며 오적(五賊)을 들고 나왔다면 정부 부처 이름 뒤에 이탈리아의 범죄조직인 마피아를 붙여 비꼬는 것은 2000년대식 비판일 것이다.
2014년 4월 진도 앞바다에서 여객선이 침몰하면서 ‘해피아’의 폐해가 드러나면서 마피아 부처들의 개혁론이 나오고 있다.
가장 공평무사해야 할 국세청은 어떨까. 세정가도 마찬가지라는데 별 이견이 없다. 매년 정년을 앞둔 국세청 고위직들이 명예퇴직과 동시에 주류관련 단체와 기업들에 무시로 취업이 이뤄지고 있다.
현재 국세청 고위직들이 주로 퇴직 후 재취업하는 기업과 단체는 대한주정판매, 세왕금속공업, 서안주정, 한국주류산업협회, 삼화왕관 등 5곳이다. 한국알콜산업협회는 과거 국세청 차장을 지냈던 지창수씨가 20년 넘게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대한주정판매 사장은 중부국세청 국장을 지낸 장성섭씨가 맡고 있으며, 세왕금속공업은 국세청 고위직 출신인 황재윤 사장이 맡고 있다. 서안주정도 중부국세청 국장 출신인 정이종 씨가 사장으로 재직중이며, 부사장도 세무서장 출신인 곽길수 씨가 맡고 있다. 삼화왕관은 국세청 부이사관 출신인 정경석씨가 차지했으며, 감사자리에는 박석찬 씨가 앉아있다.
또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대구국세청장을 지낸 권기룡씨가 회장을 맡고 있으며, 또 이곳의 2인자자리인 전무도 중부국세청 과장 출신인 성남효 씨가 꿰차고 있다.
이들 기업과 단체의 수장에 국세청 고위직들이 퇴직 후 임명돼온 것은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아마도 오랜 세월을 겪으면서 지금쯤 국세청 사람들과 이들 기업들은 이런 인사를 비정상이 아닌 아예 정상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가장 큰 이유는 심각한 인사적체를 겪고 있는 국세청에 있다. 국세청은 조직의 활력과 적체된 인사의 숨통을 틔우기 위해 서기관 이상 고위직들이 공무원법상 보장된 정년보다 2년이상 먼저 퇴직하는 관행을 '전통'으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전통을 유지하기위해서는 무조건 희생만을 강요할 순 없는 노릇. 당연히 당근과 채찍이 필요했고, 그 당근이 주류관련업체의 취업보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국세청에 근무하다 2년 먼저 사표를 던지고 이들 기업체의 사장으로 취업하면 당장 연봉이 국세청 재직시절보다 크게 높아진다. 그리고 국세청 후배들에게는 ‘우리를 위해 자리를 비켜준 의리 있는 선배’로 기억에 남는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것이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이들 기업들에 대한 인·허가권을 국세청이 쥐고 있어 가능하다. 또한 주세법에 근거해 감독권과 그리고 사실상 주류의 가격 결정권까지도 행사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어떤 기업의 경우 오히려 국세청 고위직이 사장으로 임명되는 것이 영업적인 측면이나 인·허가권의 관리 등 국세청과의 업무측면에서 더 효율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사자는 정년을 앞두고 1~2년 먼저 퇴직하면서 고액의 연봉을 받게 되고, 기업들은 감독관청과의 관계가 원만해진다. 국세청과 이들 기업의 이해타산이 ‘찰떡궁합’처럼 맞아 떨어진 결과다.
하지만 이런 양측 사이의 이해관계 못지않게 국세청 고위직 출신들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들 기업의 임원으로 내려 앉게 되면서 나오는 부작용이 한 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 기업들은 전문성도 없는 수장을 2년에 한 번씩 맞아야 하고, 또 국세청에겐 과세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있다. 그리고 매번 낙하산 임원을 맞아야 하는 기존 조직원들의 허탈감과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 등등.
문제는 올해다. 권기룡, 정이종, 황재윤 사장 등 대부분 수장들의 임기가 이미 만료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국세청 주변에서는 6월말 일부 명퇴대상 고위직들이 새로운 낙하산을 타고 내려갈 것이라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리고 대상자들의 이름까지 거론되고 있다.
세월호의 안전을 ‘해피아’가 삼켰다면 아마 주류업계의 발전은 ‘세피아’가 막고 있다는 이야기가 많다. 차제에 국민적 분노를 자아내고 있는 해피아를 수술하라는 목소리를 핑계 삼아 이번부터 국세청도 주류업계에 투하하는 낙하산 줄을 싹둑 잘라 버리면 어떨까.
아마 박근혜 정부의 세정개혁의 좌표이자 비정상의 정상화로 가는 길의 푸른 신호등이 될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