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영의 세정에세이]

국세청이 하반기부터 세무조사를 축소하겠다고 공식 밝혔다.
지난 23일 국회 조세개혁소위에서 그랬고, 25일 김영기 국세청 조사국장이 출입기자들을 불러 놓고도 밝혔다.
골자는 올해 세무조사 건수를 1만9천건에서 1만8천건으로 1천건 가량 줄이고, 또 매출 10조원 이상인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기간을 이미 지난 5월말부터 최장 170일에서 110일로 60일가량 단축했고, 조사기간의 연장도 최소화 할 방침이라는 것.
그리고 매출 500억원이 넘는 대기업에 대한 세무조사 비율도 작년 15.9%에서 올해 20%로 올리려 했으나 18%정도로 낮추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럴 경우 대기업 세무조사 대상 기업이 당초 계획보다 100개가량 줄어든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국세청 조사국장의 발표는 지난 4월 국세청이 밝힌 올해 조사방향과 완전히 딴판이다.
당시 국세청은 전국세무관서장회의를 거쳐 확정된 올해 세무행정방향을 밝히면서 세무조사, 세원관리, 체납징수 등 현장 중심의 세정활동을 강화해 소관 세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계획은 전국세무서에 추상같은 명령으로 전달되었다. 그런데 100여일이 지난 지금 그 계획을 수정, 축소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조변석개(朝變夕改). 국세청의 조사방향이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른 것이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복지재원 마련과 지하경제를 양성화해야 한다는 대의에 국세청으로서는 세무조사를 통해 재원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첫 단추를 잘못 끼웠겠지만 이렇게 세무조사를 국세청 마음대로 고무줄처럼 늘렸다 줄였다 할 수 있다는 '나쁜 신호'를 국민들에게 주어서는 곤란하다. 당시 조사국장은 현 조사국장이 아니었다. 조사국장이 교체되면 국세청의 조사방침도 바뀌는 것인가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온다.
또한 조사기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은 자칫 세무조사가 ‘솜방망이 조사’로 거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예민한 문제다.
국세청으로부터 한번 세무조사를 받은 기업은 국세기본법에 명시된 ‘중복조사의 금지’규정에 따라 차후 조세탈루 혐의를 인정할 만한 명백한 자료가 없는 한 같은 세목, 같은 과세기간에 대해 재조사를 받지 않는다. 즉 한번 세무조사를 할 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세무조사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되는 것이다. 한 번에 탈세를 찾아내지 못하면 영영 묻히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세무조사의 빈도 조절은 납세자의 법적안정성과 예측가능성을 보장하겠다는 조세법률주의에 반하는 것이며, 세입의 자동안정화 기능까지 저해하는 문제까지 야기할 수 있는 만큼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하는 사안이다.
물론 세무조사로 인해 기업경영활동이 다소 위축되는 부분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고 무겁고 준엄해야 할 세무조사 정책이 어제 다르고 오늘 달라서는 안된다. 특히 상황에 따라 조사기간까지 인위적으로 줄이는 것은 자칫 세무조사의 근육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더욱이 이번 국세청의 조치는 국민들에게 목소리만 키우면 세무조사는 언제든지 ‘무장해제’ 시킬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갖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결코 반길 수 만은 없다.
성실납세를 담보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고 하는 세무조사가 외풍에 의해 갈지자(之) 행보를 하게 된다면 경제검찰 국세청의 위상도 존재가치도 그렇게 쉽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